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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숨씀 Jul 22. 2019

핑클의 캠핑클럽이 의미 있는 이유

이 언니들의 조언은 찐이야!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나의 주된 화두였다. 직장에서 연차가 쌓여갈수록 여자 상사는 보이지 않고 TV에서는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신동엽과 같은 중년의 남성들이 예능판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런저런 업무를 가르쳐주던 사수나 동료들은 어느새 결혼하면서 혹은 출산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그렇다. 경력 단절이다. 예능에서는 한때 죄를 지어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방송 중단을 선언했던 강호동이나 이수근 같은 개그맨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비추더니 이제는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한다. 게다가 본인의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초대된 연예인들에게 애교나 춤을 보여달라는 요청은 십 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대한민국 예능은 이토록 게으르고 창의성이 없다.) 요청에 따라 예쁘고 어린 연예인이 애교를 부리고 춤을 추면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지만 개그우먼이 애교를 부리고 춤을 추면 정색을 하거나 당장 나가라며 무안을 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뜬금없는 포인트에 애교나 춤을 보여달라는 요청은 물론이거니와 외모나 나이를 기준으로 다른 리액션을 하는 것까지 무례함 투성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TV를 보면서 이유 모를 불안함과 절망감에 자주 우울해졌다. '나도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게 되면 사회에서 아웃되는걸까. 그럼 그간 쌓은 업무 능력과 차근차근 올린 연봉은 어떻게 되는거지'라든지 '나이 먹은 배우는 엄마 역할만 하게 되는걸까, 나이 먹은 개그우먼은 어디로 갔을까, 못생긴 연예인은 왜 늘 놀림거리가 되어야만 할까'와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혼도 안 하고 직장생활하며 나이를 먹게 되면?




롤모델의 부재.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나를 불안 속으로 밀어넣었던 감정과 질문의 원인은 '롤모델의 부재' 때문 아니었을까. (사회시스템의 오류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부모님 세대의 경우 어머니들은 정규교육의 대상이 되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며 전업주부가 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잘 키워내는 현모양처는 그들의 인생의 미션이었다. 그 뒤를 잇는 세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도 결혼 및 출산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서 물러나야 하는 과정을 겪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국내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고, 일본에서 13만 부 이상 팔리는 큰 반향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코스모폴리탄


그래서였는지 작년 KBS와 MBC에서 이영자가 연예대상을 수상하고 그 외에도 송은이, 김숙, 최화정이 활동하는 방송을 보며 마음껏 웃고 위안을 얻었다. 위안을 얻었던 이유는 '나이 든 사람이(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이 든 여성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가능성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또한 각종 미디어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지난주 일요일 <캠핑클럽>을 봤다. 1세대 아이돌 핑클이 데뷔 21년 만에 다 같이 모여 캠핑을 하겠다는 기획의도였다. 나는 핑클이 방송을 하는 모습이 반가웠다. 왕년에 인기 많았던 여배우나 여자 아이돌 가수가 오랜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 대개 아기 엄마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에 한정되어 있고 나 또한 그런 모습에 아주 익숙했는데, 웬걸. 핑클은 아기도 남편도 없이 방송에 나와 19금 드립을 하거나 당시 유행한 본인들의 노래 가사를 다시 읊으며 "싸대기를 때린다, 바람 핀 내 남자친구는 너나 가져"라며 직언을 하는 등 한층 더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JTBC 홈페이지


오다리, 숏다리, 통다리라며 이전까진 감춰왔던 본인들의 신체적 특징을 거리낌없이 말하거나 이효리가 이진에게 "여유를 좀 가져."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편안해 보였다. 솔직하고 편안한 그들의 모습에 시청자인 나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캠핑클럽> 보고 그린 그림


상대방을 헐뜯고 신체적 결함을 비아냥거리며 흑역사를 들춰내면서까지 웃음을 유도했던 그동안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자유로움이었다. 그래서 <캠핑클럽>을 '예능계의 청정구역'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또한 연애 문제나 사회생활 문제나 인간관계 문제 등에서 진짜 조언다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 나는 '언니들'뿐이라고 생각한다. 핑클 언니 외에도 내가 사회에서 만난 '언니'들은 "저 사람 조심해라", "회식자리에서는 굳이 2차까지 갈 필요없으니까 1차에서 고기만 실컷 먹고 빠져라", "영양제는 이게 좋은데 공구하자"와 같이 생활에서 진짜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만 해줬으니까.


언니들의 조언은 늘 새겨들어야 한다.

이건 종방까지 <캠핑클럽>을 챙겨 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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