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6년 차. 올해는 꼭 디펜스 할 거예요.
"미안하지만 올해 졸업은 힘들 것 같아"
예정대로라면 디펜스가 진행되어야 할 2023년 가을학기를 앞두고,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에서 끝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했다. 난 올해 졸업할 수 없다... 망했다. 그렇지만 내가 자초한 일이다.
지난 2023년은 참 감사하게도 나에게 많은 기회가 찾아왔고, 휴가를 쓰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거나 강연을 가야 할 정도로 일을 짊어지고 살았다. 디펜스를 미루면서까지 사이드프로젝트로 꽉 채운 한 해를 보냈던, 어느 전일제 대학원생의 극단적인 사이드 프로젝트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약 스무 개 남짓한 사이드프로젝트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후속 글에서 차차 풀어보려고 한다.
배경
내 박사연구는 <지역상점의 커뮤니티 기반 고객 경험 디자인 전략>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동네가게의 창의적인 경험 디자인을 통해 단골 커뮤니티, 팬덤, 비즈니스 콜라보레이션, 주민 공동체 등을 만들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적 경쟁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동네 활성화도 이뤄보겠다는 내용이다. 이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로컬크리에이터'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박사연구를 시작할 당시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학과에서도 '혹시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걸 하겠다는 거냐?'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 바야흐로 2022년, 로컬계의 대부이신 모종린 교수님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20대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 '로컬크리에이터 양성'이 선정되었고, 이듬해 2023년은 그야말로 로컬크리에이터의 해였다.
발단은 '조바심'
예정대로라면 2023년 가을에 디펜스를 치를 참이었다. 실증연구는 이미 다 실행해서 데이터는 다 모았고,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논문만 쓰면 되는데, 왜 그리도 진도가 안 나가는지... 갑자기 '이거 정말 필요한 연구 맞을까?' 하는 근원적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업계는 매일매일 변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맨날 이렇게 노트북만 부여잡고 있다가는 도태되는 거 아닐까? 시대에 뒤떨어진 박사연구가 나오면 어쩌지? 연구가 수십 년을 앞서있는 기술개발 쪽 분야와는 달리, 내가 하고 있는 연구분야는 현장의 이노베이터들이 훨씬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의 속도는 늘 현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보니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차에 당근에 재직 중인 친구와 커피챗을 하다가 아주 즉흥적으로 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내가 현장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서로의 분야를 궁금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로컬 연구자, 로컬 활동가, 당근 동네생활 마케터와 디자이너들이 함께 모여 동네 이야기를 하는 캐주얼한 포럼인 <소름동네>는 그렇게 기획되었다 (2023년 1월). 그리고, 이러한 실무 디자이너와 대학원생의 교류는 내 오랜 위시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관련 글: 디자인 지식, 현업과 학계의 간극)
학교를 벗어나 내 연구를 소개하는 경험
<소름동네>에는 IT, 디자인, 마케팅, 미디어, 건축, 도시설계 분야의 연구자와 실무자 10명이 한 자리에 모였고, '동네'라는 주제로 5시간 동안 아주 깊은 토론을 이어나갔다. 2023년과 함께 시작한 첫 번째 사이드 프로젝트는 나에게 엄청난 도파민을 분비시켰다. 연구자로서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맥락에서 내 연구를 소개하는 경험은 굉장히 도전적이면서도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늘 조금 억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왜 항상 내 연구와 내 의사결정을 납득시켜야 하는 걸까. 내 직관대로, 내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없는 걸까. 지도교수님께는 매번 빠꾸 먹고, 학과 사람들한테 '이게 디자인 연구예요?'라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듣고, 업계 사람들한테는 '이쪽 연구하는 건 알겠는데 결과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들어왔다. 물론 지도교수님께서는 나의 학위연구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코멘트를 주신 것이고, 학과와 업계 사람들은 내 연구에 관심을 표한 것이었지만, 이미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이런 상황들은 불을 지필 뿐이었다. '아, 역시 내 연구는 쓸 데가 없나...' 내 연구가 마치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쯤, <소름동네>를 통해 업계의 사람들이 내 연구에 흥미, 필요와 가치를 느끼고 표현해 주었을 때,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 연구가 꼭 학계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을 필요 있나? 내가 연구를 통해 만들어낼 지식은 장차 업계에 있는 실무자들에게 기여하게 될 텐데, 아직 설익은 나의 연구내용조차도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내 연구는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감을 얻었던 계기가 되었다. 조금 건방지고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박사연구를 하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에게 시기적절한 촉매제였다.
스노우볼 이펙트
참 신기하게도, 2023년 3월에는 본격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의 기회들이 찾아왔다. 비로컬 김혁주 대표님 덕분에 로컬업계의 미디어에 인터뷰가 실리고 전국구 행사에 초대될 수 있었고, 윙윙 이태호 대표님 덕분에 대전 유성구로 시작해서 충청권역까지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직 박사과정인 나에게 이런 과분한 기회들이 찾아오는 것이 신기했다. (2023년이 본격적으로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이 확대되던 해이기도 했고, 로컬 업계에서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던 차에 KAIST+디자인+박사과정인 내가 적절한 후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네트워킹 세미나, 포럼 발제, 토론, 모더레이터, 프로젝트, 강연, 멘토링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사이드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고, 나에게 들어오는 제안을 거의 다 수락했던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또 오지 않을 기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렀고, 매일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인사이트가 쏟아졌고, 너무 흥분되는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들도 많이 생겼고, 졸업 후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그림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서랍 한 켠에 처박아둔 아직 미완성인 학위논문이 떠올랐다. 연구실 휴가를 써가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고, 너무 멀리 와버렸나 하고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산발적인 사이드 프로젝트가 결국 나에게 무엇으로 남게 될까?
