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씨 Dec 23. 2016

베르겐 - 고요한 피오르드

홍씨의 세그림. 37화

 노르웨이에 도착한 날부터 비가 내렸다. 베르겐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 도심 트램 정류장에 내리니 빗방울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굵어졌다. 우비를 꺼내 입고 정신 없이 버스를 타러 갔다. 그리고 우린 가방을 잃어버렸다.

 처음엔 잃어버린지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는데, 미씽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어아? 우오아아악!"


 깜짝 놀라 돌아보니 혼돈 속의 미씽이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선언했다. 그때 우리는 비가 미웠다.


 베르겐 시내 관광을 하는 다음 날에도 비가 왔다. 그나마 빗방울이 매우 가벼워져 다닐만 하다. 앞으로의 날씨가 염려돼 검색해보니, 앞으로 일주일정도는 비가 우리를 따라 다닐 듯 하다. 날이 맑아지길 바랬다.


 셋째날 드디어 우린 기대하던 피오르드 관광을 위해 짐을 바리바리 싸 집을 나섰다. 여전히 꾸물꾸물한 날씨에 안개가 꼈고, 안개로 위장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안개비는 사실 행운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피오르드를 본격적으로 보기 위한 페리를 탈 수 있는 구드방옌에 도착.


피오르드는 고요하다


 물 위로, 그리고 계곡 사이로, 때론 산 위로 구름이 흐른다. 몇몇 산봉우리엔 눈이 내려앉았다. 피오르드의 물을 보며 나는 잠시 이 물이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정말 고요하다. 


 배가 출발했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배의 조용한 움직임과 물살을 가르는 소리, 그게 전부다. 그 무엇도 이곳에선 소란스럽지 않다. 간혹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폭포의 소리도 고요함을 더해줄 뿐이다.


 겨울을 맞아 모두가 조용히 쉬고 있는 것일까, 풍경 역시 잔잔하다. 가만히 선 나무들과 그 곁에 제 집처럼 눌러앉은 구름, 산과 절벽들. 물은 배가 지나간 흔적 외엔 그 무엇도 품지 않았다. 간혹 집이나 오두막, 작은 마을을 지나친다. 이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고기를 낚을까, 땅에 씨를 뿌릴까,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살아갈까. 


 어린 아이들은 이 조용한 오후의 한때를, 그리고 길고 긴 밤을, 무엇으로 지새울까? 어디선가 북유럽의 국가들은 밤이 길기 때문에, 음악가나 예술가들이 많다고 들었다(그 유명한 뭉크도 노르웨이 사람이었다! 나는 몰랐네). 무료한 시간의 돌파구를 예술 같은 것들에서 찾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노르웨이하면 트롤이다. 베르겐 기념품 점에선 쉽사리 트롤 인형을 볼 수 있었고, 예술 박물관에선 트롤을 주제로 한 그림도 몇작품 볼 수 있었다. 이름른 기억나지 않지만 노르웨이엔 물괴물도 있다. 하얀 말로도 변할 수 있는 이 물괴물은 가끔 물속에 숨어 꽃 따위로 사람을 낚기도 한단다. 북유럽 하면 북유럽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오딘과 토르, 로키 등을 위시한 신들의 이야기. 길고 긴 밤, 사람들은 심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던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르겐에서 한가지 더 재미있었던 것은 단순하지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런 소품/물품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북유럽하면 인테리어 아닌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이들에게 집안을 꾸미는 것은 꽤나 중요하고도 즐거운 일이었을 것 같다.


 2시간 정도 배를 탔다. 그리 길지 않지만 뱃삯은 엄청나다. 즉, 비싸다. 배 뿐만 아니다, 기차도 비싸고 버스도 비싸다. 쉽게 말해 다 비싸다. 이 고요한 동네에서 한동안 어떻게 절약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가 남겨졌지만, 여튼 아름다운 동네임엔 틀림이 없다.



베르겐
베르겐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구드방옌 - 송네 피오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