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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May 11. 2024

#요가일기, 2024년 2월의 기록(vol.1)



2024년 2월 언더독요가 출석부



2024. 02. 02. (금) Yin



유준과 오늘 일찍 헤어져 15분 정도 여유가 더 남았다. 길 위에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져 아주 천천히 걸으며 빈마켓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카페에서 삐져나오는 미세한 원두 냄새에 커피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충동적으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매일 이 신호등에서 위기가 있었지만 그간 잘 이겨냈는데 오늘은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발걸음이 카페로 향해버렸다. 따뜻한 컵을 손에 쥐고 신나게 홀짝이며 요가원으로 향했다.


욕구를 해결했으니 입은 즐겁겠지만 수련 전에 커피를 마시는 건 명징한 복선이었다. 이뇨작용 때문에 수련에 방해가 될 수 있는데 그 모든 걸 모른척하고 불나방처럼 저질러버렸다. 빈속에 들이킨 아메 한 잔 속 카페인이 내 몸에 날선 자극을 해대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든 결과의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요가원에 도착해서 수업 전 세팅을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왜 어째서 수업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또 방광이 노크를 하는 것인가. 오늘은 땅콩볼로 등과 다리 후면을 눌러낸 다음 복부도 풀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와우, 하필 복부라니.. 앞으로는 수업 직전에 커피 금지.


땅콩볼로 발목-종아리-오금을 지그시 눌렀다. 종아리까지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실어 앉을 수는 있었는데 오금은 많이 힘들었다. 오른쪽과 왼쪽 다리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을 느끼며 평소 때도 종아리를 자주 풀어야지라고 또 허망하기 그지없는 다짐을 오늘도 한번 해보긴 했다. 도구에서 빠져나와 가만히 다리의 느낌을 살펴보니 개운하고 가벼웠다.


그리고 드디어 땅콩볼로 복부를 깊숙이 자극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방광도 방광이지만 복부 자극이 꽤 괴로울 수도 있다고 미리 언지를 주셨지만 예상보다 난 통증이 적었다. 복부로 깊숙이 들어오는 딱딱한 물체에도 아랑곳 않고 살아서 팔딱거리는 동맥의 파동, 압력을 덜어낼 때 느껴지는 하지의 뜨끈한 혈류. 예전 같으면 이렇게 장요근을 자극하는 복부 지압을 할 때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굴었겠지만 요가를 하면서 늘려내는 움직임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엔 그렇게 많이 아프진 않았다.


각종 아사나들로 장요근을 자주 늘려내어 짧아지진 않았겠지만 나는 그 부분이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달린 후엔 장요근의 피로감을 자주 느끼고 점프백 할 때도 다리를 몸에 붙여내는 힘이 부족하다. 무작정 늘려내고 유연함만 가지고 간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정선과 밸런스. 신기한 우리 몸.


커피가 수업 내내 심신을 산만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가볍고 말랑해진 느낌으로 마무리되어 좋았다. 그런데 나는 집에 땅콩볼도 있고 폼롤러도 있고 심지어 밸런틱도 있는데 왜 마사지에 이렇게 소홀한 것이냐며.








2024. 02. 04. (일) 빈야사, 하타




1.

오전 빈야사


하늘은 흐렸지만 기온도 적당하고 공기도 깨끗했다. 자전거를 타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요가원에 도착하니 오늘도 만석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위치에 매트를 펼칠 수는 있었다. 밧다코나아사나로 수업을 열면서 서서히 몸을 풀어 나갔다. 빈야사로 들어가 수리야 후 스콜피온, 와일드띵, 사이드 플랭크와 바시스타아사나를 지나 극락조자세를 이어갔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스바르가드비자아사나? 이름이 너무 어렵잖아.


