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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Aug 30. 2018

주진우 기자는 남들과 다르게 일한다.

주 기자는 어떻게 특종 기자가 되었을까?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10년간 그를 지켜본 것을 여기서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내일 기사를 오늘 쓰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는 주간지 기자 치고도 호흡이 매우 긴 편입니다. 내일 낼 기사를 6개월 전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오늘 취재하는 내용은 6개월 후에나 나가겠죠. 제가 한참 주 기자를 관찰하고 있을 때 뭐하고 사는지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하루에도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는데 왜 만나나 싶었죠. 당시 주목받는 화제의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취재하던 사람들이 기사에 한참 뒤에 오르더군요. 시간을 들인다는 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패도 있고 헛걸음도 감수해야 합니다. 반면 매일 급급하게 살면서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면 생산성 떨어질 수밖에 없죠. 결과물도 좋지 않고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잘 하려면 남다른 길을 걸어야겠죠. 분명한 건 긴 투자가 있어야 큰 소득이 생긴다는 거였습니다. 요즘도 뭐 하나 물어보면 뜻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물어보는데 그 답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주 기자는 몇 년 전엔 해외에 자주 나가더군요. 그는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을 쫓고 있었고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게 지금 큰 기사를 만들고 있죠.      


2. 핵심은 카운슬링

취재력이란 도대체 뭘까요? 거리를 헤매며 단서를 쫓는 부지런함이나 도망가도 끝까지 따라가서 기어이 대답을 듣고야마는 집요함 같은 게 먼저 떠오르시나요? 그런 것도 맞긴 하지만 저는 주 기자를 생각하면 조용히 얘기를 듣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카운슬링이 떠오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기브-앤-테이크입니다. 보통 언론인은 취재를 통해 기사를 써서 먹고 살고, 취재원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더 많이 퍼질 기회를 얻습니다. 그런데 고급 취재원일수록 자신의 얘기를 전해줄 매체를 찾는 건 쉬운 일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게 될지 전망하는 일입니다. 결국 취재원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선 취재원에게도 정보를 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잘 읽고 정보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중요하다는 건 기자들이면 다 아는 사실이죠.    


이럴 때 기자들의 선택은 세 가지입니다. 당장 기사를 내기 위해 최대한 설득해서 정보를 빼내는 식이 한 가지입니다. 기사를 계속 써야하기 때문에 얻은 정보는 곧바로 기사화됩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눴는데 그게 바로 기사화가 돼서 화내는 취재원들이 종종 있습니다. 보통 배신감을 느끼죠. 다른 한 가지는 정파성이 강한 기자가 되는 겁니다.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 부류를 만들어서 정보를 계속 교환합니다. 내밀한 정보를 주면 기자는 정파성을 기준으로 어디까지 기사화할지 고민합니다. 독자와 취재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정치권에 뛰어드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도 아니면 되도록 기브-앤-테이크의 수준을 낮추는 겁니다. 가능한 한 공식적으로 나온 정보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 취재원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습니다. 큰 언론사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공식 브리핑만 신속, 정확하게 전해도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주진우 기자는 여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하루에도 수많은 전화가 옵니다. 대부분 고민 상담입니다. 사기 당한 사람, 학대 받는 사람, 억울한 사람 등등 절박한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대처할 방도를 찾아줍니다. 그래서 주 기자는 일과 중 많은 부분을 그런 사람들에게 카운슬링을 하는 것에 할애합니다. 그런데 절박하게 당장 낼 기사를 위해 사람들의 고민을 급하게 써먹는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언이설로 사람을 설득하려 들지 않습니다. 되도록 객관적으로, 또 당사자 입장에서 현명한 길을 추천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크게 신세를 졌다 생각해서 주 기자가 나중에 취재차 물어오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미국에 있던 신정아 씨를 단독 인터뷰한 것도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고 들었습니다. 한번은 배우 최진실 씨가 하늘로 떠난 후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친권이 아이들 아버지에게 넘어가게 생겨 괴롭다고요. 고민이 공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제대로 움직입니다. 기사를 쓰는데 그치지 않고 법조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로 모친이 사망했을 때 친권이 무조건 부친에게 넘어가는데 제동을 거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때로는 카운셀링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의 단서를 찾기도 합니다. 어느 날 조폭들이 찾아왔답니다. 어느 재벌 회장이 자식 때문에 사람을 써서 폭력을 행사했는데 사람 쓴 돈을 안 주고 있다고요. 그 당시 시사저널이 파업 중이라 기사를 직접 쓰지는 못했지만 그 건은 결국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베를린>, <부당거래> 등의 영화 자문도 해줍니다. 이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면 그냥 개인적인 카운슬링에 그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정보망을 갖게 되죠.     


