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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Nov 21. 2015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이 글은 영화 리뷰가 아니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내가 쓰려고 하는 글과 연관도 못 짓겠다.


책에서든, 널린 글에서든, 누군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최근에 깨달은 삶의 이치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항상,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왜 진작에 알지 못했지?' 혹은 '난 정말 어리석었다'. 그렇게 뒤늦게 나마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사람 같고, 가끔은 저런 사실들을 아직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신기하다. 어떻게 글을 내는 순간으로부터 가까운 시기에야 그 사람은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수십 년을 눈에 안대를 씌운 것처럼 살다가 갑자기 안대를 벗을 수 있던 걸까. 분명 몇 년 전에도 그 사람은 당시로서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깨달음을 느꼈을 텐데, 그럼 그 깨달음은 거짓이었을까. 그냥 어린 날의 치기로 잘못 도달한 막다른 길일 뿐, 사실은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됐던 걸까.


착각이다. 오늘의 나는 옳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착각. 어차피 내일이 되면, 오늘의 성숙한 나는 다시 어린 날의 내가 되며 실수 투성이의 모자란 존재가 된다. 누가 깎아내리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어제의 우리를 자꾸 작고 초라한 존재로 축소한다. 과거에 부족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를 좀 더 극적이고 대단한 존재로 부각시켜 줘서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과연 몇 년 후에도 저 사람은 저 깨달음을 고수할까' 생각한다.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마 저 사람은 몇 년 후에도 새로운 깨달음을 들먹이며 과거 어리석었던 자신을 한탄할 것이다. 소위 위대하다고 추켜 올려지는 사람도 최근에 얻은 깨달음을 쉽게 얘기하곤 하는데, 그 사람들은 자신이 몇 년 후에 다시 그 깨달음을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리석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그 사람은 거짓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강요하는 듯한 뭇사람의 설교는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 사람은 어쨌든 자신의 현재가 우주의 진리에 가깝다는 믿음을 지키고 싶을 뿐, 우리가 그 사람의 일시적이고 어쩌면 어리석은 믿음에 흔들려서 얼마나 방황하고 아파할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삶이 너무 단조로운 나머지 극적인 감동을 바라서 나온 깨달음은 그다지 믿을 만한 진리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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