이후 짝을 이루어 우르드바다누라사나 자세 교정 연습을 했다. 나는 선생님의 설명 도구가 되어 시범을 보였다. 팔꿈치를 모아 내기-무릎을 앞으로 밀지 않고 팔의 힘으로 가슴을 열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요점이었다. 핵심은 처음부터 다리 힘보다 흉추각을 더 사용해서 움직여보라는 것인데 평소에는 올라간 뒤 발바닥 미는 힘을 사용하여 가슴을 열었다면 이번 연습은 아예 처음부터 무릎의 위치를 고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미션이라 난이도가 몇 배로 점프되는 느낌이었다. 얄짤없는 선생님의 핸즈온.


연습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비명 내지는 털썩 소리가 BGM처럼 깔렸다. 인체에서 울려 퍼지는 격정적 선율. 일련의 커플 연습 세트를 마친 뒤 짝과 나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로 매트에 앉아 얼마간 멍하니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후 선생님이 척추 밀어올려 주셔서 더 깊숙해진 브릿지 하고 이어서 골반 들어주셔서 에카파다, 부들부들 시간을 조금 더 거친 뒤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마치고 매트를 정리하는데 종종 수업 때 마주치는 남자분이 내게 와서 점프스루 관련된 어떤 것을 물어봤다. 아마도 요령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분은 종종 내게 이런류의 질문들로 말을 거는 편이긴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대응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내 입에서 까칠한 말들이 필터도 없이 발사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사납게 굴었나 생각해 보니 민망함을 이겨낼 길이 없어서/떨쳐내려고/무마해보고자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선생님이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나에게 와서 그런 주제로 말을 거니 몹시 민망했고 그 순간이 진심으로 너무 괴로웠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그분에게 정말 미안했다. 다행히도 그분은 내가 빽빽거리는데도 웃으면서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눈치였기에 오히려 나의 못난 모습을 가려준 셈이다.


잘 해보고 싶은 마음, 그건 정말 좋아해서 그런 걸 거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런 걸 선생님께 물어보기 멋쩍고 민망하니까 같이 수련하는 입장인 내게 편하게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민망함을 무마하기 위해 상대에게 화살을 돌렸다. 냉랭하고 엄격한 말투 뭐냐고. 참 못났다.




2.

2교시 하타까지 연강 했다.


부장가아사나에서 파생되어 여러 모양으로 수련을 연결해 나갔다. 조금씩 빌드업을 해나가며 점차 후굴을 시작했다. 후굴을 할 때의 올바른 방법을 인지시키기 위해 아주 차근차근 여러 방법과 느낌을 안내해 주셨다. 덕분에 등이 뻐근하다. 1교시 빈야사 수업 때부터 등을 조이는 행동을 많이 해놔서 아직도 브라선 그 어딘가가 뭉쳐있고 아프다. 내일 과연 내가 전굴을 할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다.


후반부에 바타야나아사나도 했다. 이거 정말 오랜만이다. 이후 파드마를 짜고 파생된 여러 움직임도 이어갔다.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라는 데로 몸을 쓰긴 썼는데 내일 분명 근육통이 여운을 남겨줄 것 같다. 근육통이야 시간 지나면 회복되는 것이니 걱정할 부분이 아닌데 못난 내 행동이 남긴 이 찜찜한 기분은 언제쯤 회복이 될까. 이불킥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2024. 02. 06. (화) 아쉬탕가



여유 있게 도착한 날이라 수업 전에 선생님, H와 함께 담소를 나눴다. 여행에 대한 꿈, 새로 배우게 된 것들, 멍멍이와 야옹이의 소식. 다행히 야옹이와 멍멍즈가 이젠 친해졌다고 한다. 같은 사람에게서 돌봄과 사랑을 받는 동물들의 연결고리가 마침내 단단하게 엮어졌다. 낯섦과 불편한 마음을 허물기 위한 시간들이 동물들에게도 필요했다.


