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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PD의 반반육아 에세이
by 김PD Aug 05. 2017

새로운 돌잔치를 제안합니다.

[내가 만드는 예식]

요즘은 결혼식 풍경이 다양해졌다. 주례 선생님 없는 예식은 이미 흔해졌다. 대형 예식장이 아닌 야외로 나가기도 하고, 가족끼리 조촐하게 진행하기도 한다. 신부의 순결한 흰색 드레스도 필참은 아니다. 신랑 신부의 행진 음악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늘어간다. 축하 이벤트도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신랑신부 입장 직후 밥 먹으러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대신 예상 밖의 시도를 기대하며 식장에 앉아 있곤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결혼식 씬은 ‘도발’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랑 팀(돔놀 글리슨)의 추억이 담긴, 지미 폰타나의 노래 <일 몬도(Il Mondo)>에 맞춰 붉은 드레스를 입고 행진하는 신부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신랑이 사는 동네에서 여는 피로연은 폭우로 엉망이 되지만 남자 주인공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 결혼식 날짜를 바꾸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뜻밖의 에피소드야말로 결혼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가 과거를 바꾸지 않은 피로연 씬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어바웃 타임>이 강조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결혼식이 다채로워졌다는 건 기존의 정형화된 예식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줄어든 덕분이다. 어르신들의 뻔한 말씀을 의지하고 살기엔 현실 결혼은 훨씬 감당하기 어렵다. 차라리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절실하다. 준 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비즈니스를 강조하다 보면 내 결혼식은 남의 결혼식과 다르기 어렵다. 모든 사람에게 ‘공인’받는 게 중요한 시대도 아니다. 그런 것으로는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보증받지 못 한다. 예전 영화에선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던 사람이 식장에 뛰어든 진짜 연인을 따라 탈출하는 장면이 종종 쓰였다. 지금은 타인의 압력이 내 선택을 지배하는 시절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신랑 신부들은 어떤 이유건 모두 자기가 좋다는 사람과 결혼한다. 그러니 결혼식은 더 이상 억지로 마음을 봉합하고 과거와 단절하는 예식이 아니다. 다수의 시선이 향후 닥쳐올 위기 앞에서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각자 자유로울 수 있는 지점을 찾다 보니 결혼식은 더 다양한, 그래서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돌잔치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유독 돌잔치는 그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돌잔치를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안 한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예식을 치르는 일이 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변화는 그다지 근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데도 꾸역꾸역 하는 게 많다. 우선 왜 1년이 지나간 시점에 맞춰 행사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100일, 1년 등 숫자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숫자는 보통 계기를 마련해주니 그것에 따르는 게 부자연스럽진 않다. 하지만 돌잔치를 해본 부모 입장에선 당시 느꼈던 괴로움들이 분명 스쳐 지나갈 것 같다.     


일단 아이가 두 발로 잘 서지 못한다. 걷는 아이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계속 안고 있어야 한다. 돌잔치에 맞춰 미리 돌사진을 찍는데 그 역시 고난이다. 흔들대는 아이를 세워 그럴듯한 찰나의 순간을 담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그 결정적 순간이 담긴 사진들을 진열한 가운데 아이는 때를 못 맞춰 자꾸 잠이 온다. 평소에는 ‘자라 제발 자라...’ 하다 그날은 잠을 안 재우니 아기도 무슨 일인가 싶을 것 같다. 아이가 짜증을 내니 부모도 짜증이 난다. 1년 동안 사람처럼 못 살았는데 오늘만큼은 출산 전처럼, 아니 결혼 전처럼 꾸미고 나와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던 마음이 욕심이었다 싶다. 지친 표정과 그날 입으려 산 예쁜 옷이 대조를 이룬다.    


많은 하객을 모시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아이가 잘 자랐는지 정말 궁금한 사람들까지 부르면 될 일인데 이 역시 성대하게 치르려다 보니 초대장 수가 늘어난다. 그 고생해도 돌잔치를 해야 돈이 남는다는 말들을 한다. 다른 사람들 돌잔치 때 낸 돈이 아까워서도 내 돌잔치는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이해는 간다. 그러다 보니 정작 행사의 주인공들이 잃는 게 많다. 우선 주연인 아기는 피곤해 지친다. 1년이 지나면 엄마가 준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돌잔치 후에 아픈 아이들이 많다. 조연인 부모도 마찬가지다. 축하 인사야 많이 받겠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밀려오는 허무함은 어쩔 수 없다. 1년 동안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를 응원하는 자리여야 하는데 하객이 많으면 부모 역시 스태프가 되어야 한다.     


