남자로서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는 일
2018년 봄, 까닭모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24시간 계속되는 어지럼증에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며, '오늘은 좀 나을까' 희망을 품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어지럼증 검사를 해도 멀쩡했고, 어느 검사를 해도 딱히 이유로 삼을 건 없었다. 한 달 넘게 어지럼증과 싸우며, 일상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며 끔찍한 시기를 보냈다. 인턴이 끝나고 휴학을 이어가던 시기였고, '이대로라면 앞으로 무엇이든 하기 어려운 거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들곤 했다.
실마리를 찾은 건 팔이 저린 증상이 시작되었을 즈음이었다. 팔이 저린 증상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큰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우선 뇌 MRI 검사를 하자고 했다. 뇌 문제인지 아닌지 원인을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목디스크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2개월 뒤에나 검사가 가능하다는 병원을 뒤로하고 당일 다른 영상의학과를 찾아 뇌 MRI를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깨끗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디스크구나' 생각했다. 두렵진 않았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더 절망스러웠으니까.
여러 병원을 두들겼다. 한 곳은 별 대수롭지 않아해서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곳은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며 비싼 치료들을 권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재활의학과를 찾았다. 그곳에선 우선 목디스크가 발생하는지 간이 검사를 하자고 했다. 목디스크가 있을 경우 신경이 눌리면서 팔 저림이 발생하는데, 그 신경이 눌리는지를 확인하는 건이었다. MRI보다 훨씬 저렴했고, 바로 할 수도 있었다. 결과는 신경이 눌리고 있다는 것이었고, MRI를 찍지는 않았기 때문에 '확정'할 수는 없지만 목디스크 증상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도수치료와 충격파치료를 병행하는 일이었다. 인턴을 하며 모은 돈도 거의 다 탕진했던 내게 1회당 13만원의 치료비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원인과 해결방법을 알게 된 지금이 훨씬 나았다. 돈은 이제 벌면 되니까 1주에 1번 치료를 받기로 하고, 또 방법을 찾아나섰다. 그 답은 필라테스였다. 수영과 필라테스가 디스크 재활로 좋다고 했다. 수영은 물공포증이 있기도 했고, 등록이 쉽지도 않았다. 그리고 필라테스가 회복 후기가 더 많았다. 그렇게 2018년 여름 8월, 딱 7년 전 이 맘 때, 올림픽공원의 스포츠 센터에서 매트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매트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매트 필라테스가 더 저렴했고, 나는 가격으로 보나 이름으로 보나 '기구 필라테스'보다 더 초보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기구 필라테스가 초보자에게 더 적합하단 걸 알게된 건 꽤 나중 일이었다. 첫 날, 선생님에게 목디스크가 있다고 했고 선생님은 약간은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스레를 피우며 '걱정하지 마라'며 자신에게서 디스크 해결해서 나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 때는 '그저 하시는 말씀이겠지'하며 웃고 말았다.
첫 날했던 필라테스는, 내 생각을 아예 뒤집어놓는 시간이었다. 나는 명상 혹은 요가에 가까운 것이겠거니 하고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다. 애초에 땀이 날 거란 생각도 없었다. 허나 채 10분이 되기 전에, 나는 부들부들 떨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운독 자세였다. 나는 제대로 역 V자를 만들지도 못했고, 발 뒤꿈치를 땅에 닿게 하지도 못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한 다리를 드는 자세는 절반도 따라하지 못했다. 수업의 시작 부분에 하는 이 자세부터 나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내 예상과 달리 만만찮은 운동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게 정신차릴 새도 없이 여러 동작들을 따라하다 보니 50분이 가 있었다. 땀을 잔뜩 흘리며 끝내고 예상에도 없던 샤워를 하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대로라면 내가 나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데, 뭐라도 좋아지겠지. 그렇게 주에 3번, 아침 8시 수업을 들었다. 그 때 즈음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10시 출근에 맞춘 스케줄이었다. 8시 50분에 끝나 샤워를 하고는, 따릉이를 타고 올림픽공원을 가로 질렀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몸은 개운했다.