오늘은 풀프라이머리를 수련해 보려고 한다고 예고하시며 바로 시퀀스로 들어갔다. 차분한 호흡과 꼼꼼한 움직임을 다짐하며 우르드바 하스타. 스탠딩에서 한차례 휘청거림이 있었지만 제자리로 데려오고자 호흡에 집중하고 집중하는 것에 집중을 했다.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싯팅에서 잠깐 멍청타임이 찾아왔다. 트리앙무카 할 순서에서 자누시르사를 만들고 앉아있다가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면서 다른 이들을 보니 내 다리와 다른 것을 보고 얼른 정신 차리고 바꾸었다. 드물게 뒤로 돌아본 날이다.


끙끙 부자피다, 선생님이 등 납작하게 눌러준 쿠르마, 선생님이 다리 모아준 숩타쿠르마, 전완만 겨우 통과한 핀다가르바, 세 번째 구르다가 또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등에 요철이라도 있는 거니. 오른쪽 등으로 내려가 왼쪽 등으로 올라오는 게 정석이지만 하다 보면 올라오기에 급급해서 방향은 모르겠고 마냥 몸에 긴장이 들어가고 결국엔 내동댕이로 마무리된다. 둥근 등을 오뚝이처럼 활용하여 관성으로 구르는 것 같았지만 올라오는 건 코어 힘이 필요했다. 과감하게 시도를 해야 하는데 올라오면서도 못 올라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 딱 걸려든다.


미끈거리는 몸을 바닥에 눕혀서 사바아사나. 더운 날엔 더 그렇지만 수련 말미엔 온몸이 뜨거워져 정말이지 발가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허나 나 같은 냄비인간은 금방 열이 식으니 담요를 포기하면 마무리는 추위를 느끼며 낭패가 된다. 좀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따뜻한 바닥이 나를 확 끌어안았다. 오늘 아침부터 골치 아픈 인자위 회의 다녀오고 희재가 꼭 만나서 책을 주겠다고 하여 급하게 홍대에도 나갔다오고 해서-희재의 번개는 반갑고 감동적이고 기분이 좋기는 했으나-정신적으로 적잖이 피로했던 것 같다. 배 위로 선생님이 덮어준 따뜻한 수건이 마치 토닥토닥 자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는데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니 코끝이 시원했다. 따뜻한데 시원한 호사를 누리는 순간이다. 요가원에서 오늘은 이대로 좀 자고 내일 아침에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면서 달달한 오늘의 사바아사나가 끝이 난다.


마치고 걸어가는 길에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 빈마켓 영업 마감 장면을 구경했다. 두 분이 청소를 한다. 누구는 청소기를, 누구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하루의 마무리이자 내일을 위한 준비. 잘 마무리해두어야 내일도 안정되게 존재하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각자들의 의미 있는 매일의 리추얼을 생각했다.


리추얼.

바닥을 쓸고 닦는 저들처럼, 나도 나의 리추얼을 중요하게 여기려 한다.








2024. 02. 07. (수) 빈야사, 아쉬탕가



1.

오전 빈야사.


어제 축구 보느라 늦게 잠들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몸도 힘들고 졸리고 피곤했지만 유준을 등원시키고 자전거로 요가원에 도착했다. 비틀기에서 몸이 뻑뻑하고 결리고 관절들이 걸리적거렸다.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통과하며 몸을 예열하고 B로 들어가면서부터는 하체를 깨워냈다. 오늘따라 다리가 무척 부들거렸다.


빈야사 후 짝과 함께 핀챠마유라사나를 연습했다. 나는 선생님의 설명 도구가 되어 시범을 보였다. 고개 들기, 등의 힘 인지, 복부 힘, 어깨 힘을 동원하였다. 가만 내버려두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설 수 있는데 오늘은 너무 버거워 선생님이 혼자 서보게끔 손을 놓으시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계속 선생님 손에 의지를 하자 웃으면서 내려주셨다.


