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연구의 역사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 디자인 연구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디자인이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욱더 디자인의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좁은 의미의 과학이 자연에 대한 법칙을 밝히는 것이라면 디자인 연구는 ‘인공물의 과학’ (Sciences of the artificial), 즉 인간이 만들어낸 제품 혹은 시스템을 경험적, 실험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디자인 연구는 인공물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산업혁명 및 1,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크게 발전했다. 저자는 디자인 연구의 역사를 디자인 방법론 및 디자인 과학, 두 가지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디자인 방법론은 디자인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적 도구를 가리킨다. 디자인 방법론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1세대 방법론과 2세대 방법론으로 나뉜다. 1세대 방법론은 정보 이론과 시스템 분석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디자인 문제를 해결했다. Horst Rittel은 1세대 방법론에서는 디자인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선형적인 방법론은 초기 단계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1세대 방법론을 보완하기 위한 2세대 방법론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적인 디자인 과정에 사용자가 참여하는 것이다. 사용자 가치 관점에서 디자인하는 2세대 방법론은 디자이너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회과학 및 인류학의 기여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논리적 사고와 인문주의적 가치가 융합된 지금의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이 탄생했다.
디자인 과학은 체계화된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을 가리킨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문제와 접근법은 변하고, 그 과정에서 디자인 과학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공학 분야와 융합하며 발달해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맞이하며 디자인은 문제 해결 과정으로 여겨졌다. 복잡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공학, 인체공학, 문화 인류학, 사회 심리학 등의 분야와 협업하고, 이들 지식을 디자인 과정의 각 단계에 적절히 배치하며 조직화하는 학문으로써 발전하였다. 따라서 수많은 디자인 연구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학 분야의 기술적 진보와 경험을 통해서도 디자인 학문은 발전할 수 있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 온 디자인 연구와 디자인 방법론의 역사는 다음 세대의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산업 시대에 탄생한 1세대 디자인 방법론은 노동자의 생산 활동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하기 위해 이들의 행동을 분석한 뒤, 불필요한 자세를 제거하고 최적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뿐만 아니라 디자인 의사 결정 과정을 체계화하려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마치 기계의 메커니즘과 같이 여겼다. 이에 대한 반발심과 민주주의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타난 2세대 디자인 방법론에서는, 인본주의적 가치가 더해져 사용자가 디자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적 디자인은 지금 시대의 디자인 방법론에도 주요한 흐름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디자인 방법론은 무엇이 될까?
1세대 디자인 방법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세대 디자인 방법론이 태어난 것처럼, 2세대 디자인 방법론의 한계를 분석하는 것은 이다음 세대의 디자인 방법론이 무엇이 될지 예측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은 전문 디자이너가 단독으로 의사 결정하는 디자인 방법보다 비효율적이며 뻔한 결과물이 나오기 쉽다. 이러한 2세대 디자인 방법론의 특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다음 두 가지의 방향성이 있으리라 추측한다.
첫째, 진보된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의 디자인 방법론의 비효율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론이 나타나지 않을까. 이제 IT 기술과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혁신적인 IT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제안하는 디자인 연구는 지금도 많이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특히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인 인공지능 기술이 다음 세대의 디자인 방법론의 핵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둘째, 이때까지는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이 시도되지 않았던 분야에 대한 탐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을 통한 의사결정 과정은 조금 더디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 사항을 고려하고 전문가와 초보자 간의 의사소통을 무리 없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경우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을 쓰는 것이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가령 정책 개발 과정과 같이 민주적인 가치가 우선이 되는 분야에서는 필수적일 수 있다. 이처럼 지금의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고, 새로운 분야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론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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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의 내용은 작가의 고유한 생각이 아닌, 토론을 통해 나온 생각들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