그 때는 여전히 기억남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나는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고, 어지럼증은 사라지고 있었다. 몸이 회복하는 기분, 불안하고 두려웠던 정신이 밝아지고 들뜨게 되는 기분. 아침의 맑은 공기를 느끼며 이른 시간 사람이 없는 올림픽공원을 가로지르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건 정말 행복했다. 무엇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은 희망이라는 설레임을 불렀고 그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괜찮아질 거야. 나는 행복할 거야.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나는 다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실제로 나아지고 있기도 했다. 매주 방문하는 병원의 치료사 분은 '필라테스를 해서 그런지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했고, 본인 스스로도 그 효과에 놀라 필라테스에 관심을 가지시곤 했다. 충격파 치료는 고통스러웠지만, 희망이 보이니 버틸 만 했다. 그렇게 치료는 3개월 정도를 지속하고 마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처음 등록했던 스포츠 센터에서 5개월 정도 필라테스를 했을까. 나는 그곳을 그만두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곳은 내가 다니기엔 사실 조금 먼 곳에 있었다. 조금 더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시작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필라테스의 효과는 확실했다. 필라테스를 하는 나는 더이상 어지럼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어쩌다 필라테스를 2-3주 정도 하지 않으면 머리가 어지럽곤 했는데 필라테스를 1-2번 하고 나면 괜찮아졌다. 어느 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바빠 자세가 무너진 날이면 어김없이 퇴근 길에 머리가 아팠는데, 그 날 필라테스를 다녀오면 밤엔 어느새 괜찮아졌다. 난 필라테스의 효능에 대해 스스로 '간증'이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최소한 내게 필라테스는 '구원'이 맞았다. 하지 않으면 나빠졌고, 하면 좋아졌다.
이후로 다양한 센터와 선생님들을 만나왔다. 두번째로 등록한 곳은 동네 초등학교에 있는 스포츠센터의 매트필라테스였다. 두번째 인턴을 다닐 때였고, 퇴근 후 1시간 넘는 시간 걸려 동네에 와서는 바로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그 이후 정규직으로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땐 약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쉬었던 것 같다. 저녁 일정이 실제로 바쁘기도 했지만, 신입으로서 회사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샌가 또 약간의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날 조금 일찍 회사를 떠나서 인근에 있는 병원에 찾아 충격파 치료를 다시 받았다. 여전히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다시 필라테스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도보로 10분이 조금 넘는 헬스장에 딸린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그 전에 필라테스 전문인 곳도 갔는데, 여성만 받아서 몇 번 퇴짜를 맞고 나서는 헬스장에 있는 곳이 남성도 받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만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확신했다. 어지럼증이 다시 사라졌다고. 그렇게 그곳에서 다시 필라테스를 1년 반 정도 한 것 같다.
이후 이사를 와서 집 앞에 필라테스 전문점에서 다시 또 1년 넘게 했고, 그 옆 헬스장에 딸린 곳에서 다시 2년 넘게 하고 있다. 장소도 총 5곳을 넘었고, 그간 거친 선생님들도 20명은 넘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꾸준히만 하자'고 버텨냈던 그 초반의 시기가 무색하게 어느새 '필라테스를 시작한게 2018년이니까 7년 정도 했네요'라고 할 수 있을 때가 됐다(물론 요새는 오히려 실제보다 낮춰서 말하는 편이다. 7년 했다고 하면 잘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 시간을 지나서 필라테스를 잘하게 됐냐고 하면 여전히 그렇지는 않다. 필라테스를 처음 하던 한 달, 조금도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50분을 버텨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 때에 비하면 정말 일취월장 했지만, 여전히 내 몸은 뻣뻣하고 부족하다. 그걸 알 수 있는 이유는, 그간 잘하는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이겠다. 그들에 비하면 여전히 난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변한게 있다면, 그래도 동작을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말만 듣고 어떻게 몸을 움직이면 될지 감을 잡았고, 이 동작을 하면 어느 부분에 자극이 와야 하는 건지, 최대한 완벽한 동작에 가깝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는 없지만, 이런 방향으로 하는 거구나라는 건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2-3년 차에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던 이야기를 이젠 덜 듣게 됐다. 바로 '어깨에 힘 빼세요'란 말이다. 3년 차, 4년 차에도 난 모든 동작마다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 사실 필라테스를 하기 전에는 그렇게 어깨에 힘을 준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3년 차에 들어섰을 즈음 난 '지금 내가 어깨가 올라갔구나'란 걸 인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이제는 가끔 낯선 동작을 할 때를 제외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어깨 컨트롤이 되는 편이다. 인지할 수 없는 사이에 변한 것 중 하나다.