나의 짝은 강했다. 자그마한 여자분이었는데 다리 힘이 좋았다.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자기는 절대 못할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더니 다리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잘 버텼다. 다리에서부터 등으로 힘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엄살쟁이였구만.


매트에 닿은 면들과 나의 몸이 연결된 하나의 몸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팔을 댄 부분과 위로 상승되어 있는 나의 몸이 분리된 게 아니고 연결된 나의 것, 나 자신이다. 평소에 두 발바닥으로 서 있었다면 핀챠에서는 내 손바닥과 팔의 전완부로 나를 바로 세워내는 것일 뿐이다. 컨트롤 가능한 내 몸이라는 것과 바로 세운다는 것을 생각했다. 기대는 것이 아닌 세우는 힘을 생각하며 핀챠 연습 마무리.




2.

저녁 아쉬탕가.


호흡명상으로 시작했다.

쿰바카호흡을 통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에 빛을 비추듯 환하게 들여다봤다. 정성스럽게 호흡하는 동안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한 짧은 순간이 다녀가기도 했다. 호흡을 통해 내 속에 든 두 개의 풍선 주머니 내부에서는 탁함과 맑음이 뒤섞여 서로 교환되고, 그 어느 경계선에선 적응하고 보유하고 느끼고 다시 내보낸다. 생리학적으로도 그러하고 '교환'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고 연장되는 순간들이다. 좁은 숨길을 들여다보니 나는 들숨이 날숨에 비해 짧다. 날숨이 훨씬 길다. 어릴 때부터 항상 조여내고 버티고 힘을 쓰고 하는 몸짓을 많이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춤을 출 때도 그랬고 팝핀도 그렇고.. 아무튼 그런 움직임이 더 익숙하다. 길이를 맞추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은 짝과 함께 척추 늘려주기 활동과 차크라사나 도와주는 연습을 했다. 설명 때 도구가 되었는데 선생님의 정확하고 든든한 손길로 도움을 받으니 차크라사나가 딱 떨어지게 깔끔해졌다. 속이 시원했다. 도구가 되면 이런 느낌을 알 수 있게 되어 누군가를 도울 때도 그 느낌이 들게끔 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목에 받는 부하를 줄여주고 팔이 덜 힘들게 돕기 위해 골반을 살짝 들어주는 것이었다. 나의 짝은 목이 안 좋은 사람이라고 하여 성급히 시도하지 않고 선생님께 SOS를 보내고 잠깐 돌아보니 사람들 모두 열심히 연습한다. 귀엽다.


오늘은 하프 정도의 프라이머리를 진행했다. 스탠딩 이후 싯팅에서 각종 전굴 자세들과 결박 시리즈를 전반적으로 생략하고 밧다코나아사나부터 피니싱으로 연결했다. 시퀀스가 많든 적든 아쉬탕가 수련은 언제나 몸이 뜨끈해지고 피부 주변 공기가 후끈하다. 피니싱에서 마츠야사나 후 웃티타로 팔 다리를 대각선으로 뻗고 있는데 몸이 전혀 힘들지 않고 카운트가 아주 짧게 느껴져서 어리둥절했다. 선생님이 카운트를 빨리 세셨나, 오전에 빈야사 수련도 하고 와서 몸이 갑자기 튼튼해졌을까 하면서 추적해 가다가 떠오른 것은, 아, 오늘 나바아사나를 안 했구나. 이것이 누워서 하는 나바아사나 같은 것인데 오늘은 앉아서 하는 나바아사나를 생략했기에 첫 나바아사나인 것이었다.


마치고 J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그렝블레 앞에 서서 약 40~50분간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 창작에 대한 욕구, 영감을 주는 순간과 요소들,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야기 등 생각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이와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늘 대화가 길어진다. 왜 그럴까 생각했더니 적극적인 공감과 나의 말을 아주 중요한 이야기로 여기는 반응들로 인해 내 입에서 자꾸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말이 하고 싶어도 꾹 참고 주로 듣고자 노력하는 사람인데 J와의 대화에서는 자꾸 내가 입을 열게 만든다. 열린 마음의 그녀가 더 듣고 싶어 하니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술술 뱉어내고 있다. 뭔가 독특하고 재밌는 관계이다.


