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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Jul 29. 2017

출산동반자. 반반육아의 시작

[진심과 변심 사이]

많은 아빠에게 정말 묻고 싶다. 아내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전에 어느 정수기 광고에 나온 부부는 임신 소식에 환호하고 울먹이던데... 다큐 형식으로 만든 이 광고(2009년 광고대상까지 받았다)에서 남편은 믿겨지지 않는 듯 흥분하고 또 눈물을 글썽이는데 그걸 보던 어릴 적에는 나도 그 상황에선 그렇겠지 싶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아내의 임신 소식에 나는 웃지 못했다. 억지로 웃으려고 했지만, 표정이 더 괴이해져서 차라리 비장한 모습을 보이는 게 편했다. 기쁜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정 정도...     

그런데 진심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여성 입장에서 남자의 반응은 꽤 중요할 것이다. 한 생명 앞에서 서로가 미래를 담보하지 않을 경우 생물학적으로 곤경에 처할 위험에 노출되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치 않는 임신에 현실을 회피하려는 남자와 앞으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직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려는 남자의 표정을 구별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그러니 남편들은 일단 최악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쁜 표정이라는 확실한 하지만 제 심정과는 상반되는 감정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정말 다들 그렇지 않았나?   

 

한 생명이 자라서 독립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더 이상 나를 위한 방랑이나 모험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 아이가 매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 내 인생은 루틴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사회생활은 공성전이 아닌 수성전으로 전환된다는 것. 그래서 도전적인 과업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대신 노력과 성과 사이의 최적점을 찾아 좌고우면해야 한다는 것. 아이를 키우기 위해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며 그러기에 한시라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건 절대 쉽지 않다는 것. 특히 내가 부모와 겪은 어려움만큼 다시 아이와 그 고단한 게임을 치러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몇 초 만에 내 머릿속을 지나간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이 사건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오랫동안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그런 무거운 생각에 한참 눌려 지내다 보면 현실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주로 드는 생각이 생활을 어떻게 꾸려갈 건가에 놓여 있다. 맞벌이하다 외벌이가 되면 지금의 생활 중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앞으로 추가될 육아비용은 어떻게 충당할까? 아빠에게 아이의 출산은 생의 위기다.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에서 아빠는 밤마다 먹을거리를 물어온다. 그 남자처럼 삶을 유지해야 하는 강박감이 생각을 지배한다. 그곳에만 마음이 가 있으니 정작 임신과 출산의 과정 자체는 아내의 몫이 되기 쉽다. 처음부터 아빠가 할 일이란 게 많지 않다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부모 세대처럼 집에서 존재감 없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존재감 없는 아버지들이 짊어졌을 짐에만 생각이 가 있었다.     

[자연 출산]

어느 날 아내가 자연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2012년경 <SBS스페셜>에서 방송했던 자연 출산 관련 다큐멘터리를 함께 봤다. 자연출산은 흔히 말하는 자연분만과 조금 다르게 출산 과정에서 의사와 약물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촉진제 없이 진통이 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무통 주사도 주지 않는다. 관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음식을 먹으며 힘을 내서 진통을 겪어 내며,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산모와 아이의 힘으로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게 기다린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분만(Delivery) 이라는 표현 대신 아이가 ‘태어나는‘ 출산(Birth)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이가 태어나는 공간의 조명도 어둡고 아늑하게 조성하여 연약한 갓난아기가 편안할 수 있게 배려한다.     


요가를 꾸준히 해 왔던 아내는 출산 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해 오히려 아이와 산모의 고통을 덜게 하고, 의료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자연 출산의 콘셉트에 동의했다. 그리고 출산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흥미로워했다. 나는 처음 알게 된 세계였지만 아내의 의견을 존중했고, 어릴 적 어머니가 당시 가장 서구식으로 출산하셨는데 출산 이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말씀을 종종 하셔서 자연 출산이 장기적으로 아내의 건강에 득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응급 수술로 전환될 때를 대비해 조산원보다는 의사가 상주하는 자연출산 전문 병원을 선택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남들이 하는 방식을 따르는 게 편할 것도 같았다. 다들 하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면 이런 도전도 가치가 있을 거라 믿었다.     

