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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May 23. 2024

#요가일기, 2024년 2월의 기록(vol.2)



2024년 2월 언더독요가 출석부








2024. 02. 20. (화) CP, 아쉬탕가



1.

오전 CP


오늘은 평일 오전에 CP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제는 3월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다음 주부터 오전 수련은 포기해야만 했다. 흐리고 어둑어둑한 날씨에 걸맞게 흐리멍덩한 나의 정신 상태는 아마도 감기약 때문인 건가. 걸어오면서 정말 오랜만에 Limp Bizkit 노래를 선곡하여 들으며 텐션을 끌어올려 봤지만 걸음만 리드미컬하게 빨라질 뿐 정신은 여전히 끈적거렸다. 멍한 상태로 수업 전에 밸런틱 위에 올라서서 발 마사지를 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창가에 우뚝 선 고무나무의 생기가 참 든든했다.


간 경락을 마사지하고 복부도 지압을 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핵심 경혈은 태충혈이었다. 발등에 위치해 있고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로 타고 올라가 metatarsal bone 끝나는 지점 오목하게 팬 곳쯤이었나 족배동맥 촉지 지점이었던 것 같다. 이 위치는 별명이 '구급혈'이라고 할 만큼 급체 같은 증상에 치료적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고, 사관혈 중에 하나로 구성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혈자리라고 했다. 정확한 위치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눌러주셨는데 내 발 등을 누르더니 '오-' 하시며 풀어주고 싶게 뭉쳤다고 했다. 누르니까 뻐근하고 무척 아프다. 감기약 기운으로 끈적하고 혼탁하던 정신이 통증 바람에 날렵하게 돌아왔다.


마치고 선생님께 마지막 수강임을 말씀드리고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음 시즌이 되면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선생님은 봄처럼 푸근한 말솜씨로 나를 배웅하며 포옹을 했다. 선생님의 포슬포슬한 인사에 아까 겨우 날렵해진 정신이 다시 나른해진다. 다정하여라.




2.

저녁 아쉬탕가.


오늘은 하지를 쓰면서 몸을 깨우고 힘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리로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짝과 함께 워밍업을 하고 짝이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알고 보니 외국인이었던 내 짝의 이름은 T였다. 이어 매트 위에서 다리를 벌려 서는 동작들로 전환할 때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디 컨트롤에 신경을 쓰며 사뿐히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내 몸에 가해지는 충격의 최소화를 통해 편안하고 일정한 호흡패턴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해 설명하셨다.


공감되었다.

나도 평소 소리가 나지 않는 움직임을 중요시 여기는 편이었다. 그러려면 더 힘이 들고 더 집중해야 하고 구령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는데 어느새 어느 동작에선 습관이 되어있고 점프백 같은 동작에서는 힘이 달려 아직 쿵쾅 내지는 콩콩거리고 있지만 의도는 달랐던 것 같다. 내가 소음을 줄이고자 한 건 성격의 영역이었다. 소란스럽거나 유난스러움을 가지 쳐내고 깔끔하고 부드러운 빈야사를 연결하고자 했던 이유가 더 컸던 것 같은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공감이 되고 사실은 그 이유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덕끄덕.


오늘 정말 숨 쉬는 게 힘들었다. 수업 전에 코를 풀고 또 풀었지만 계속 훌쩍거렸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숨쉬기 불편하여 움직임 연결도 힘들었지만 수업 내내 나의 훌쩍거림이 내심 다른 사람들의 집중을 방해할까 봐 걱정인 부분도 약간 있었다. 호흡의 중요성, 이렇게나 고마운 숨.


수업 전에 일찍 도착하여 선생님이 다녀온 카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동네에 카페는 차고 넘치지만 발걸음이 향하는 카페는 따로 있고, 우리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시공간이 주는 '경험'을 얻으러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그 경험은 카페의 직원이나 사장이 주는 인상과 태도가 큰 역할을 했던 것 같고 그게 각자들의 니즈와 일치할 때 결국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은 사람이었다.


카페도, 요가원도. 맞아. 그러하다.








2024. 02. 21. (수) 빈야사, 아쉬탕가



1.

오전 빈야사.