발가락이 시리도록 서서 이야기를 나눠 놓고선 내일 보자며 헤어졌다.

내일도 아침 수련 후 긴 토크가 예약되어 있다.







2024. 02. 08. (목) 하타



오전 하타 선생님이 아프셔서 다른 선생님이 대신 수업을 오셨다. 친근하고 아는 얼굴이었다. 미리 공지된 부분이 아니라 깜짝 놀랐지만 반갑고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그녀를 언더독 수업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 거다.


기분 좋은 아로마 오일로 수업을 열었다.

오늘은 골반을 열어내고 어깨도 좀 열어볼 것이라고 예고했다. 누워서 다리와 골반을 열고 그다음엔 앉아서 열고 접고 하면서 앞면과 뒷면을 함께 강화시키고 이후엔 서서 같은 방식을 이어갔다. 나는 실제로 선생님이 그런 생각과 기준으로 했건 아니건 상관없이 장면 속에서 누군가의 정돈 방식, 흐름을 만드는 기준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마치 구조를 정리해 보라고 던져준 과제라도 있는 것처럼 어느새 로직을 생각해 보고 있다. 습성이자 습관이다.


시퀀스 변화구간마다 음악도 자주 바꾸고 음성의 톤도 바뀌었다. 구간마다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에너지 레벨이나 질감을 그렇게 표현해 봄으로써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그런 흐름이 한편의 공연같이 기승전결을 준비한 시나리오 같았다. J가 내게 나는 창작과 기획자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라더니 그래서 그런식으로 해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사고를 들여다 본다.


지난 수련의 세월을 돌아보면 선생님들의 그런 준비가 늘 좋게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엔 그런 촘촘하고 정성스러운 컨셉 준비가 너무 작위적이거나 사람들 개개인이 수련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만들어나갈 기회가 박탈된다고 생각한 적도 드물게는 있었지만-어쩌면 그날의 기분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언짢은 날엔 더러 그러하니까-오늘의 수업은 선생님의 정성과 친절함이 녹여져 우리에게 전달되니 나도 그 흐름에 같이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 모든 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모든 것을 다듬어주는 것 같다. 만약 형준 선생님이 수업 중에 욕설이 난무하는 힙합 또는 그로울링을 해대는 헤비메탈을 튼다거나(좋겠는데? 집에서 시도해 볼란다) 아로마가 아니라 심지어 에프킬라를 뿌린다고 한들 나는 아마 별 거부감 없이 그러려니 하지 않을까? 수련을 이끌어주는 분에 대한 애정과 열린 마음, 결국엔 그건가 싶다.


오늘 대체 수업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그녀의 마음을 괜히 상상해 봤다. 긴장되었을까, 기대되었을까, 나 같이 아는 얼굴이 반가웠을까 부담스러웠을까. 마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라고 말씀드렸다. 굳이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가 무척 기쁘게 반응하며 기분 좋은 대답이 돌아왔다.





마치고 J와 홈스윗홈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점심시간을 맞이한 Y가 운명적으로 나타났다. 지난번에도 마주쳤기에 비슷한 시간이라 어쩌면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는 했지만 정말로 눈앞에 나타나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웠다. 마치 'ON AIR' 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Y가 회사일로 힘든 부분들을 꺼내놓고 J가 그 위에 작업 슬럼프에 관한 이야기를 레이어드하며 그들의 서사가 우리들의 대화를 진하게 농축시켰다. 나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서 조금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런 '류'의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무해한 관계. 어떨 땐 '관계없음'과 '적당한 거리감'이 우리를 더 안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연한 만남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대화가 오가니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Y를 아쉽게 회사로 돌려보내고 J와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안에 있는 열망은 오르락 내리락하며 넘실대는 우리들의 감정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길을 걸으며 그녀에게 '지금, 여기'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수업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철학의 일부분을 인상 깊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어 종종 그 부분을 상기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되어 감흥이 없고 너무 흔한 관념이 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대화는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내가 계산하지 않고 그냥 진솔하게 상대에게 건네는 말들이 '만남'을 완성한다는 것.

