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이 될 것 인가
모든 작품,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첫인상은 몹시 중요하다. 첫인상이 결국 그 사람에 대한 최종 평가가 되는 일도 많다. 사람의 인식 체계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처음 받은 느낌을 바꾸거나 지우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첫인상이라면 오프닝 시퀀스를 들 수 있겠다. 타이틀 롤이 나오기 전까지의 시퀀스나 타이틀 롤과 함께 진행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그 영화에 대한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그나마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끝이 나는 영화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드라마 같은 경우 일종의 오프닝 시퀀스라 할 수 있는 1,2화의 인상이 좋지 않다면, 후반부에 보석을 숨겨놓았다고 해도 많은 시청자들은 그 보석을 발견하기 한참 전에 떠나버리기 일쑤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작 '베테랑'의 속편이다. 평소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쭉 좋아하고 따라온 관객의 입장에서 '베테랑 2'는 평범한 속편이 아니길 바랐다. 흥행 측면에서는 전편의 성공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가공해 변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팬 입장에서는 액션으로 대표되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도 좋지만 전 편에서 담고 있던 사회적인 메시지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고 풀어내는 작품이 되었음 기대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기 앞서 서두에 '오프닝'과 관련된 잡설을 풀어놓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베테랑 2'의 오프닝 시퀀스가 너무 충격, 아니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서 유독 견디기 힘든 순간이 종종 있는데,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장면들이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여기가 웃기는 포인트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시퀀스들은 자주 오프닝이나 중간 정도에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는데, '베테랑 2'의 오프닝 시퀀스가 그랬다. 익숙한 얼굴의 서도철과 형사들이 다시 한번 현장을 누비는 장면을 영화의 첫 이미지로 선택했는데, 그 선택은 자연스러웠으나 방식은 몹시 촌스러웠다. '밀수'의 일부 장면처럼 의도된 촌스러움도 아니었고, 재미와 환기를 위해 삽입된 시퀀스였는데 솔직히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힘내라! 힘내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힘이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최악의 오프닝 시퀀스를 견디고 나서야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됐다.
아쉬운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베테랑 2'의 이야기는 최근 들어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구조의 이야기라 여러모로 기시감이 드는 전개였다. 아마도 디즈니 플러스의 '노웨이아웃'이나 '비질란테'를 본 시청자들이라면 여러 가지 겹치는 설정과 구성에 재미가 한 풀은 꺾일 수 있다. 스스로 정의 구현을 외치는 수많은 사이버 레카들과 유튜버들, 이를 둘러싼 언론의 행태와 날이 선 여론의 다툼이 그만큼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자주 보게 되는 요즘엔 오히려 이런 사회를 영화가 묘사하는 것 자체에 한계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가서야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등장하는데, 확실히 조금은 흡입력이 부족했다. 보통의 액션 영화였다면 아마 터널에서 상황이 종료됨과 동시에 영화도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 편이 더 깔끔할 수도 있었겠지만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 2'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그 이후 등장하는 시퀀스였기 때문에 터널에서 끝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결말 장면을 보고 나니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또 영화 속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현재 사회 문제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메시지와 진심으로 인해 오프닝의 실망스러움과 전개 과정의 아쉬움들을 다소 희석할 수 있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레이어들로 채워졌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