눈인지 비인지 진눈깨비가 함께하는 축축한 아침, 오늘은 이번 겨울 오전 수업을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날이었다.


블럭 두개로 프라사리따 자세로 후면을 천천히 늘려내고 척추도 늘리고 비틀기도 하면서 몸을 깨웠다. 빈야사에 들어가 우르드바하스타-웃타나사나 이 두 가지를 세 번 정도 반복했다. 반복할수록 길어지는 후면의 정렬을 느끼며 호흡을 이어갔다. 오전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수업이라 그런지 이 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마음이 다가왔다. 허벅지 힘을 써서 단단하게 지지해야 하는 자세들을 이어갔다. 오른쪽과 왼쪽 다리의 힘이 다른 것도 느꼈다.


웃카타에서 무릎 바깥으로 팔꿈치를 걸어 합장하고 일정 호흡을 유지하다가 비틀기를 유지한 상태로 한 다리를 떼어 비라바드라3처럼 연결을 해야 하는 구간은 밸런스와 근력을 총동원해도 무척 힘겹다. 이 구간도 역시나 좌우 힘의 차이를 느꼈다. 왼 다리가 훨씬 수월했다. 이후 아르다찬드라에서 바닥을 짚은 손을 바닥에서 떼보라고 하셨다. 1센티미터라도 띄우는 것을 시도해 보라고 하셔서 조금씩 바닥에서 멀어지려 집중력을 총동원하고 익숙함을 서서히 떠나보내며 새로운 도전의 순간을 경험했다.


수업이 끝나고 오늘이 마지막 출석이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제 매일 아침마다 올 수 없다.


겨울은 여행 같은 시간이었다.

하루를 열고 닫는 것에 요가가 있었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동네를 거닐며 상점들을 들리고 단골 빵집에서 아침에 갓 구운 빵을 샀고 작은 카페 젊은 직원분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옮겨 적었고 개인사에 쌓여있던 숙제들을 하나씩 해결했고, 정겨운 이들에게 산에 가자고 꼬시기도 하고 도반에게 수련 후 커피 마시자고 찝쩍거리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내린 미션들을 수행하느라 바쁘고 재밌었고, 보고 싶었던 인연에게서 갑작스럽고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면 바로바로 나가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빈야사.

앞으로의 날들은 또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해나가며 나의 일터가 나의 빈야사가 되는 시간들이 곧 다가온다. 흐름을 연결해나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호흡을 일정하게,

템포를 놓치지 말고,

정성스럽고도 꼼꼼하게,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


"Stay here. I'll be back."






2.

저녁 아쉬탕가


오늘은 시작 만트라 후 바로 프라이머리로 들어갔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습한 것들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수련하기로 맘속으로 다짐하면서 우르드바 하스타. 어제보다 심하진 않지만 오늘도 말썽인 콧물. 숨 쉬는 게 불편한 날이니 더욱 꼼꼼하게 호흡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훌쩍임은 계속되었고 들숨은 코로 가능했지만 날숨은 입으로 하는 순간이 많았다.


호흡은 힘들었지만 몸이 아픈 건 아니니 지켜야 하는 빈야사에 소홀하고 싶지는 않았다. 좁은 숨길인데 평소의 텐션으로 이어나가면 호흡이 약간 거칠어질 테고 그때마다 나는 훌쩍거림과 대립하겠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좀 훌쩍거리면 어떠냐. 네 하고 싶은 데로 하렴.


파리브리타트리코나에서 엉덩이가 자꾸 돌아가 선생님이 바로잡아주셨다. 항상 핸즈온이 있는 방향인데 늘 놓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느끼는 관절의 그 느낌이 바른 정렬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파르스보따나사나에서 등 더 펴내고 합장한 손의 뿌리에서부터 바르게 붙여내기, 팔꿈치 날개처럼 띄우지 않기, 선생님이 양쪽 팔꿈치 잡고 교정해 주셨다. 이런 부분들은 늘 같은 부분에서 교정을 받는데 나름 신경을 쓴다고 쓰는 것임에도 몸에 잘 반영이 안된다. 내 몸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방향이 있는 것 같다.


(중략)-졸면서 써서 아무 상관 없는 헛소리를 가득 적어뒀다.



