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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Jun 16. 2018

MBC<판결의온도> 출사표

담당 프로듀서의 프로그램 제작기 1편

이 프로그램은 2년 전에 처음 기획했습니다. 당시에는 방송 환경이 상당히 암울했죠. 사회 문제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기가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때 분위기는 우리나라가 왕정으로 복고하는 것 같았어요. 국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 했고 정권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주입하려고 했죠. 100% 대한민국이 무시무시한 말이었다는 것을 절감하며 살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복원을 바라는 콘텐츠들이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화<변호인>에서 송강호씨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절규하듯 외치는 장면은 제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환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가 일어나서 공분을 해도 결국 그 사건들은 법원에 가서야 결판이 났습니다. 판사의 입을 쳐다볼 때가 어느 때보다 많았죠. 그건 저 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누구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 끝나는 곳은 법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때 정치가 어찌 되건 사법부의 판결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해 제대로만 난다면 시민들의 권리도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죠. 그러면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서는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반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말을 가장 흔한 레토릭으로 쓰고 있습니다. 3권 분립, 사법부의 독립은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적 가치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존중받지 못할 때, 그리고 판결의 권한을 준 국민의 뜻을 배신해도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해야 할까요? 전에 양지열 변호사님이 라디오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법부의 독립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지 국민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법원에 가면 위축되기만 합니다. 판사가 하느님처럼 보이죠. 그러니 일개 시민이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권자로서 권력에 대한 평가를 마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부터 대한민국 국민은 사법부에 대해 큰 신뢰를 보내진 않았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조사(2015)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사법부 신뢰도는 27%로 조사 대상 42개국(회원국 34, 비회원국 8) 중 최하위 수준인 39위를 기록했습니다.(1위 남아공, 영국 60% - OECD 평균 54%).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법부가 자신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지 않는 셈이죠.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입니다. 판결문은 어렵게 쓰여 있고 잘 공개되지도 않습니다. 법원의 언덕은 여전히 너무 높고 다가가기에는 험난합니다. 요즘 사법부는 사면초과입니다. 재판 거래 의혹으로 신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정권이 바뀌어서 이런 일이 세상에 들어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보수적인 법원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고 할 때야 비로소 진짜 변화가 생길 겁니다. 국민이 사법부의 변화를 이끌어야할 진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획을 하고 준비를 하며 법조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더군요. 신문에 난 한 줄 기사로 법원이 비판을 받으니 억울하다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판결문을 꼼꼼하게 읽어보니 오해를 했던 것도 꽤 많았죠.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를 하면서 오해를 피하고 잘못은 정확하게 지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이름을 <판결의 온도>라고 지었습니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매도하거나 계몽하는 게 아닌, 조금씩 다가가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이 프로그램이 가야할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이 판결을 다루지만 사법부를 ‘저격’하는데 올인하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판결이 이 사회 문제의 최종 종착지라서 여기에 주목했지만 출발과 과정도 함께 봐야 합니다. 잘못된 판결에는 판사의 문제도 있지만 입법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많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 검찰(행정)의 문제도 존재합니다. 이런 것을 다 아우르는 이야기를 해야 사안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판결의온도>의 진짜 목적은 ‘여러 안건을 통해 우리가 사회 문제를 보는 기준을 세워보자.’는데 있습니다. 법을 쓰고 판단하고 적용하는 최종 책임자는 결국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작아 보이지만 의미 있는 이슈들을 통해 시민이 원하는 법체계의 벽돌을 하나씩 다시 쌓아갈 생각입니다.

     

처음 기획을 했을 때는 지금 방송에 나가는 것보다 더 소프트했습니다. 날선 비판의 칼은 숨겼습니다. 아이템을 시민들이 오해한 판결 중에서만 찾아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이마저도 통과되기 어려웠어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따져본다는 생각 자체가 불온하게 여겨졌으니까요. 그래도 토크를 통해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그때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심한 기획이었는데 준비하는 동안 촛불 시민들이 더 강한, 또 원래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불발되어왔던 기획이었는데 올해 초에 제작이 전격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파일럿 때까지만 해도 내심 법원을 비판하는 것 자체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부분을 무리 없이 보여주는데 온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정규화되었으니 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보려고 합니다. 한편으로 파일럿 때 여성 출연자가 부재하는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여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첫 방송 6월 22일 금요일 밤 8시 55분을 시작으로 8주 동안 시즌1이 이어집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여기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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