나는 논문 말고 다른 방식으로 실적을 남기는 법을 잘 몰랐다. 그렇다고 모든 사이드 프로젝트를 논문화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업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인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을 적극 활용해서 나의 활동들을 최대한 아카이빙하고 널리 알렸다. 이로 인해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각각의 활동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나의 본분이 무엇이며 내가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잊고 싶지 않았다. 활동가이기보다는,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이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해오고 있는 거라고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계속해서 주지했다.
클라이맥스
가을학기와 함께 디펜스가 미뤄졌고 내 마음도 한 층 더 무거워졌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멈출 수는 없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기부 주관 <상권전문관리자 양성과정> 강사는 내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다. 최소 10여 년 이상의 상권 관리 경력을 갖고 계신 40여 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는데, 이때까지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하루짜리 강의, 세미나, 혹은 워크샵이었다면, 이번 일은 3회 차에 걸친 9시간짜리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연구한 것, 활동한 것을 총망라해서 교육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내 연구를 실무자 교육자료로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교육과정이 끝나고 교육프로그램을 관리하셨던 선생님들, 수강하셨던 선생님들 모두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이다', '교육프로그램 중 가장 재미있었던 강의였다', '정말 필요한 연구를 하고 계시다'며 지지와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최선을 다해 만든 교육과정이었기에, 한 치의 아쉬움도 없이 후련하게 끝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이때까지 한 연구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나에게는 당연하게 보였던 나의 연구가, 실무자들에게는 새로운 인사이트와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다만, 박사연구가 아직 미완인 상태이다 보니 나의 강의에 잃어버린 퍼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박사 연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본진에서 증명받다.
우리 학과에서는 매 학기 박사과정생들의 연구 고민과 성과를 나누는 <박사 콜로키움>이 열린다. 2023년 가을학기 박사 콜로키움은 네이버의 후원을 받아 최고의 우수성과를 보인 대학원생에게 상금이 제공될 예정이었다. 보통 대학원생에게 성과라 함은, SCI급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거나 국제학회에서 Best Paper로 뽑힌 일일 것이다. 나는 올 한 해 내가 벌인 사이드 프로젝트가 비록 (아직) 학문적인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이 산발적인 활동들이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사회혁신 연구자는 지역과 일상의 차원에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에치오 만치니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혁신 디자인 연구는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현장에 임팩트를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구성했다.
그 결과, 우리 학과 <박사 콜로키움>에서 1등을 수상하여 연구장려금을 받게 되었다. 상금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학과 내에서 나의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더 짜릿했던 것 같다. HCI연구가 주류인 우리 학과에서 나의 연구는 마이너 오브 마이너였고, '아, 디자인과에서 그런 연구도 해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나조차도 '이 연구를 왜 굳이 이 학과에서 해야 할까' 하며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었었다. 때문에 나의 연구소개는 늘 왜 이 연구가 디자인 연구이며 왜 필요한지 납득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이런 의문에서 벗어나 내 연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현장으로 뛰어들어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왔는데, 이 사이드 프로젝트들로 나의 본진에서 내 연구를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뭉클했다.
얻은 것
주체성과 전문가적인 태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던 지난 일 년은 마치 '독립연구자로서의 수습기간'과 같았다.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교수님들 앞에서 심사받는 학생처럼 '이게 옳은 대답일까'하며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기보다는, 자기 확신을 갖고 나의 생각과 지식, 비전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였던 시간이었다. 이때까지 지도교수님의 코멘트에 의존하던 대학원생에서 한 뼘 더 자라, 내 연구에 대한 책임감과 주체성을 가진 독립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내 연구의 포지셔닝: 내 사이드 프로젝트는 연구와 그렇게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었다. 내 연구를 꺼내 보이자 나에게 들어오는 다양한 의뢰와, 내 연구에 대한 현장의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현장의 어떤 니즈를 태클할 수 있으며 어디에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커다란 지형을 파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박사연구의 발견점과 디스커션이 풍성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박사연구 전체를 어떻게 패키징하면 좋을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
Out of sight, Out of mind: 사이드 프로젝트로 인해 연구실에 체류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학위연구 집필에 들이는 시간과 집중력이 아주 바닥을 쳤다. 간혹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더라도, 자꾸만 머릿속으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생각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2023년은 학위연구 관점에서 보자면 '깜깜이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위연구 집필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는 연구실로 꼬박꼬박 아침 출근을 하고 있다. 혹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려 중인 대학원생이 있다면, 확실히 하나는 포기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시간의 부재: 2023년은 결혼준비를 하던 해이기도 해서, 결혼 전 가족과도 긴밀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중한 친구가 박사졸업 후 유학을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했고, 또 다른 절친한 친구는 타국 생활 중 멘탈 케어가 필요한 상태였는데, 그렇게 가까운 이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다 놓칠 수밖에 없었다. 자주 번아웃이 왔던 것은 물론이다.
결론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단짝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과학고 시절에도 늘 동아리나 특별활동 등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달고 살며 자주 자습실에 없었다고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본업의 원동력을 얻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던 내가 자라, 대학원생이 되어 디펜스를 미뤄가면서까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렇지만 나는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박사연구에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를 필드에 완전하게 꺼내놓는 경험이 아주 필요했고 시기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오롯이 학위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또한 전일제 대학원생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도교수님의 지지와 응원이 컸다고 생각한다. 망나니 같은 박사과정생에게 한없이 드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올해는 착실하게 연구실에 붙어있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