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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Apr 24. 2022

내향형 vs. 외향형

브라운박사의 실험실 

언젠가 작가와 함께하는 한 뒷풀이에서 요즘 화제라는 MBTI 이야기가 나왔다.

심리쪽의 전문가인 분이었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 진지했고 탄력을 받은 터였다.

각자 너는 어떤 유형이냐를 이야기하던 중에, I(내향형)냐, E(외향형)냐의 질문에 다다랐다.

마침 모인 사람들이 다들 I였는데, 마지막으로 내가 "저도 가끔  I에요."라고 답하자

동료가 놀라는 눈빛을 하며 "엥 설마, 자기는 외향형이지~!!"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다.

"제가 기분이 좋을때 테스트하면 E, 그냥 그럴 때 하면 I에요. 어릴 때는 엄청 내성적이었어요. 발표도 못했는걸요!" 하고 이에 질세라 강력하게 항변을 했다.

그러자 이 동료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무슨 소리야, 딱봐도 외향형이구만! 어디 나서는 거 좋아하고 사람도 엄청 만나러 다니잖어."라고 되받았다. 내가 다시 목을 쭉빼고 아니라고, 항변하려던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작가분이 이 정체불명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브라운박사는 내향형이야. 내향이랑, 외향 어느 한쪽에 많이 치우치지 않고 경계에 있어서 그래."

그제야 좌중이 조용해졌고, 나는 왠지 득의양양해졌다. 


사실 내향이든, 외향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나는 나를 함부로 '외향'이라고 규정짓는

상대방에게 '마상'을 입었고 더 나아가서는 그 동료가 자신은 내향인데 너는 외향이냐 하는 그 말투에서 

나를 깔본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사실 외향이라면 그만큼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라는 좋은 뜻인데, 그 순간은 그의 분석이 싫었다. 일을 할 때 무언가 막후에서 점잖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슨 바람잡이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목소리만 높이는 그런 사람으로 보나 하는 억하심정이 생긴 것이다. 단단히 내면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보다 온통 외부로만 돌며 겉만 번지르르 하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다. 무협지에서도 화려한 신공을 모두 이기는 것은 결국 내공 아니던가. (생각해보니 평상시 그에게 가졌던 자격지심이 투사된 것이었으리라.) 

그 대화를 하고 와서는 테스트를 또 하고 또 해도 결국 나오는 것은 그날 따라 E였다. 




얼마 후 친구와 MBTI 이야기를 하다,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가 보기에 상당히 I스러운 사람인데, 최근 자기는 E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I와 E의 경계에 있긴 해도 결과가 거의 같다고 했다. 자기는 어릴 때는 정말 내향적이고 대인관계의 폭도 크지 않았는데, 2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 키우고 하면서  E 점수가 높아졌다고 했다. 아마 자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천성은 내향성이 커도, 사회생활을 오래하다보면 그리 바뀌는 것 같다며. 

언뜻 들으면 자기 천성마저 바꾸어버리는 이 사회생활의 힘이란 게 너무 치명적이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영향받고 변화하는 생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가 아파도 선생님에게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해 옷에 큰 실수를 해버리고, 너는 늘 벽이 있는 아이라는 핀잔을 듣던 내가 이제는 아랫배로 급 느껴지는 통증에 무정차 고속버스를 휴게소에 정차시키고, 큰 공식회의도 척척 진행을 하고 모임에서 첨 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것 보면, 이또한 생존을 위한 적응의 한 과정일 뿐이다. 적응의 과정에서 나의 가장 핵심적이고 소중한 본성을 해치거나 잃어버리면 안 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안으로, 밖으로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  자기가 본래는 내향형인데 사람들이 외향형으로 오해한다며 피곤함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만나는 순간은 최선을 다하지만, 결코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고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너무 힘이 든다고 말이다. 그리고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고, 타인과 함께 있다가도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혼자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다른 누구보다 모임을 즐기는 경우도 많고 SNS에 글을 올리는 횟수도 많다. 게다가 그 내용이 뉴스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대한 것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 경우도. 

가끔 그런 생각이든다. 이렇게 자신은 외향형으로 오해받아 너무 피곤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은, 사실 어떤 유형인지를 떠나 게으른 사람은 아닐까. 먼저 연락하고, 먼저 모임을 세팅하고, 먼저 안부를 묻고, 앞서 일이 진행되도록 바람을 잡고....한마디로 판을 까는 데는 게으른 것 말이다. '먼저 연락 잘 안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글을 SNS에 널리 공유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먼저 연락을 잘 안해도 다른 이의 부지런함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이벤트에 참여하고 하는 것일 텐데, 그게 꼭 자랑일까 싶은. 아직도 이 말을 하고 있는 것보니, 지난번 mbti 배틀의 상흔이 여전한가부다..에잇! 사실 내 이야기다. 나는 지극히 내향형의 사람인데 먹고살려고 하다보니 외향형으로 보이는 것뿐이라고. 나의 수다스러움과 들뜬 감성은 온전히 내것이 아니라고, 왠지 변명하고 싶은 그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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