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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Feb 22. 2024

사랑은 낙엽을 타고

현실과 가까이 맞닿은 동화

© 찬란


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2023)

현실과 가까이 맞닿은 동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핀란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Kuolleet lehdet, 2023)'.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감독의 전작들을 잇는 프롤레타리아 시리즈로 불린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았다면 이런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과의 첫 만남이라 오로지 이 작품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는 헬싱키를 배경으로 두 남녀 '안사'와 '홀라파'의 각각의 삶과 서로의 만남에 대해 그린다. 안사가 자주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뉴스로 미뤄봤을 때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 그 외의 모습들에서는 쉽게 현재성을 발견하기 어렵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를 지속적으로 흘리듯 언급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다. 시점에 관한 것도 그중 하나일 텐데, 이건 시점이 현재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것보다는 두 인물이 처한 사회의 현실(제도)이 현재까지도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못했다는 일종의 연속성 표현에 가깝다. 노동, 직접적으로는 노동자로서의 인간이 사회에서 처한 현실과 대우가 2023년 현재까지도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영화는 아주 건조한 시선으로 덤덤히 담아낸다. 

더불어 또 다른 지점은 삶의 터전을 잃고 죽음이 곁에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실과 안사와 홀라파가 각자의 삶에서 겪는 인간적 고독과 무료함이 일종의 전쟁과 같다는 비유로도 읽힌다. 


© 찬란


그런데 영화가 이 전쟁 같은 삶의 해결책으로 내놓는 것은 너무 직접적이고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그건 바로 사랑, 사랑의 힘이라고 말한다. 너무 뻔한, 아니 뻔하다기보다는 이런 스탠스의 영화에서는 잘 선택하지 않는 너무 단순한 해결책이라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단한 건 아마 시놉시스 한 줄이나 평론가의 한줄평으로 보았다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사랑의 힘'을 그 어떤 극적인 로맨스 영화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인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드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그 인간다움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건, 영화 속에서 훨씬 설득력 있고 아름답게 전달된다.


다시 연락하기로 했으나 연락처를 적은 쪽지가 주머니에서 빠져 잃어버리는 바람에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황.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나 급작스런 사고로 또 한 동안 이유도 모른 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 등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설정들은 다른 영화 같았으면 진부하다 못해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평가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이와 유사한 몇 가지 설정과 이야기들은 내면 깊이 깔려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안사와 홀라파의 로맨스를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퍽퍽한 삶에 유일한 위안이 사랑이라는 건 너무 뻔한 로맨스 공식인데, 이 영화는 이 공식이 성립하지만 같은 조건의 로맨스 영화들과 가장 먼 지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충실하고 솔직하게 이 명제를 대하는 영화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고 또 몹시 사랑스러운 영화다. 감독의 전작들을 빗대어 보았을 때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더 많은 레이어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매력적인 건 오로지 로맨스의 결로만 감상해도 충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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