요가무드라,

내가 나를 상하지로 결박하여 바닥으로 가라앉히고 캄캄한 밤 속에서 달빛을 찾아 나서는 심정으로 깊은 호흡을 순환시켰다. 고독하고 절박하지만 침착한 호흡, 요가무드라마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감정이다.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자꾸 뭔가 보고 싶어 하는 이상한 나의 마음.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가졌으면서 간절한 것이 또 생기는 나의 마음을 꽁꽁 묶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고독하고 그럼에도 절박하고 그러나 결국에는 침착해지는 나라는 사람을 바라본다.


묶는 거 아니야, 안아주는 거야.

나 좀 꽉 안아주세요. 하는 거야.









2024. 02. 23. (금) 하타



호흡명상을 길게 가져갔다.

꼬리뼈 아래에 담요를 받치고 수카아사나로 앉아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목, 가슴, 복부, 꼬리뼈로 점차 의식을 이동해 보면서 고요하게 호흡했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에 의식을 두고 호흡할 때 나는 눈을 감고 그곳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간다. 지긋이 그곳을 바라보는 느낌이 가장 편안했다. 내가 내 몸이라는 관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장롱 속에 숨어 깜깜한 앞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금요일 하타 선생님은 수업 시작 호흡명상 때나 사바아사나 때 종종 오늘처럼 바디스캔 같은 안내를 자주 하신다. 이런 소마틱스적인 접근으로 사람들의 명상이 조금씩 조밀해지고, 매트 밖 세상에서의 산만하고 복잡하고 치열하기 그지없는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다듬어주는 것 같다. 더불어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가만히 들여다 봄으로써 실존 감각을 일깨우고, 자신을 조금 더 돌보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 같다.


앉아서 스퀘어 포즈로 골반 주변을 깨워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반비둘기와 고무카 다리, 비틀기, 어깨 열기를 연결하고 중간에 나무 자세에서 균형을 잡으며 얼마간 호흡을 유지하고 아르다밧다 파드모따나사나로도 연결했다. 아르다찬드라로부터 이어진 스탠딩 구간을 더 진행한 뒤에 내려와 하누만아사나와 우르드바다누라사나, 할라아사나 등으로 마무리 짓고 사바아사나로 가라앉혔다. 무엇 하나 삐죽 튀어나오는 구간 없이 빈야사처럼 흐르는 하타 시간이 끝이 났다. 거의 대부분의 순간들이 숨 가쁨 없이 천천히 차분하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많은 집중을 요했고 오늘 나의 집중을 도운 것은 창밖의 DAVID TOY 간판.


오늘 어린이집을 졸업한 유준과 나.

나는 내일 부모 총회에서 또 사회를 맡았다.

정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역할이다.

오늘의 하타처럼 차분하게 집중해서 마지막을 유쾌하게 장식하고 싶다.









2024. 02. 26. (월) 아쉬탕가


10분이나 지각을 했다. 오늘은 수업 참여 자체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부랴부랴 예약을 하고 달려왔지만 예상보다 너무 늦어버렸다. 한창 수련이 진행 중인 어둑한 스튜디오에 슬그머니 합류할 때 온몸의 세포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 민망한 마음이 드는 것을 무릅쓰고 가운데 남은 한자리에 매트를 편 후 짝과 함께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핸드스탠딩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내 짝을 보니 지난번 주말 아침 빈야사 때도 짝이 되었던 분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탓도 있고 오늘의 하루 일정이 너무 복잡했던 탓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도무지 집중이 안 되어 잠시 애를 먹었다. 짝과 연습하다가 다른 동작 연습을 설명하기 위해 선생님과 함께 시범을 보이는데 낯선 움직임이라 그런지 몇 번을 설명 들어도 이해를 못 하고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굴었다. 짝과 연습하다가 둘 다 이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임을 눈치채고 한참 키득거리는 시간이 흐른 뒤 프라이머리 수련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시퀀스를 시작하니 정신이 차려졌다. 균형 잡는 움직임에서 휘청거리기는 했으나 그건 기능적인 문제이고 머리가 조금씩 무게를 덜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반복된 이 아쉬탕가 시퀀스가 내게는 익숙함을 통해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아는 길을 운전할 때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앙무카 에카파다 파스치모에서 핸즈온. 골반의 방향과 힙힌지 정렬을 교정해 주셨다. 나도 늘 골반이 들뜨는 기분을 느끼는데 트리앙무카는 언제나 어렵다.


