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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Jul 22. 2017

진짜 반반육아를 찾아서

[우리의 현재]

방송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봐도 이 작품이 누구를 겨냥하고 만들었는지 유심히 본다. 2015년 화제를 모았던 <응답하라1988> 역시 첫 회를 보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실험적인 특징이 많고 전작의 흥행을 넘어야 하는 부담도 있으므로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까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한참을 보는데 첫 회 말미에 드라마의 방향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피켓 걸로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하는 덕선(혜리)은 마다가스카르의 불참으로 그간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갔다. 울적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님은 언니 생일 케이크로 자신의 생일을 재탕 하려한다. 덕선은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그간의 서운했던 것들을 쏟아내곤 밖으로 뛰쳐나가버린다. 아빠 성동일이 따라 나가 새로 산 생일케이크 하나를 덕선에게 건네며 던진 ‘미안하다... 아빠도 처음이라 그래..’라는 위로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그리고 이 대사는 대한민국 40대, 특히 여자40대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바로 당신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여자40대는 이 장면에서 덕선에게도 또 아빠에게도 감정 이입할 수 있다.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남아 있던, 여러 형제자매 사이에서 제 몫의 사랑을 다 얻지 못했던 그녀들은 덕선의 서러움에 공감하기 쉽다. 엄마 이일화가 아닌 아빠 성동일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가부장제 시대가 그녀들에게 전하는 사과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제 부모가 되어 엄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그녀들의 입장에선 성동일에게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전 세대야 어릴 적부터 언니, 이모로 육아에 참여했겠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그런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다. 나아가 가사 부담에서 벗어나 계속 공부만 해온 그녀들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충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단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노동의 환경에 던져진다. 헌신적인 우리 엄마 세대를 본 게 있어 기대와 의무감은 높지만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정말 육아가 처음인 엄마들 입장에서 처음이라 미안하다는 고백은 그녀들의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자40대의 과거와 현재 입장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으므로 온전한 복고라고 할 수는 없다. 80년대에 부모였던 사람들은 대개 전쟁을 겪은 세대라 이런 ‘나약한’ 고백을 할 리가 전혀 없다. 결국, 이 드라마는 TV 플랫폼에서 최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VIP 고객인 여자40대의 마음에 파고들며 그해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무능한’ 부모들이다. 그래서 그 기대만큼 따라가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눈물겹다. 그러면 아빠는 어떤가. 배운 적도 없고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인지 본 적도 없다. 반면 밖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하다 집안에서 제 자리 없는 우리 아버지 세대를 보면서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에선 갈 곳 모르는 미아나 다름없다. 아빠의 처지 또한 안쓰럽다.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서 육아를 시작한다.    


[반반에 대한 불신]

반반육아라는 말은 지향점이 있을 뿐 실재하기는 어렵다.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엄마는 반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거부감이 생길 것이다. 집에서 그다지 쓸모없이 긴 시간만 보낸 아빠들이 쉽게 제 역할을 다했다는 말을 할 때 엄마들은 분통이 터진다. 청소하고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놀아주는 엄마에 비해 TV로 축구 경기를 보면서 아이들의 요구를 무성의하게 응해주는 아빠의 모습은 육아의 퀄리티를 의심하게 한다. 인텐시브+토털 케어를 몸소 실천하는 엄마를 옆에 두고 전후반에 연장까지 풀타임을 소화하는 축구선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아빠의 모습은 분명 아이러니하다.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야]

한편 아빠는 엄마의 역할을 따라가는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기가 울면 울음을 멈추게 할 만 한 건 다 해보게 된다. 기저귀를 신속하게 갈아주고 토한 옷을 벗기고 오므린 손가락 사이로 팔을 끙끙거리며 빼내 옷을 입히고 또 자세를 바꿔가며 아기를 달래보는데 그래도 아기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참 당혹스럽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가 나타나 아기를 안아주면 바로 울음을 멈춘다. 아빠의 노력은 무색해지고 아빠들은 그 순간 자신이 양육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온종일 놀아줬어도 잠자리에 누워서는 ‘이제 아빠는 밖에 나가서 자요.’라며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면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왼손은 거들 뿐....’ 다시 아이가 잠들 때까지 멍하게 누워있어야 하는 역할은 엄마의 것이 된다. 공동 책임의 육아를 말할 때 아빠는 허탈하고, 엄마는 또다시 억울하다. 노력하자 해도 닿을 듯 닿지 않는 게 반반 육아인지 모른다.    


