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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Jan 10. 2017

아이슬란드 블루 라군 - 뽕 뽑는 자와 맛 보는 자

홍씨의 세그림. 40화

 뽕을 뽑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왜 하필이면 뽕을 뽑을까? 검색해보니 '본전을 뽑다'에서 그리 변형된 듯 하다.


 여하튼 나는 대게 뽕을 뽑을 때까지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아깝고 아쉬웠다. 부페를 가면 배가 너무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도록 먹기를 즐겼고, 나오는 길에도 미처 먹어보지 못한 디저트들이 눈에 밟혀 아쉬운 맘이 가득했다. 낸 돈도 돈이지만 식탐이 제법 있는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여행지를 다니면서도 그렇다. 한 곳에 가면 그곳에 질릴때까지 있어보고 싶다. 멋진 풍경을 보면 그 풍경의 하나하나가 내 뇌리에 새겨질때까지 즐기고 싶고, 한번쯤 시베리아 황단 열차를 타고 엉덩이가 물러버릴때 까지 창밖을 바라보고 싶다.


 내 이런 성격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딱히 부모님이 그러신 것 같지도 않은데, 여튼 난 그렇게 자라왔다. 때론 그런 내 자신이 미련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게 맞다고도 생각했다, 끝을 보려한다는 것.


 아이슬란드엔 대표적 명물이 몇가지 있는데, 블루 라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화산재가 굳어져 형성된 땅에 푸르디 푸른 개울이 흘러간다. 검고 거친 화산석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모습과 뽀얀 하늘빛 물길의 부드러운 흐름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온천 주변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그 예쁜 물을 한곳에 모아 온천을 만들었다. 너무 인기가 많아 예약해둔 입장 시간이 되어 도착했건만 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간단히 씻고 탕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의 공기 속으로 온천수가 증발하며 안개를 만들어 더욱 온천스럽다.



 애초에 내 계획은 이랬다. 온천에 들어가 한두시간 놀다가, 음료나 간식을 사먹고 또 몇시간을 놀다가 가는 것. 온천도 한번 온 김에 뽕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십분이 지나고 갈증이 나면서부터 미씽은 그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안에서 파는 모든 것들은 너무 비싸니까, 탕에서 두어시간만 있다가 나가서 맛난 것을 사먹자고 한다.


 그렇다, 미씽은 맛만 보는 자에 가깝다. 뽕을 뽑는 자인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한시간만 하고 나가더라도 잘 즐겼으면 된 거라는 식이다. 뚜둥! (다만, 이런 미씽도 잠은 뽕 빠지게 잔다. 이율 배반적 면이 있달까? ㅎㅎ;)


 이런 우리의 다른 성향은 여행 중 종종 드러난다. 어느 도시에서 얼마나 머물지를 결정할 때, 어떤 투어를 몇시간짜리로 선택할지(특히 몽골에서!), 최근엔 오로라를 볼때도 그랬다. 난 더 더 더! 보길 바랬고, 그녀는 오분 십분으로도 아주 만족했다.


 그럴때마다 나와는 다른 입장에 대해 알아간다. 다름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음을 알아가고 인정해간다. 그녀가 그런 스스로가 좋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것에 반론을 제기할까? 그건 그저 취향일 뿐인데. 예전이라면 무조건 내가 옳다 우겼겠지만, 가끔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거나 지치는 미씽을 보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웠다.


 여튼 우린 세시간 정도로 타협점을 찾았다. 잠시 한자리에서 쉬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보기도 한다. 온천탕이 꽤나 넓고, 여러 구역으로 나뉘었다. 더 따끈한 곳과 조금 더 편안한 곳. 깊은 곳도 있는가 하면 얕은 곳도 있어 편하게 쉴 수도 있다. 몇몇이들은 가져온 카메라로 셀카를 찍거나 연인을 찍어주기도 하고, 어떤 강인한 사나이들은 자신의 애인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실제론 물에서 드는 거라 전혀 무겁지 않다!).


 온몸을 담군 온천수의 따수함에 얼굴을 식혀주는 찬바람의 상쾌함 더해져, 그간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더불어 마음도 풀어진다. 이대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뽕을 뽑든 말든 그런 건 잠시 잊고 이곳에 멍하니 머문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그저 잘 즐기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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