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과 사회경제적 조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당신은 보수적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의 답변과 상관없이 그에게 주어진 사회경제적 조건에 지배적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만약 당신이 철저한 보수주의자라면 어쩌면 당신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부자이거나 자신에 찬 탁월한 능력자일 수 있다. 반대로 당신이 진보적 평등주의자라면(정치가가 아닌 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 말을 믿기 어렵다면 아래 몇 가지 질문들 속에서 스스로의 조건과 가치관을 한번 다시 되짚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이 글은 정치적 견해나 이념을 철저하게 배제한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며 특정한 가치관을 비판하거나 현재의 가치관을 바꾸라는 주장이 아닌 비교분석적 측면에서 서술한 것이므로 오해하진 마시라.
먼저 간단한 가정적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 최근 집권한 진보성향이 강한 정부가 강력한 부자증세 정책으로 고액 부동산 소유자에 대해서만 기존보다 2배 이상 높은 세율의 종합부동산세를 과세하려고 한다. 당신은 이 정부의 증세를 찬성하는가?"
각자 답을 했으리라 믿고 다시 추가적 가정을 덧붙여서 다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일찌감치 100억의 부동산을 증여받고 중견기업도 경영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이 경영하는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으며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집권한 진보 정부가 고액 부동산 소유자에 높은 증세를 하여 낼 세금이 매년 수천만 원이나 늘어나게 되었다. 당신은 이 정부의 증세를 찬성하는가?"
만약 당신이 첫째의 답을 "Yes", 그리고 두 번째의 답을 "No"라고 했다면 당신의 실재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의 답을 동일하게 "No"라고 했다면 당신은 이미 금수저일 것이다.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경제적 조건이 정치적 가치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비유하기 위한 단적인 예를 든 것이다. 대부분의 부자는 이렇듯 소득의 재분배에 대해 보수적이다.
이는 과거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토지가 소수에 집중되던 조선 후기에는 혁신적 토지정책들인 균전제, 한전제, 정전제 등이 나와서 토지를 농민에게 다시 고르게 배분하자고 제안되었으나 결국 하나도 실행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분배를 거부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부를 축적한 권력 집단은 시대를 넘어 항상 보수적이다.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명료하게 차등화되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능력에 상관없이 개인 간의 보상의 편차가 가능한 최소화되는 사회를 좋아하는가?"
각자 답을 했으리라 믿고 추가적 가정을 덧붙여서 다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현재 차상위계층의 부모를 둔 소득 수준이 낮은 집안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전히 당신은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명료하게 차등화되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개인 간의 보상의 편차가 가능한 최소화되는 평준화된 사회를 좋아하는가?"
만약 당신이 두 질문 모두에서 차등화를 선호했다면 당신의 실재는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매우 탁월한 능력자이며 미래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부자가 아닐지라도 보수주의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일명 테크노크라트라고 일컫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지적 권력 그룹에 속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테크노크라트는 사회 시스템과 규모가 극단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해지면서 이를 해결할 필요에서 파생된 지식 노동자인데, 자본이 고도화된 사회가 되면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기능적 부자로 변신한다. 그런데 왜 테크노크라트는 그 출발점은 부자가 아님에도 보수주의자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DS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이란 분이 있다. 이분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받은 연봉은 149억 5400만 원이다. 그는 복잡한 사회에 필요한 가장 복잡한 회로를 가진 반도체를 만든 회사의 수장이 된 덕분에 대한민국 인당 평균 GNP의 500배 정도를 연봉으로 받았다. 단언컨대 이 분은 타고난 금수저라기보다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며 그의 인식의 근저에는 강력한 보수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왜 그가 보수주의자라고 믿는가? 만약 권오현 씨가 사회의 구조적 차등과 불평등을 철저히 거부하는 평등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면 결코 현재의 위치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어떠한 인간도 자신의 가치관에 철저히 위배되는 행위를 평생 지속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인가? 아니면 이미 은퇴를 한 노인인가?
미래의 꿈을 꿈꾸는 젊은이가 노인들보다 더 보수적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현대사를 돌이켜보아도 4.19 등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도 세력은 대부분 학생이나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뒤져보아도 노인 집단들이 사회 진보와 평등을 요구했던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노인은 보편적으로 보수적이다.
지금까지의 질문들 속에서 개인의 보수주의를 결정하는 세 가지 변수를 다루었다. 그것은 부, 지식 혹은 기술, 그리고 연령이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신념은 위의 세 가지 변수가 만들어낸 피조물일 뿐이다. 물론 정치가들 중에는 예외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 권력을 얻기 위하여 사회계층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진보적 평등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그 예로 현재 보수당의 국회의원이나 시장, 도지사들 중 다수가 젊었을 때는 평등을 부르짖었던 혁명가나 운동가였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 이제 끝으로 묻는다.
"당신은 자신이 이미 지닌 위의 세 가지 고유 변수를 배제한 순수 중립적 관점에서 차별적 보수주의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평등적 진보주의자가 되고 싶은가?
만약 아무 생각 없이 현재 그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보수주의자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자체가 이미 현재의 차별적 구조를 인정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차별적 체계의 하층부에 위치한다면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당신의 경제적 조건과 지위는 더 바닥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확대된 평등이 가장 합리적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보다 게으르고 무능한 동료와 큰 차이 없는 비슷한 연봉을 받는 것에 만족해야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당신 자신이 바로 그 게으르고 무능한 동료일지도 모른다. 만약 평등이 더 강조되고 분배가 강화된다면 그 사회는 경제적으로 모두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영구적으로 옳은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보수나 진보 어느 쪽도 무조건적으로 편애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각자의 가치관을 서로 비교하고 상대를 깍아내리고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가 가진 세 가지 고유 변수를 기준으로 가장 나에게 유리한 가치관과 판단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내가 이미 부자라고 무조건 보수만 주장해선 안된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제약적 평등은 당신의 부를 유지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는 머릿수의 싸움이다. 어느 사회든 항상 부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이해관계를 과도하게 무시하면 결국 부의 시스템이 뒤집어질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진보와 평등만을 옹호해서도 안된다. 어차피 고도 사회는 탁월한 소수에 의하여 성장되고 발전되며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재들의 동기부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능력 발휘를 포기하거나 해외로 이탈한다면 무능한 다수에 의한 하향평준화로 필리핀같이 국부가 퇴보하는 절대빈곤의 사회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변화가 급변하는 시대에 어느 한쪽의 생각에 얽매인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퇴보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개인의 이상적 가치관은 카멜레온 같은 성격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즉, 사회현상과 그 변화를 능동적으로 재빨리 간파하고 자신의 현재의 조건에 가장 맞는 합리적 기준을 세워 끝없이 변신하는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굳은 신념은 흥선대원군과 같이 한 나라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도 결국 자연계의 일부임을 존중하고 자신의 유전인자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퍼뜨리는 것이 중대한 임무임을 망각하지 않았다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우리의 2세, 3세에게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제공하는 가치관으로 존립해야 함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