[패자독식]

엄밀히 말해 반반육아의 장애가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서만 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누가 제1 양육자가 되느냐’에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아내가 아파서 또는 이혼해서 아이를 전적으로 맡아 키우는 남자들이 있다. 능숙한 아빠들을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남자가 육아 전선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고 해도 그것을 성별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제1 양육자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내도 제2 양육자의 실질적인 무게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 1순위가 정해지면 그 다음 순위와의 격차는 좁히기 어렵다. 그리고 그 1순위를 여성들이 맡는 이상 남성이 할 일이 여성만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젊은 아빠들에게는 중요한 화두가 있다. 우리의 아버지와 같은 양육자가 되지 말자는 것.  어떻게 가정을 함께 꾸릴지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요즘 아빠들은 우리의 아빠처럼 살아가는 길을 버리고 함께 책임지고 키우는 새로운 길을 택하고 있다. 당연히 해본 적 없는 것을 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취미처럼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닌 인생 전체를 걸고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는 건 매우 도전적이며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당구나 한  판 치고 자장면 먹으면서 만화 보고 싶은 아빠들이 꾸역꾸역 집에 앉아 비록 TV는 보지만 육아에 참여하려는 모습은 안쓰럽다. OCN에서 방송한 <수컷의방을사수하라>는 그런 남성들의 정신적 방황을 자극하며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눈에 보이는 과제]

이미 정해져 있는 일부터 잘하는 게 상책일까? 집안일을 믿고 맡길 만큼 잘해 내고 가끔 손이 모자란 엄마를 대신해 아기를 잠시라도 잘 마크해주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다. 반반육아는 몰라도 일단 가끔 오시는 장모님만큼은 해줘야 다음을 논할 것 아닌가. 음식을 잘 만든다면 아쉬울 게 없다. 비록 아이들 마음속에 지분은 50%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종합적인 평가에서 반반은 획득할 수 있을 거다.    


[새로운 의미부여]

하지만 그다음 고민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엄마의 역할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짜 아빠의 역할을 찾아 나서는 것. 조금 더 멀리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아빠의 역할이라는 건 생각보다 크고 넓은 영역일 수 있다. 단지 아무도 발견하지 않아 그냥 버려져 있는 외딴 섬처럼 보일 뿐이다. 아빠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일까?     


이 에세이는 평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육아를 해보겠다는 목적으로 좌충우돌해가며 살아온 나만의 육아 이야기다. 서천석 선생님처럼 육아에 지칠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줄 위로나, 오은영 선생님처럼 육아에 헤맬 때 전해주는 명확한 가르침은 없다. 단지 아이들 키우면서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시도해본 여러 (검증되지 않은) 일들이 담겨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빠 육아의 정석을 세우는 게 아닌 아빠 육아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 그 일은 엄마도 할 수도 있으니 성별의 구분을 꼭 전제로 하진 않는다. 우리의 목적은 화목한 가정을 이뤄 풍성한 삶을 사는 데 있으니 결국 고민을 구분 짓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


기본적으로 육아는 고행 같다. 매일 한계를 느끼고 인간성의 바닥을 확인한다. 잠자려고 누우면 오늘 아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자책하고 또 좌절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뭔가 잘못 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마음이 드니 뭘 어찌 해보는 것도 참 조심스럽다. 육아에 미숙하다는 대전제가 매일의 일상을 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그런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해보는 즐거움을 찾아보고 싶다. 아빠들이 지닌 마음속 모험심을 육아의 현장에서도 펼쳐본다면 육아라는 것도 참고 견디는 일 이상의 즐거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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