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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Feb 08. 2023

살아가는 법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하나의 관념이다. 대형마트의 문구 코너에서는 문구를 인식하고 제빵 코너에서는 제과를 인식한다. 그렇다고 대형마트가 문구점이거나 제과점인 것은 아니다. 만약 태어나서 대형마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체 개념을 이해하는데 적잖은 시간과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 세계도 대형마트와 비슷해서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만큼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고찰에서 나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나의 견해는 실제 세상과 얼마나 일치할까?


이 물음을 견제하면서 생각을 이어 간다. 살다 보면 마음속이 쓰레기로 가득 찰 때가 있다. 마음속의 쓰레기란 불안, 분노, 우울, 집착, 강박적 태도 등을 일컫는다. 쓰레기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삶도 쓰레기가 되어 간다. 그리고 불안에 시달린다. 이 불안은 상실감과 불운의 고통을 당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통제할 수도 없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자세한 내막도 모른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변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에 대한 반동(reaction)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흔히 집착과 강박으로 이어진다. 변화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다는 두려움과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조바심 속에서 일상을 살게 된다. 삶의 격과 만족을 가꾸기 위해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다르게 만들고, 생각을 고치고, 이전의 삶을 버려야 한다는 훈육과 그것에 부응하려는 욕망이 지배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삶은 거부의 징후와 배제의 신호 앞에서 몹시 취약해진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회인과 직장인에게 내재된 불안이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다수가 괴로워하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런 마음의 쓰레기 문제를 들추어 비판한 바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소설 '레아'를 집필한 스위스 철학자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바이올린이 삶이 전부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소녀 레아와, 그런 딸에게 세계 최고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를 바치기 위해 인생 모두를 건 아버지가 마침내 파국을 맞는 비극적 운명을 그려 낸다. 이 두 사람의 집착이 인간 스스로에 내재된 불안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하는 의무, 타인에 대한 독재, 그 모든 집착적 삶이 만들어 낸 위험한 심연 속으로 침몰하고 만다. 이런 마음속 쓰레기 문제는 많은 사회인들이 숨기고 있는 보편적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속적으로 있는 문제라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심적 안정이 이끄는 방향으로 긍정하려 노력한다. 우리 의식은 안정된 자리에서 이탈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가끔 외면하기 힘든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면 나와 상관없는 일로 밀쳐낸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나는 평화롭고 행복해야 한다. 그냥 지금 행복하면 된다. 그렇게 자기기만이 허술하게 조립한 행복과 평화 위에 안주하려 한다. 때때로 엄습하는 고독과 고통에 시달릴 때는 다시 마음 한편에 술과 담배와 수다로 이루어진 그 행복의 의자가 있는 앞으로 노예처럼 끌려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개인적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꿈꾸지 못한다. 이것은 독일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 해르베르트 마르쿠제가 제시한 화두이다.


삶의 한 복판에서 의식의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에 직면할 때 인간은 자신이 삶의 주체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때 내가 마주한 자아의 부조리 및 허술한 세계관에서 오는 문제와 고통에 책임지고 마땅히 임할 의무를 가진다. 감당하기 힘들고 해결 불가해보이는 그 막막한 실체를 마주하게 되고, 한정된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더 겪고 다루게 되면서 나는 실제 세계와 나 자신을 더 완성적으로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삶의 격과 만족을 건실히 쌓아나가는 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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