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상> 이라는 제목을 본다.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형상.
전시실에 들어서자 눈 앞의 검은 벽에는 흰 글씨로 이러한 제목이 쓰여있다.
동선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코너를 돈다. 어떤 조각이 기다릴까? 오늘의 이 조각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았고, 어떤 형태 앞에서 '이것은 나'라고 수긍했을까?
조각과 마주한다. 검은 배경에 연극적인 핀 조명을 받으며, 적갈빛 나무 도막이 서 있다.
한 인간의 얼굴이다. 사각의 목재에 눈, 코, 입을 연상시키는 흔적들을 새겼다. 그 아래로 나무의 나이테가 잉크로 그린 듯 선명하다. 얼굴은 단순화되고 추상화되었다. 귀와 이마는 생략되었고 정수리와 뒤통수는 깎여 나가 두상은 사각형이다.
이전 조각에서 김종영은 굳건한 의지와 흔들리는 눈빛을 가진 사실적인 자각상들을 만들었었는데, 71년의 작품은 왜 이렇게 단순화했을까? 이러한 생략과 추상화의 효과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을 곱씹기 위해 잠시 피카소가 영감을 받았던 아프리카 가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적인 화풍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기괴한 신체의 표현에 이르는데에, 아프리카 가면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가면에서 미술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었고, 이는 큐비즘과 후대 미술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고전 미술을 학습한 피카소에게 파리 아프리카 미술관에서 마주한 가면들은 큰 충격을 주었다.
"완전히 혼자였다.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나는 계속 거기에 있었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인지했다." 훗날 피카소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본다.
가면등에는 구체적인 묘사도 없고 눈 코 입만 투박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 형상들에서 강력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어째서 이런 단순한 형태에서 정신성과 영원성이 느껴지는가? 가면을 연구하던 피카소는 그 후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는 회화와 조각의 진정한 특성은 외부 세계의 어떤 면모를 지시하는 기호이자 엠블럼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왜곡 없이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떄문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표현되는 것이 중요하지 대상과의 정확한 닮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품은 그 내적인 논리에 따라서 강력한 효과를 불러오면 된다. 이후 피카소의 작업은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형상들로 나아갔다.
김종영도 이와 비슷한 생각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느껴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찰흙을 붙여 사실적인 두상을 만드는 것보다 나이테가 새겨진 나무 토막을 최소한으로 깎아나가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작품이 주는 독특한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 작품의 면면을 짚어보자. 우선 재료와 기법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다. 김종영은 나무 도막에 직접 조각을 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위엄의 근원이다. 이 "직접 조각" 방식은 사용하는 재료의 구체적인 특성을 관찰하고 이에 반응하도록 한다.
찰흙으로 형상을 만든 뒤 석고로 캐스팅하여 그 안에 브론즈 등의 주물을 흘려넣어 굳히는 통상적인 조각 방식과 비교해보면 이 방식이 얼마나 특별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캐스팅에서는 '석고', '주물' 의 일반명사로서의 재료를 사용한다. 오늘 사용한 이 석고와 한달 뒤 사용할 저 석고는 물론 물질적으로 다르지만 같은 속성을 지니기에 조각 작품에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 결과 만들어진 이 브론즈 조각과 저 브론즈 조각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게 된다. 주물 캐스팅은 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나무나 돌 같은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재료에 직접 조각할 경우, 조각의 행위는 거두어드린 재료 고유의 특성에 반응하는 일이며 그 결과 오로지 하나뿐인 조각이 만들어진다. 이는 작품에 드리운 아우라의 근원이다. 아우라는 어떤 것이 특정한 시공간에 유일무이하게 있으며 오로지 그곳에서 그 순간에만 마주할 수 있을 때, 또 작품에 작가 고유의 몸짓, 흔적이 담겨져 있을 때 발생한다. 책과 스크린에 복제되어 유통되는 작품이 아니라 미술관의 벽에 걸린 작품을 직접 보았을 떄, 그 원본에서 느껴지는 힘, 경외심, 인간의 고뇌의 흔적이 신비함, 위대함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자각상>이 그러하다. 이 작품은 나무의 각 부분에 반응하며 나무 조각에서 한 인간의 형상을 이끌어내었다. 그 결과 나무의 각 부분은 그 본래의 기능이 전도되며 작품의 내적 구조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나무 옹이가 그 자체가 아니라 눈동자가 되고, 나이테가 인간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주름이 된다. 조각 안에서 나무의 나이와 인간의 나이는 하나가 되고, 이 조각은 스스로의 몸을 만들어가며 성장하고 늙어가는 자연물로서의 작가의 자기 인식을 담게 된다.
알고보니 잘려나간 귀와 이마, 사각으로 처리된 두상은 이 재료의 삶, 즉 나무도막의 출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이 조각에 사용된 금강송이 1960년대 초반 숭례문 중건공사때 나온 목재 중 하나라고 보는데, 당시에 이 목재들을 서울대와 홍익대 등 미대에 재료로 나눠줬다고 한다. 이 조각이 건축 부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두상임에도 뒤통수가 둥글지 않고 머리 뒷부분이 잘린 듯 납작한 것이다. 두상이 납작해진 이유가 이러한들, 이 또한 중요한 조형적 효과를 낳는다. 형상을 더 단순화 하고 추상화하며 시선을 눈 코 입과 나무결에만 집중시키는 것이다. 거칠게 처리된 뒷면은 한 인간의 정제되지 않은 우둘툴둘한 내면과 존재양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이 유일무이한 나무도막에 새겨진 결단과 고민의 결과물이, 고유한 개체로서의 이 나무와, 자기 자신과,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이 복제불가능한 원본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고작, 기껏해야 이 정도 존재라니.
자신의 존재양태에 대한 겸손하고도 진솔한 표현이다. 자연의 일부, 세계 속에서 흔들리는 자, 그럼에도 자신의 단단한 부피와 물질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 이 작품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김종영미술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은 김종영을 "무심한 돌덩어리와 나무토막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엄숙한 ‘美의 수도자’" 라고 설명하는데, 이 자각상을 비롯해 그가 돌과 나무에서 이끌어낸 여러 미적 형상들을 상설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