정파성을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그가 업계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누구와 이해관계를 맞추면 한때 잘 나갈 수 있지만, 엮여있는 사람들이 몰락하면 같이 무너지는 일이 흔합니다. 주 기자는 정파성은 없지만 소신은 강한 편입니다. 그러니 다른 기자들처럼 중립적인 영역 안에서 머물지 않고 거침없는 얘기를 쏟아내죠. 주진우 기자가 진보적인 성향이라고 하지만 민주 진영을 때리는 기사도 많이 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초 친인척 비리도 그가 쓴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진우를 찾는 건 그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의 상황 판단이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건 어려운 사람이건 모두 그의 조언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단단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갑니다. 그는 그에게 매우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재벌 그룹, 청와대나 검찰 그리고 국정원 같은 조직 안에도 소통하는 사람들이 꼭 있었습니다. 조직 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그는 조언을 하는 과정 속에서 조직 내 드러나는 균열을 파고들어 진실을 잡아내곤 합니다.     

3. 입장과 팩트가 있는 기사

보통 언론사들이 객관주의를 표방해왔습니다. 중립적으로 보도를 하는 게 저널리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주 기자는 이에 비해 입장이 분명한 기사를 씁니다. 그런 면에서 PD저널리즘과 통하는 면이 있죠. 주장이 담겨 있고 지향점이 있는 저널리즘을 표방합니다. 그게 한편으로 정파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취재한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본 후 자신의 생각대로 쓴다는 점에서 주진우 기자의 기사를 좋아하는 독자는 있어도 마냥 좋아하는 정치 집단은 없는 편입니다. 그래야 항상 긴장이 생기죠.     


대신 사실에 기반하여 기사를 씁니다. 미국 학부의 저널리즘 교과서를 봐도 뉴스가 반드시 객관주의를 표방해야 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생각이죠. 외국 보면 언론사가 특정 대선 주자를 지지하는 일이 흔하죠. 그렇다고 그들이 뻥을 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객관주의를 빙자하여 사실을 축소, 은폐하고 정부의 잘못에 물을 타는 일이 많았죠. 객관주의를 지향하는 기자 중에 기레기라 불린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잖아요. 주진우 기자는 사실에 있어 실수를 잘 안 합니다. 엄청난 기사를 써내기 위해서는 팩트에 기반하여 써야 하죠. 전에 기사를 어떻게 쓰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아프게 써야 해요. 상대가 봤을 때 다 알아보고 썼다는 것을 인정하게 써야 하고, 가장 아픈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야 하죠. 엉성하게 쓰면 상대도 알아요. 그럼 어떤 식으로든 반격합니다. 좋은 기사의 핵심은 비판하는 사람이 다른 생각을 못 하게 정확하게 때리는데 있습니다”     


기사를 두고 수많은 송사를 치르고 있지만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이라 봅니다. 또 시간을 들여 쓰니 실수도 줄일 수 있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인다는 겁니다.      


4. 나는 피터팬

저는 주진우 기자를 볼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피터팬. 어른의 세상을 싫어하는 순수한 소년. 그는 정말로 어른들을 싫어합니다. 그 어른이란 게 힘 있다고 약한 사람 괴롭히는 사람, 돈 있다고 없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죄 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 등입니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 있고 그래서 한때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평소 그를 보면 잘 나가는 사람들과는 악수를 잘 안 합니다. 판검사와 변호사, 의사, 재벌 등 소위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둡니다. 대신 사회적 약자에게는 애정을 쏟습니다. 전에 2009년 촛불시위 1주년 때 광장에 같이 나갔는데 정치인들이 다가와 인사를 청하는데 잘 받지도 않더라고요. 대신 세트 옮기고 설치하는 사람처럼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사실 정보는 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빨리 나오죠.    

그는 개인적인 일로 부탁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도와달라는 연락이 와도 남 도와달라는 겁니다. 사리사욕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자신이 잘 나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일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빚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 수 있죠. 밥 얻어먹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좋은 일 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는 아직 네버랜드에 있어요. 에버랜드가 아니라 네버랜드. 스캔들이 안 생기는 것도 그런 정서 때문입니다. 기사도 정신이 있을 뿐이지 사적인 관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 여성 독자들이 모성애를 좀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한때 누나 팬이 많았습니다. 어른을 엄청 싫어하는데 안 좋은 어른들을 가장 많이 압니다. 그들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다보니 사실 그들의 말투나 단어를 쓸 때가 종종 있어요. 일본에 오래 살면 한국 와도 일본어가 나오듯 종종 어둠의 세계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받을 때도 있어요.     

주진우 기자가 요즘 억울한 일을 당해 마음고생을 좀 하고 있을 겁니다. <판결의온도> 만들 때 보니 심란한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주진우 기자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보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는 꽤 명석하고 분명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큰 특종을 터트리고 좋은 기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매도를 당하는 걸 옆에서 보니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그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여러 오해들이 잘 풀리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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