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씨 Dec 24. 2016

로포텐 - 친절한 연어 스테이크

홍씨의 세그림. 38화

 나와 미씽이 마주보고 앉은 식탁, 그 위에 놓여진 연어 스테이크. 버터, 후추 등을 함께 곁들여 오븐에서 구워진 스테이크에선 담백하고 고소한 향이 뿜어져 나온다. 반쪽짜리 통연어(대략 길이 300mm, 폭 150mm, 두께 50mm 정도. 즉, 아주 먹음직스러운 크기)가 옅은 주황빛의 도톰한 살코기를 뽐내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모습도 모습이지만, 이 연어의 더욱 멋진 점은 '어떻게 우리 앞에 놓여졌는가'이다.


 노르웨이에 올 때, 나와 미씽은 연어를 많이 먹자고 작은 다짐을 했었다. 알다시피 노르웨이는 연어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고독한 물가는 우리에게 연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샌드위치에 넣어진 단 몇 점의 연어만이 우리에게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로포텐으로 넘어온 후, 우린 다시 한번 연어에 도전하기로 했다. 조금 비싸도 여기까지 왔으니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연어를 좀 사고 싶은데, 혹시 싸게 살 수 있는 곳 아세요?" 


 전날 오후, 숙소 사장님께 우리의 넉넉치 않은 사정을 이야기 드린 후, 저렴하고 괜찮은 연어를 살만한 곳을 물어봤다. 사장님이 자신이 거래하는 생선 장수가 있으니, 다음날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하신다. 노르웨이 북부의 길고 긴 겨울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짧은 낮시간 동안 우리는 빌린 자동차를 끌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사실 노르웨이는 애초 우리의 여행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여행 중 읽은 한권의 책('고무 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이 우리의 계획에 노르웨이 로포텐을 밀어넣었다. '나이든 두 명의 사내가 고무보트에 의지해 거대한 그린란드 상어 낚시에 도전'하는 이야기, 대강만 들어봐도 멋진 일인데, 책의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노르웨이 앞바다와 그린란드 상어, 그리고 심해/지구의 이것저것에 대한 이야기들. 책은 우리에게 로포텐에 대한 낭만을 심어준 것이다.


또 한번 먹고 싶습니다! - 홍씨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로포텐 앞바다와 여기저기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겨울 로포텐의 풍경은 정말 새롭다. 어두 침침한 하늘을 배경으로 눈 덮힌 돌산과 절벽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그들은 거친 바다를 둘러쌌다. 그러나 이런 산과 바다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집은 난데없이 평화롭다. 집 곳곳에서 평화로운 노란 빛이 흘러나오고, 창가에는 이런저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놓여 있다. 낭만적인 모습이다. 다들 뭘 그렇게 하고 있는지 길거리는 한산하고, 파도가 들이칠 것만 같은 집들도 아무런 걱정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의 집 앞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다. 바다는 다시 모든 마을과 산, 로포텐의 짙은 하늘까지도 둘러쌌다.


 문득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앞바다에 그린란드 상어가 헤엄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책에 따르면 그린란드 상어는 깊은 바다, 즉 심해에서 살아간다. 때문에 시력은 거의 없으며 기타 감각을 이용한다. 이들은 종종 깊지 않은 바다에도 올라와 물속에서 잠을 자는 물개를 잡아먹기도 하고, 과거엔, 사람들이 잡아올리던 고래 고기를 뭉텅뭉텅 베어물기도 했단다. 최대 몸길이 약 7m에 최장 300~400년까지 산다는 이들은 아직까지 충분히 연구되지 않아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한다. 그런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추운 바다에서. 아마 그 외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겠다. 그런 생각이 이 바다를 더욱 매력적으로 꾸민다.


 숙소로 돌아와 사장님께 연어에 대해 물었다. 연어를 구했단다.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셔서 고맙다고 한 뒤 얼마냐고 물으니 생각해보겠다고 하신다. 방으로 돌아와 한시간 정도 기다렸다. 사장님께서 쿵쾅쿵쾅 나타나셨다. 호일에 쌓여진 연어와 탐스런 향기까지 함께.


 "버터랑 후추랑 이것저것 넣고 구웠어. 크로켓도 두개 있어, 버섯이랑 이것저것 들었어. 가격은... 무료야! Happy Christmas!"


 미씽과 나는 그저 감탄사만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이 맛난 요리를 끝장냈다. 식사를 끝낸 미씽이 다짐했다.


 "세상엔 정말 친절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나도 앞으로 친절한 사람이 될래."


 나 역시 동감했고, 함께 그렇게 되기로 다짐했다. 8개월 간의 여행을 통해 배우거나 깨달은 건 사실 거의 없다. 그러나 단 한가지 제대로 느낀게 있다면 바로 이거겠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친절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은 상대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친절을 받은 이들이 또 친절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배푼다면 그보다 멋진게 있을까? 세상이 조금 더 살맛 나는 곳이 되는 것이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사실에 감탄하며 글을 마친다.



한입 먹어버린 후에야 사진 찍을 생각을 하게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르겐 - 고요한 피오르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