어지럼증을 해결할 방법을 알게 됐다는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필라테스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다. 내가 내 몸의 아픈 원인을 알 수 있다는 것, 그걸 사라지게 할 하나의 방법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실제로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후 주변에 나와 비슷하게 두통이나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나와 같이 목이나 어깨와 같은 곳에서 그 원인이 출발한 사례였다. 실제로 필라테스를 하며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듣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세가 조금 교정된 것 같다는 점이 있다. 허리를 조금 더 바르게 세우거나, 조금 더 바르게 걷거나, 말린 어깨가 조금 더 펴지거나 하는 일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처음 뵈었을 때보다 목주름이 많이 펴졌네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모두 기쁜 일이다. 여전히 내 몸은 이리저리 굽고 휘어있지만, 그럼에도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꾸준한 운동 습관을 가지게 됐다는 것도 변화다. 중간에 비는 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최소 7년의 시간 동안 나는 주에 1-2회는 필라테스를 했다. 가끔 3회를 하기도 했고, 필라테스를 가지 않더라도 혼자서 몇몇 자세를 통해 교정을 하기도 했다. 이젠 필라테스를 가지 않는 주가 특별해질 정도고, 여행 등을 통해서 필라테스를 가지 않으면 '이번 주는 못가는 구나'는 마음이 들며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필라테스를 가면 '시원한' 느낌이 좋기도 하다.
어지럼증에 절망하던 2개월의 시간동안, 나는 불행했다. 건강한 사람들과 세상을 보며 절망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시련을'이라고 되뇌이는 말이 많았다. 매일 아침 '오늘은 조금 괜찮을까'라며 일어나고, 화장실에 가며 그렇지 않음에 절망하는 날의 반복이었다. 밤마다 1시간 넘게 산책을 하며 '제발 괜찮아지길'이라고 빌었다. 그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어차피 찾아올 일이었다면 일찍 찾아온 것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덕분에 나는 더 어린 나이에 필라테스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많은 것들을 바꿔낼 수 있었다.
남자로서 '필라테스를 합니다'라고 말하는 일이 내겐 너무 익숙하고, 100번도 넘게 말해온 말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 효과를 간증하러 다니며 '홍보대사'를 자처하던 사람이지만, 그 과정이 마음 편하기만 했냐면 물론 그건 아니다. 주변에 많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면 고깝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음흉한 마음이 있는 것 아니냐'고 찔러보기도 하고, '여자 보러 가냐'고 묻는 말도 익숙하다.
사실 인생의 전환점을 필라테스를 통해 겪었던 나로선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정도의 일을 위해 내가 7년의 시간 동안 매주 2번씩 곧 죽어도 필라테스는 갔던 시기를 지났을 리가 있을까. 무엇보다, 필라테스를 하면 알게 된다. 주변에 내가 팬인 연예인이 있더라도, 필라테스를 하는 시간만큼은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괴롭다는 걸. 필라테스를 시작했던 첫 날도, 그리고 어제도 나는 필라테스를 하며 죽을만큼 힘들었다. 땀이 비오듯 하고, 심박수는 전속력 러닝을 한 것 마냥 치솟고, 다리와 손이 벌벌 떨리곤 하니까.
사실 내가 처음 배울 때 '눈을 감고' 하는 걸로 배워서, 2년 간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매트를 할 때 배운 습관이었는데, 이후 기구필라테스를 하며 선생님들이 왜 눈을 감냐고 뜨라고 해서 지금은 대부분 뜨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동작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물론 눈을 감느냐 뜨냐로 스스로를 변호할 생각 자체도 없다.
필라테스를 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지레짐작하며 자신의 세계관대로 떠든다고 해서, 내가 필라테스를 하는 이유에 조금도 영향이 가지 않는다. 그 정도 시선에 그만둘 거였다면,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2개월 간 느꼈던 부끄러움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매일 이른 아침 추운 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15분 동안 가서 필라테스를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조금 더 잠을 잤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에 흔들리기에 내가 필라테스에 쌓은 믿음은 너무나 크다.
