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Feb 06. 2024

추락의 해부

모르는 채 끝나는 경험

© 그린나래미디어


추락의 해부 (Anatomie d'une chute, 2023)

모르는 채 끝나는 경험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추리 영화. 진실이 무엇인지 쫓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나 법정 드라마 등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객을 의도적으로 속이기도 하고, 사건의 순서를 뒤바꾸고, 신뢰와 의심을 교차로 이끌어내며 게임처럼 그 과정에 동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여러 가지 장치와 트릭을 통해 긴장과 재미를 만들어내지만(특히 반전을 통해) 결국엔 감독, 그러니까 화자가 선택한 결론(진실)을 영화가 끝나고 나면 누구나 알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살인 사건과 같이 범죄와 연관된 추리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결론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지만 결론으로서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적 재미나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 (Anatomie d'une chute, 2023)' 역시 표면적으로는 진실을 쫒는 비슷한 추리 영화들처럼 보인다. '사고였나, 자살인가, 살인일까'라는 국내 개봉 포스터의 문구는 이 이야기에서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여타 다른 추리 영화들처럼 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법정 드라마의 틀을 빌려 아주 깊은 곳까지 파해쳐 들어간다. 영화의 제목 추락의 '해부'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이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관객이 감독이나 극 중 인물들과 동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정보를 해부하고 나열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는 부분들도 그대로 나열하고, 반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보들도 대등하게 나열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그렇게 낱낱이 모든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한 뒤 영화는 법정 드라마답게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로써 하나의 결론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결국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열린 결말이라는 건 말 그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여지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추락의 해부'의 결말은 애초부터 어떤 진실도 선택하지 않겠다는(없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영화다. 그러니까 '사고였나, 자살인가, 살인일까'라는 질문을 두고 '셋 중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어'가 아니라 '타인의 진실은 결코 알 수 없어'를 말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해부의 과정 속에 등장하는 설정들도 이런 의도를 반영한다. 이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은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우리가 흔히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보는 것'이 결여된 인물을 통해 과연 보았다는 사실 만으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또한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산드라가 프랑스어를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 역시, '안다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재판을 둘러싼 언론의 반응을 통해 해부된 조각들을 제대로 맞춰 보려는 시도조차 게을리하는 사회의 편견도 보여준다. 범죄 소설을 쓰는 성공한 여성 작가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전체 사건을 쉽게 의도적으로 매도해 버리는 언론과 사회의 모습은, 실체적 진실을 안다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별개로 사회가 과연 실체적 진실에 관심이 있긴 한지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추락의 해부'를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 '괴물'이 떠올랐다. 결국 이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좀 더 감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감독으로서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해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레에다는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런 다큐 감독으로서의 성향이 최근 삼부작 (어느 가족, 브로커, 괴물)에서 더 도드라지게 표현됐다. 두 작품 모두 진실을 안다는 것은 무언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면, '괴물'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에 따라 관객이 진실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통해 깨닫게 만들지만 하나의 진실을 영화가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추락의 해부'는 관객에게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자료와 상황, 관계를 늘어놓지만, 결국 '알 수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도록 진실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 결과 '괴물'은 좀 더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영화가 되었지만, '추락의 해부'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험지가 됐다.



© 그린나래미디어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영화를 비롯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창작자들이 만든 진실 찾기 게임을 경험한다.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결말은 그 자체로 짜릿하긴 하지만 한 편으론 은연중에 모든 진실을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다는 최면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추락의 해부'가 주는 모르는 채 끝나는 경험은 지금 시대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