대강을 나온 선생님에게 오늘의 수업이 좋았다고 굳이 말하고 싶어 전한 것, Y가 짧은 점심시간을 나에게 할애하면서까지 자신의 고민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것, J에게 흔하디흔한 말이라 필터 하지 않고 그냥 떠오른 생각들을 공유한 것 모두가 인격적인 만남의 연속선 상에 있기를 바란다.









2024. 02. 15. (목) 아쉬탕가



오늘 연수 일정 후에 연결된 송환영회 회식까지 참여하고 달려왔더니 머리카락에 삼겹살 냄새가 배어있었다. 어차피 땋을 거지만 옆 사람의 예민한 후각에 걸려들어 불편함을 줄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내 옆자리에 J가 자리를 잡았다. 어찌나 다행인지.


수리야로 몸을 예열하고 몸 드는 것을 연습했다. 앉은 자세에서 차투랑가로 가기 위해 몸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에 팔 힘과 코어의 힘을 동원하는 노력을 반복해야 조금씩 힘이 더 생겨난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몸이 뜨지는 않는다 해도 반복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이다. 여러 단계의 연습 방법을 안내해 주면서 내게는 선생님이 복부의 당기는 힘을 더 키워서 다리를 몸 쪽으로 더 갖다 붙일 수 있게 되면 플로팅이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붙이는 힘, 끄덕끄덕.


짝과 함께 연습할 부분은 우트플루티히였다. 어제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갔다면 오늘은 우주여행이다. 선생님이 무릎을 들어주는 우트플루티히는 누가 들어주니까 마냥 쉬울 것 같았지만 몸이 뒤로 기울지 않게 버티고 무릎을 몸에 붙여내는 힘은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조금 더 진입하여 파드마에서 우트플루티히처럼 몸을 띄운 후 선생님이 엉덩이 아래 뒷벅지를 잡고 세워주면 다리를 펴서 핸드스탠딩 자세로 연결되었다. 골반 접어서 다리 사이로 통과(하려다가 내가 힘 빠져서 바닥에 끌림). J와 짝이 되어 도와주려고 자세를 잡았는데 무겁고 쉽지 않았다. 아까 선생님이 얼마나 잘 잡아준 건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설명 도구가 되어 시범을 보인 사람의 가장 큰 혜택이다.


프라이머리 시작하고 오늘도 한 발 서기 구간에서 기우뚱거리며 아슬아슬 지나갔고, 요즘 나바아사나 할 때 힘들어서 그런지 손이 아래로 처지나 보다. 어제에 이어 오늘 이틀째 손 위치 교정. 손끝에도 힘, 손의 위치보다는 가슴과 손의 위치가 일치되어 가슴을 더 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 피니싱에서 에너지 꽉꽉 눌러 담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잘 잠그고 우트플루티히도 배운 데로 열심히 무릎 들고선 마무리했다.


오늘 9명 정도 수업에 온 것 같다. 3층이 바글바글한 날이라 실내가 더욱 뜨거웠다. J와 함께 요가원을 빠져나오며 2층 앞에서 계단에 불이 켜져 인요가 수련 중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조용히 지나가자고 잔소리를 했다. 조금 친해졌다고 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같이 러닝 한 Y의 전기자전거를 구경하며 인사 건네고 집으로 향하는데 거리가 짧게 느껴진다. 더 걷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뇌 속에 정리할 구역들이 좀 남았는데 어느새 발걸음은 집 앞이었다. 오늘 또 늦게 잘 예정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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