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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Apr 08. 2022

생애 첫 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

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늘 미소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고, 띠동갑을 훌쩍 뛰어넘는 나이 차에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 그러나 A4 용지 위에 인쇄된 활자 속 그의 이야기는 늘 보아오던 환한 빛이 아닌, 혼자 분투하며 지나왔을 인생의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버킷 리스트였던 책 쓰기에 도전해도 될 나이라며, 처음 쓰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조심스레 전한 원고였다. 습관적으로 훌렁훌렁 빠르게 넘겨보던 내 눈과 손이 문장 문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랫동안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책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분들에게서 책을 내고픈데 원고를 좀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개인의 에세이든 정보가 우선인 교양물이든, 이런 '생애 첫 원고'를 받아들면 그들의 또 다른 내밀한 자아와 분투의 시간을 만나곤 한다. 투박하든, 유려하든 가장 먼저 이 말부터 해드린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책은 여러 편의 글을 이어붙인 단순한 글 타래가 아니라, 상당히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구조와 흐름을 갖춘 결과물이라. 아무리 문장을 아름답게 쓰고 아이디어가 번득여도 책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추게끔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예비 저자들이 '업자'인 나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것 또한 이 지점이다. 그 이야기들이 상업적으로 매력적인가 아닌가는 그다음 문제다. 




그렇다면 완결성을 잘 갖춘 책 쓰기의 비법이 있을까? 물론 정성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책의 종류와 주제, 작가의 개성에 따라 디테일이 너무나 다양하기에,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책을 써야 한다면 시작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책이란 일차적으로 글쓴이의 가슴과 머리에서 뜨겁게 솟구치는 콘텐츠의 덩어리에서 비롯된다. 책을 써보고 싶다면, 이를 담는 '그릇'을 고민하기에 앞서 '원재료'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적용해 보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처음 쓰는 이들뿐 아니라 기성작가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첫 번째 기준은 '누군가에게 하고픈 또렷한 이야기가 원고지 1,000매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가'이다. 여기서 1,000매란 꼭 그만큼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다. 책의 두께가 얇아지고 있지만, 할 이야기가 딱 그만큼인 것과 풍부하고 다양한 재료를 우려내어 압축해 낸 맛은 다르다. 주제는 매력적이어도 실제 일정한 분량으로 풀어내려니 내 안에 쌓인 게 없어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쉽게 타인의 말과 글을 끌어다 분량을 채우지만, 그 맛은 헛헛하다. 1,000매는 단지 양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길 하니, 요새같이 책이 얇아지고 모든 콘텐츠가 숏폼을 향해 가는데 1000매가 가당키나 하냐는 이들이 있다. 1000매가 가능한 컨텐츠가 있는데 이를 400, 500매로 고르고 골라 압축한 글과, 딸랑 400매 밖에 쓸 게 없는 글은 다르다. 우리가 읽는 400매의 분량의 책도 사실 그 뒤엔 1000매, 1만매를 넘어서는 작가의 고민이나 경험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수집하고 다듬고 확장하는 질적인 시간의 축적물이다. 이러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주제의 또렷함과 절실함이다. 이들이 부족할 때 쓰는 이는 원고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글은 힘을 잃는다. 


그다음의 기준은 '이야기 덩어리의 구조와 흐름이 튼튼하고 매력적인가'이다. 구조라고 하면 응당 원고를 배치하고 나누고 하는 테크닉적인 작업을 먼저 떠올리지만, 관점이 먼저이다. 나의 이야기를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내줄 요소가 무엇인지, 그것을 중심으로 어떠한 생각의 흐름을 펼쳐보일지 말이다. 무엇보다 이야기 덩어리가 충분하고 흥미로워야 논리든 시간이든 여러 구조를 실험해 볼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결국 긴 설득의 과정이라면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한 나만의 전략인 셈이다. 


글을 쓰는 일은 직업이 아니라면 평상시에도 많이 하지 않지만 맥락을 잡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이 일은 사실 누구라도 손에 익지 않다. 편집자의 경우도 이 부분에서 내공이 있고 없고가 갈리니 말이다. 요즘같이 책의 형태도 콘텐츠의 흐름도 경쾌하게 달라지는 시점에 다분히 원론적이거나 고지식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을 '내는' 데 마음이 급해 책을 '쓰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경우를 볼 때면, 괜히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것이 내 생의 첫 책이라면 특히 그렇다. 정말 써 보고픈 책이 있다면 스스로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만끽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책을 '쓰는' 것은 사실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상의 매 순간 우리는 삶 속에서 책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나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나를 표현하고 싶은지… 원고지 1,000매의 내공도, 매력적인 구조도 결국은 그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51450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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