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은 왜 네모를 그렸을까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을 기억한다. 하늘로 가지를 뻗은 한 그루의 겨울목을 그는 그렸다. 잎을 다 떨군 석양의 나무는 발광하듯 빛을 머금고 있다. 1909년의 그림이다.
2년 뒤, 그는 또 다른 나무를 그렸다. 전과 비슷하게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없지만 이번에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나무 자체라기보다는 나뭇가지들의 교차로 구획되어진 하늘의 공간이다. 비어있는 하늘을 가지들이 예각으로 둔각으로, 삼각, 사각으로 분할시킨다. 전에 화면을 채웠던 붉고 푸른 색채들은 무채색으로 바뀌었고, 나무 껍질의 울퉁불퉁한 질감과 저물 녘 하늘의 빛, 그림자의 여러 양상들은 굵은 붓질과 서로 다른 교차하는 면이 되었다.
이듬해 그린 <개화하는 사과나무>에서는 나무나 꽃의 형상조차 뚜렷이 찾아볼 수 없다. 화면에 있는 곡선의 선들이 혹여 나뭇가지이려나, 열리듯이 안에서 밖으로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굽은 선으로 어떤 펼쳐짐과 피어남의 느낌을 주려는 건가, 옅은 분홍, 주황, 초록, 하늘의 색채로써 꽃이 피는 봄, 어린 꽃잎과 나뭇잎, 맑은 하늘이 떠오르는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다. 꽃피는 사과나무의 형상을 단순화하면, 혹은 그 나무의 느낌, 약동 힘을 우선적으로 추출하면 이런 모습이려나 생각한다.
몬드리안은 이런 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캔버스에서 형상은 점차 선, 면, 색으로 해체되어 갔다. 식별가능한 이미지가 없어도 그는 형태, 색채, 그들 간 배치와 리듬 만으로 대상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고, 후에는 대상 없이 선, 면, 색으로 모종의 느낌만을 전달했다. 작품의 제목 또한 더 이상 외부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구성> 등으로 바뀌었다.
몬드리안은 1914년 H.P 브레머에게 보낸 편지 중에 자신의 예술관을 표명하며 추상으로 나아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극도로 의식적인 상태에서 납작한 표면에 선과 색의 조합을 구성한다. 자연 (혹은 내가 보는 자연)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다른 어떤 화가에게처럼 나를 감정적인 상태에 빠뜨려서, 무언가 만들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근원에 도달할 때까지 (여전히 외적으로 나타나는 근원일 뿐이겠지만!) 모든 것을 추상화시켜서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워지고 싶다.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도의 직관을 따라 수평과 수직선들을 의식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조화와 리듬을 담고 있는 선들, 즉 아름다움의 기초적인 형태들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실이고 강렬할 것이다.“
몬드리안의 그림들은 추상의 세계로의 초대였다. 형태를 제거한다는 뜻의 추상은 어떤 대상 혹은 세계로부터 상을 추려내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에서 또한 ‘~로부터(from)’을 뜻하는 ‘ab-‘와 ‘덜어내다, 철수하다 (draw off)’를 뜻하는 ‘trahere’가 결합하고 변화해 ‘abstract’라는 단어가 되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제하는 것, 그럼으로써 점차 그 본질로 다가가는 것이 추상인 것이다. 그 본질이 형태의 핵심이든, 존재의 정수이든, 창작 주체가 받은 인상과 감상의 본체이든 말이다. 혼돈한 감각에게, ‘그런데 본질은 이것이야’ 라고 추상은 말한다. 이 시끄러운 감각지각의 세계가 추상 작품 속에서는 정돈되어 있다.
미술에서 추상은 구상과 대비된다. 상을 갖추다는 뜻의 구상은 실제로 있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미술을 지칭한다. 구상미술은 대상의 외관을 꼼꼼히 연구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대상의 진실에 다가가거나, 사회 속에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이 삶에 대해 갖는 두 종류의 태도를 바탕으로 추상과 구상을 구분지어 볼 수도 있다. 구상미술은 현실의 삶을 중시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는 현세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현실적 소재를 형식 속에 담아내고 그 수용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다.
한편 추상미술은 가치가 초월해 있다고 보며 생활세계의 이모저모를 초월한 관념, 신비성,종교를 추구한다. 정신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보다 우위에 두고 감각적인 삶 너머의 세계에 다가가고자 하는 태도가 추상미술의 바탕에 흐른다.즉 추상미술은 작품이라는 감각적인 매체를 통해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추상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형상을 모방했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것이 비추고 안내하는 정신성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추상미술에서 선, 색, 형태 등의 조형언어는 어떤 가시적인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감각에 울림을 가져오면서 어떤 내적인 실재, 정서, 느낌을 일깨운다.
이 미술이 환기하는 실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지정하기란 불가능하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인 유영국, 김환기, 장욱진의 그룹 ‘신사실파’의 창립전을 다녀간 비평가 이경성도 솔직한 말로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들 작품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름대로 정서에 호소하면서 무언가 절대를 상정하는 현실을 표현하려는 듯하다.”
그럼에도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상화가들은 추상의 방법으로써 각자의 주제를 발전시킨다. 예컨대 이경성은 이어지는 비평에서 각 작가의 주제를 이렇게 읽어낸다.
“유영국은 마치 항공사진과 같은 구도로서 추상세계를 탐구하고 김환기는 한국적 아름다움이 서려 있는 문학적 주제를 조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장욱진은 프리미티브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더 설명하자면, 유영국은 서사를 배제하고 조형 요소들의 비례, 균형, 조화로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미를 탐구했다. 철저히 계산된 구도와 색채를 선택해 자연의 원초적 색감과 심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한편 김환기는 한국적 풍경, 정서, 기물들의 형상을 점차 단순화시키고 그 본질을 추출해나간다. 장욱진은 둥글고 간결한 형태와 엄밀한 구성으로 천진하고 정감 어린 세계를 표현했다. 이들은 세계에 대한 진실을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 추상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신사실파’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이경성이 다녀갔던 1948년 전시 전후로 각자 본질을 향한 추출의 과정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어떤 추상회화 앞에 서서 그 조형요소들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느낀다. 이 가시적인 것들이 어떤 비가시적인 것을 은유하는지 내 내면을 더듬어 생각해본다. 그리고 몬드리안의 나무처럼 이 화면이 나오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 형상과 관찰과 모방이 있었는지 생각한다. 내가 추상을 한다면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어떤 느껴진 진실들에 대해서? 본질만 남은 이 조용하고, 시적이고, 장엄한 화면 앞에서 마음이 가라앉고 눈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