물론, 신경쓰는 게 있다면 나와 수업을 듣는 다른 회원 분들이다. 나는 상관없지만, 분명히 나의 존재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시선이 있는 만큼 나의 진의(?)를 의심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더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7년이 된 지금도, 그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다.
바로 '내가 이 방에서 필라테스를 가장 못하는 사람인 건 아무 상관 없지만, 이 방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될 거다'라는 마음이다.
못하는 만큼, 매 시간 내 최선을 다해 모든 시간에 임했다. 체어 수업 때 다리가 떨리며 내는 지진 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필라테스에 대한 마음은 진심입니다'라고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덜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가끔씩은 그렇게 했던 마음에 보상이 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이었던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는 '정말 많이 늘었어요. 어디가서 000 선생님한테 수업들었다고 꼭 하세요'라고 하거나, '제가 본 회원 분들 중에서 늘 제일 열심히 하세요'라는 이야기들, 어김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자세를 교정해주며 '이렇게 열심히 해주면 제 입장에서 너무 좋아요'라는 말들. '회원님은 살고 싶으면 매일 집에가서 30분씩 교정해주세요'라는 무서운 이야기도 듣곤 했지만, 그 말조차도 감사했다. 그리고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많이 늘었어요'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물론 수업이 끝나면 말할 힘도 없기 때문에 늘 어정쩡한 반응을 하고는 집으로 가고 말았지만).
주변에 나는 '평생할 운동을 찾았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는 사람들도 많다. 거기에 에너지를 잃지는 않는다. 나는 필라테스로 내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었고, 그것에 감사하고, 이미 충분하다. 몸이 나아가고 있는 걸 모든 감각으로 느끼면서 올림픽공원을 따릉이로 질주하던 아침의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라는 그 강렬한 감정은 평생을 두고 봐도 꼽을 수 있는 기억이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에 대한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는 경험이었으니까. 과거로 돌아가면 조금 더 일찍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운동에 감사하게 됐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여전히 누군가는 '필라테스? 남자가 해도 되는 건가?'하며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 사람들에겐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편견 때문에, 걱정 때문에 필라테스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홍보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저 비웃거나 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난 그 날, 내가 해야할 동작들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어렵다. 7년이나 했지만 고작 그 정도야?라고 주변에서 놀리더라도 '그러게, 그 7년을 제외하고도 20년 넘게 개판으로 살아서 그런가봐'하고 웃어 넘기고 만다.
난 필라테스를 잘하지 않는다.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내가 필라테스로 가장 행복했던 때는, 필라테스를 가장 못하던 첫 1개월이었다. 그룹 필라테스에서 나는 그 어떤 동작도 50%도 수행하지 못해서, 선생님이 매 동작마다 직접 교정을 해줘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난 필라테스가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잘하려고 필라테스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부족하고 망가진 내 몸을 교정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그리고 그 교정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끝없이 이어가고 싶다. 내가 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일들 중 하나니까.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진정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여전히 나는 때론 투덜대면서도 필라테스에 간다. 잘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워 누가 물어보면 '한 5년 정도 했어요'라고 둘러대고, 어쩌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필라테스가 나오면 신나서 들뜨고, 친구들에게 동작을 선보이면서 홍보하고, '어떻게 매주 해도 이렇게 힘드냐' 되뇌이면서, 수업이 끝나고 물티슈로 기구를 닦고 나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고 나오면서, '오늘도 그래도 필라테스를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어지럼증이 없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매일 같이 깨닫으려고 하면서. 올림픽공원을 질주하던 그 행복한 순간을 마음 속에 다시 되새기면서.
필라테스는 전쟁을 겪은 군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운동으로, 체조와 요가를 결합해 만든 '재활운동'이다. 성별을 나눌 필요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 했던 운동 능력 테스트에서도 모든 능력이 부족했던 내가 코어 근육만큼은 높은 점수를 받아서 선생님이 '필라테스 덕분인지 이것만큼은 점수가 높네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