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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Aug 12. 2017

육아 전장에서 아빠의 역할

[부모의 조건]

아내는 종종 모성애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궁금해했다. 공교롭게도 첫째를 임신한 무렵에 본 문제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2)를 두고 부모가 된다는 불안감에 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특히 여자는 자궁문이 열리는 순간 극적으로 엄마로 태어나는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늑대아이>는 여성에게 모성애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그 ‘본능’을 등에 지고 넘어야 할 산이 엄마에게 얼마나 높은지 설명하고 있다면 <케빈에 대하여>는 그 전제 자체에 의문을 던지며 잔인하게 관객을 코너로 몰아붙인다.   

  

유명 여행가 에바는 갑작스러운 임신에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육아를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만도 한데 아기를 키운다는 게, 또 아이에게 매여 사는 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편으로 유독 자신에게만 반항하는 아들을 보면 조바심이 난다. 이후에도 케빈은 발달이 늦고 성격도 꽤 난폭하게 커가고 결국 고등학생이 된 후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    

일반 관객이라면 비정상적인 엄마나 괴물 같은 아이 어느 한쪽에 분노하고 욕하며 보는 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독은 그들과 우리 사이의 심리적 안전 막을 거침없이 제거한다.     


양육의 결과는 꽤 긴 시간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다. 그 사이 아이가 엇나가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게 부모다. 임신 소식에 망설였던 게 큰 잘못이었을까? 아이를 능숙하게 키우지 못하고 그들의 사소한 요구를 잘 알아채지 못한 게 쌓이면 어쩌지? 아이를 키우면 모성애로 전사가 된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쉽게 지치고 도망가고 싶을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걸까?    


에바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이다. 또한 아기를 잘 키우려는 욕심도 있다. 하지만 관객이 보기에 2% 정도 부족해 보인다. 우리보다 아주 조금 덜 헌신적이고 조금 더 차가워 보인다. 그 간격이 커 보이지 않는 게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할 뿐 내 수준 역시 저 정도일지 모른다. 나의 나약함, 이기심, 과거에 기인한 성격적 결함 등을 떠올리면 범죄자의 부모가 되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감독은 시각적으로도 촘촘하게 우리를 죄책감으로 옭아맨다. 결혼 전 토마토 축제에서 사람들에게 들려 누워 자유를 만끽했던 그녀는 피범벅이 된 피해자 앞에서 무력한 가해자의 엄마로 서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피해자의 부모 눈을 피해 살아야 하고 이웃의 비난을 견뎌야 한다. 영화는 강렬한 붉은 색이 연결되어 찬란했던 싱글 시절을 비난한다.     

그때 넌 뭘 준비하고 있었지?

넌 처음부터 부모가 될 자격도 없는 인간이었어...

이 참혹한 결과는 다 너 때문이야!!       


[본능 또는 강박]

아기가 태어난 후 기대했던 것만큼 모성애는 본능처럼 발현되지 않았다. 처음 젖을 물리는데 자꾸 헤매니 아기는 얼굴이 달아올라 울어 젖혔고 수시로 우는 아이를 재울 방도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아빠의 마음도 타들어 간다. 집안일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젊은 남자가 하루아침에 유능한 아빠로 다시 태어날 리 없다. 특히 어떤 호르몬의 도움도 없이 변신해야 하는 것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 세 아이를 키우고 있고 이제 백일 정도 된 아기를 셋째로 키우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첫 아이를 키웠던 1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론 지금이 더 힘들 수도 있지만 그때 항상 지니고 있었던 불안감이 정말 만만하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게 어렵고 힘들지만 처음만큼 난감할 수는 없다. 부모는 어때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히지 못하니 낯선 상황에 마음은 더 복잡했던 것 같다.     