출산을 준비하며 꽤 긴 시간 병원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함께 들었고 책도 읽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출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미 꽤 든든한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가더라도 출산이 임박해지기 전까지 남편은 진통 경감을 위해 산모를 지압해주거나 육체적으로 지탱해주어야 하고 또 위로와 격려를 통해 심리적인 지지도 해주어야 한다. 자연출산은 남편이 출산의 구경꾼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반반 육아는 자연 출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어둡고 긴 터널]

2013년 무더운 여름. 자정을 넘긴 어는 날 아내가 진통을 느꼈다. 아내는 나에게 잠을 자두라고 말했다. 긴 시간 산모를 도와야 하는 남편 입장에선 체력 보충이 필수다. 어설프게 아내의 진통에 동참한다고 깨어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가서 녹다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초기 진통을 혼자 2~3시간 정도 견디고 새벽에 나를 깨워 병원에 가자고 했다. 꽤 차분한 모습이라 나는 초산 때는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도착해서 내진하니 자궁문이 4센티미터 열려있다고 했고 우리는 출산을 위한 방에 들어갔다. 여느 집의 안방처럼 생긴 곳에서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오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초산은 만만치 않았다. 정오가 되어서도 출산 과정은 계속되었다. 자연 출산이 사람 잡는 거 아닌가 싶었다. 무통 주사를 안 맞았기 때문에 산모가 덜 아플 수 있도록 마사지를 계속해주었다. 몇 시간 동안 하니 나 역시 기진맥진했다. 아내는 중간에 한 번 구토를 하곤 축 늘어졌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출산을 도와주러 온 둘라가 나에게 잠을 자두라고 했다. 아내가 죽기 일보 직전인데 잠을 자라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겠냐고 했는데 둘라는 ‘출산 후에 아기 안 보실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산모가 고통에 온몸이 신음하고 있을 때 나는 잠을 잤다. 안 올 줄 알았던 잠은 눈 감고 3분도 채 되지 않아 깊이 찾아왔다.    


눈을 뜨니 아기의 머리가 보였다. 밥을 먹고 오라고 해서 밥까지 먹고 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큰 산이 남아있었다. 조산사가 도착해서 지원했다. 출산 과정은 이제 전문가의 손으로 넘어갔고 나는 앉아 있는 아내를 뒤에서 안고 지탱해주었다. 아내는 진통이 파도처럼 왔을 때 맹렬하게 또 근성 있게 힘을 냈고 진통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는 연약한 아이처럼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것을 수차례 반복했다. 나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고통이 없었지만, 아내를 안고 있으면 그게 느껴졌다. 힘을 줄 때 필사적으로 내 팔을 잡았고 힘이 빠질 때는 몸이 덜덜덜 떨렸다. 고통이 전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치 나도 출산을 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워낙 긴박해서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아내는 내가 페이스메이커처럼 함께 뛰어주는 것 같아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고 했다.    


첫 아이는 14시간의 진통 끝에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아기는 아빠의 품에 한참 안겨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수유하는 것 외에 아기를 돌보는 일은 아빠의 몫이었다. 자연 출산의 경우 보통 다음 날 바로 퇴원을 한다. 회복력이 빠르다. 그만큼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다. 특히 모유 수유에 전념할 수 있어 초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반반육아 마인드]

같은 집에 왔는데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아기는 작았지만 존재감이 대단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는데 조금 전까지 산모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봐왔던 터라 육아에 거리를 두는 건 불가능했다. 서툴러도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 같다.     


신생아 옆에 계속 붙어 있다가 며칠 만에 밖에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한참을 참았다 싶었는데 피우자니 신생아의 작은 코가 들이마실 담배 냄새가 마음에 걸렸다. 일단 조금 더 지나 피우자고 마음먹고 집에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담배를 그만 끊게 되었다. 15년이나 피웠는데 금연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첫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만 4년 정도 되었는데 그사이 금단 증세를 느끼지 않은 게 신기하다. 그전엔 금연 선언 후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 괴로웠던 경험을 떠올리면 참 놀랄 만큼 위기가 없었다 싶다. 그건 ‘놀랄 만큼’ 내 곁에서 바짝 붙어 한 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아이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산모를 위해 또 아기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예비 아빠들이라면 그 결심을 실천할 환경부터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로 생각한다. 굳은 결심을 지탱할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궤도를 이탈하기 쉽다. 엄마들도 아빠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말로 단속을 하기보다는 함께 할 분위기를 만들기를 권유한다. 말로 하다 보면 마음만 상하기 쉬운 것 같다. 나의 반반 육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저 아빠의 짐을 어떻게 질 것인지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출산과 육아의 현장에서 든든한 지원군, 동반자가 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고, 한편으로 더 쉬운 일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자연 출산은 반반 육아를 만들어가는 첫 단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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