[돌잡이를 왜 하는 건지...]

돌잡이를 빼놓곤 이 이야기를 할 순 없다.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처음에 잡은 물건에 따라 직업 등이 정해진다는 이 믿기 어려운 이벤트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행사도 미덕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가지고 살라는 희망 같은 것. 아무것도 얻기 어려운 시절에는 뭔가 하나 쥐고 있으면 행복이라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다들 미신이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다음 날 ‘아기가 돌잡이 때 뭐 잡았어요?’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다. 우리 아이만 안 하면 뭔가 잃은 것 같은 심리가 있을 것 같다. ‘부모가 그것도 못 해주냐’라는 경쟁 심리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왜 하는지 모르면서도 일단 하니까 하는 게 돌잡이다.     


첫 아이의 1년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 세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래서 둘이 셋을 키우는 신공을 배우고 있지만 그런데도 둘이 하나를 키우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몰라서 힘들었고 아이도 초보 부모 밑에서 고생을 하니 힘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 대로 더 힘들었다. 우리 가족도 그 1년을 의미 있게 지내고 싶었다.     


[돌잔치 기획안]

우선 아기가 축하받기 적절한 시기를 택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 곡선에 따라 부모가 아이에게 맞는 돌잔치의 시기를 정해야 한다. 첫 아이 때는 나 역시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둘째는 돌사진을 늦게 찍었다. 그러니 훨씬 편했고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셋째도 그럴 생각이다.    


하객은 적어도 아이를 본 적이 있고 아이의 성장에 진심으로 관심 가져줄 분들만 초대해야 한다. 아이가 젖을 먹거나 잠을 자서 시간을 못 맞출 때 기다려주고 도와줄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부모와 아이 모두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축복의 실체]

PD로 일하면서 창의성이 무엇인지 자주 묻고 답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창의성이란 대상의 목적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한 후 그 대상을 가장 적절하게 대할 때 구현된다고 믿는다. 한동안 돌잔치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돌잔치는 아기가 1년 동안 잘 커 준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축복해주는 자리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아이의 행복한 성장은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데서 이뤄진다. 그리고 그 영향의 실체는 주변인들이 지닌 좋은 점에서 나온다. 실제로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장점들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배움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는 셈이다.    


나는 돌잔치가 주변인들의 축복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선물로 받는 예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본인의 가장 좋은 장점, 재능, 미덕을 상징하는 물건을 아이에게 선물로 달라고 부탁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깊은 고민을 했다. 막상 해보니 돌 반지를 사는 것 이상으로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당일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음반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펜을,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을,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축구공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물감을 선물로 주었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는 앞치마를 주었고 나는 대학 시절 만들었던 자작 음반을 아이에게 주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예술적 재능이 많고 지적으로 호기심이 많으며 건강하고 자유분방한 사람이 될지 모른다. 어쩌면 이 중 한 가지라도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지 않을까? 이건 돌잡이 때 청진기를 잡는다고 의사가 될 거라는 기대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선물을 다 받고 나니 마음이 풍족했다.    


[포맷의 세부사항]

선물을 주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축하해주는 손님이 아닌 아이의 양육에 영향을 주는 당사자로서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다. 그만큼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한편으로 내 장점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으니 기분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내 자랑을 넘어 아이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물론 모든 포맷에는 취약점이 있다. 누군가 다른 구성원이 동의하지 못 하는 장점을 들고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아이마저 그걸 닮을지 모른다 생각하게 되면 자칫 분위기가 어두워질 수 있다. 그래서 연출자와 출연자 간의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또 분위기를 너무 진지하게 끌어갈 경우 참여자들이 자신을 동방박사로 느낄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예수님처럼 보이면 반감을 살 수 있다. 그래서 되도록 유쾌하고 가볍게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나 역시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되었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이런 것 하다 망치면 어쩌나 망설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거로 생각한다. <어바웃 타임>에서 보여준 폭우 속 피로연이 인상에 남는 걸 보면, 인생은 목적지보다 모험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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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김PD의 반반육아 에세이
MBC 시사교양•편성PD / PD교육원 겸임교수 / 생산자 관점의 콘텐츠 해설 / 호모 스크립투스 /  세 아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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