아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시간에 아빠의 기여는 초라하기만 했다. 특히 초반에 청결을 유지하면서 세심하게 아기를 보는 게 어려웠다. 기저귀 만진 더러운 손으로 아기 입을 닦아주거나 목이 넘어가게 안아서 울려버리는 등 뭔가 하나를 하면 다른 문제 하나가 생기기 일쑤였다. 없는 게 도와주는 게 아닐까 싶어 조용히 사라졌다 나타나 ‘미안해~’ 하는 인생을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아내는 조금씩 모성애를 ‘획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아기의 일상에 맞췄고 아기의 작은 변화도 예리하게 확인하여 대처했다. 그간 부족한 사람이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게 무색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과민해지기 쉬웠다. 둘째가 아토피가 생겼을 때는 좋아지는 순간까지 오랫동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밥을 안 먹으면 내내 마음이 무거워보였다. 엄마는 아이와 점점 일체화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며 그게 본능이 아니라 강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첫째가 뜨거운 국을 쏟아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가벼운 화상이었지만 엄마는 사고 순간부터 상황이 어느 정도 종료될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감정에 압도되어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 책임감을 넘어 죄책감이 작동하면 오히려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의 역할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조금 더 담담하게 양육에 참여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육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기 위해 보조를 자처하는 게 아닌, 진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게 아빠 육아의 현실적인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잠에 예민했던 첫 아이는 아주 약한 자극에도 바로 눈을 떠 울었다. 매번 아이를 내려놓다 실패해 거의 안고 있어야 했다. 착륙의 연이은 실패로 그냥 아기 띠를 한 채 배에 올려놓고 잠든 적도 참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기의 울음에 매번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아기는 2~3시간마다 깼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줄 몰라 그때마다 젖을 물렸다. 아기의 울음은 인정사정없었고 지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2~3시간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재우는 것을 밤낮 없이 반복했다. 살얼음판이 1년 넘게 지속되었다. 야간 수유가 계속되고 밤마다 전쟁을 치러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이렇게 힘든 게 육아구나...’    


 답을 찾아야 했다. 이 어려운 시간을 버티면 될지 잘못된 길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할지 몰랐다. 아내는 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 게 모성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완전히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처절하게 매일을 버티는 게 안쓰러웠다.     

수면에 관한 책을 열심히 봤다. 그리고 아이가 울더라도 다시 잘 때까지 젖을 주지 말고 또 안아 재우지도 말자고 결심했다. 아주 쉬운 방법 같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는 아이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아기가 다시 자는 ‘버릇을 들이는 일’이라는 설명에 안도했다. 하지만 한국식 육아에선 참으로 냉정한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거였다.    

엄마가 아이 우는 걸 더 못 참으니 밤 10시에 아이를 재우고 본가로 엄마를 보냈다. 그리고 한밤에 다시 일어나 우는 아이를 두고 아기 침대 옆 바닥에 숨죽이며 누워 있었다. 22분.... 정말 긴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우는 아기 옆에서 가만히 누워 거친 울음소리를 들었다. 숨이 넘어가면 어쩌나 혹시 아이 성격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아이가 커서 난폭해지면 어쩌지? 상실감과 배신감에 부모와의 관계가 깨지면 어쩌지? 우는 아이 옆에서 그치기를 기다리는 건 정말 괴로웠다.    

 

결국 아들은 울고 또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그다음 일어났을 때는 8분 정도 울다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우는 시간은 확실히 짧아졌다. 이틀을 보내고 엄마와 함께 밤을 보냈다. 아내는 아이가 울자 다 그만두고 가서 안아 주자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걸 말리는 게 큰일이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엄마는 아기를 위해 불구덩이도 뛰어들어 갈 기세다. 아빠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한 것 같다. 수면 교육 시작 후 3~4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아기는 그다음부터 밤에 깨지 않았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를 밤새 혼자 둔다는데 우리는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이후 우리는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잔다. 사실 지금도 그 며칠이 적절한 조치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서양식 육아 지침서를 따른 것이라 우리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또 너무 늦은 조치라 아이에게 충격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다행히 아들은 그 뒤로 잠을 편히 자고 있다.   

  

[아빠의 길도 쉽지 않다.]

아내와는 지금도 종종 그때 그 밤들을 추억한다. 어쩌면 우리가 무지해 사서 고생했던 긴 밤들, 어설픈 부모를 만나 밤새 울어야 했던 아들의 밤들... 아빠의 자리는 함께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거리를 두고 참여하는 게 맞는 자리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밥 안 먹는다고 속상할 때 과감하게 한 끼 안 먹이고 (배고파해도) 다음 끼니때 맞춰 밥을 다시 주는 일, 밤에 열이 나도 높지 않으면 스스로 이겨내게 다독이고 재우는 일이 내 역할인 것 같다. 최선이라고 믿는 게 오히려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연 출산을 통해 배웠던 게 육아 때도 도움이 되었다.    

좋은 보조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일은 방관자의 길과는 다르다. 애정을 가지고 대하지만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그렇게 아빠는 아빠의 길을 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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