마치고 선생님에게 지각에 대해 죄송함과 민망함을 표현하니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지각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늦게라도 온 것을 잘했다고 하신 거다. 언제든 늦게라도 오라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는 사랑 가득한 선생님의 말에 고마움과 든든함을 느꼈다. 그래도 지각은 정말 마음이 괴롭다.








2024. 02. 27. (화) 아쉬탕가


도토리 신입생 환영회 중에 슬금 빠져나와 냉큼 수업으로 향했다. 오늘도 부랴부랴 도착하는 바람에 머리를 땋지 못했다. 남아나질 않을 내 머리카락들..


수리야로 몸을 예열하고 오늘은 척추를 바르게 자리 잡도록 도와주는 활동을 했다. 짝이 다리 들어서 쭉 당겨주는 것과 비행기 태우는 것은 예전에도 해본 활동이라 익숙하게 연습할 수 있었다. 이후에 3인 1조로 앉아 등을 C자형으로 만드는 것을 도왔다. 복부를 당겨 넣고 흉곽을 확장시켜 호흡하면서 척추가 펴지는 느낌을 인지하면셔 하는 활동이다.


내 차례에서 선생님이 옆에서 관찰한 나는 흉추의 정상 만곡인 후굴이 조금 직선으로 펴져있는 것이 보여 측만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럴 것 같다. 다운독 때도 우르드바 때도 늘 어딘가 틀어진 느낌을 가지고 정렬 맞추는 것에 헤맬 때가 있다. 비틀기 때도 오른쪽 방향을 볼 때와 왼쪽 방향을 볼 때 회전의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물론 매년 엑스레이를 찍고 있고 몇 년 전까지는 그런 소견이 없었겠지만 최근의 모습은 틀어져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틀어진 원인은 어쩐지 강하게 의심되는 게 딱 하나 있다. 잠버릇.

딱 8년 되었다. 왼쪽으로 돌아누워 잔 세월이. 임신했을 땐 태반 순환 때문에 좌측위를 주고 취했고, 이후 7년간은 나의 왼쪽 옆에 자리한 아기침대, 그리고 조금 커서는 나의 왼편 아래에 이불을 깔고 자는 유준을 항상 바라보고 잠들었다. 깰 때도 내 몸은 항상 왼편을 보고 있으니 자는 동안의 대부분의 시간을 왼편으로 돌아누운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엔 공부할 때나 글을 쓸 때, 또는 장시간 출퇴근 운전 때 고정된 자세 때문인가 했지만 하루 중 그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건 유준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돌아누워 잠을 잔 8년의 세월 동안 왼편으로 휘어진 척추가 조금씩 측만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오늘 수업하면서 문득 잠 버릇이 생각나면서 덜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 진짜 휘었겠는데? 선생님은 흉곽으로 호흡하라고 안내해 주셨다. 다운독 자세에서 중력 방향으로 척추가 가라앉는 모양이지만 흉부로 숨을 쉬면서 등이 부풀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였다.


오늘도 수련하면서 내 몸을 알아간다.

내 몸에는 나의 생활과 습관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조금씩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부담을 자주 덜어내주는 방향을 향해서 헤엄쳐 나갈 수밖에 없다. 물살의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건 조금 버겁겠지만 반대 방향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나아가는 건 견딜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흐르는 방향에만 몸을 얹을 수는 없고 모든 나날들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잠들다가도 금세 뒹굴뒹굴 돌아누워 자던데 나는 줄곧 너를 바라보느라 내 몸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아. 나는 이제 반대로 누워서 잠드는 연습을 해야겠어. 앞으로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8년을 지내고 나면 너의 나이는 더 이상 나를 보고 돌아누울 일이 없는 시기가 되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계속 왼쪽으로 눕고 싶네.


오늘 요가 다녀와서 마음이 많이 이상하다. 내 몸이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 괜히 센치해지네.


그나저나, 비행기 진짜 시원하다. 선생님이 아까 골반 밟고 위로 들어 올려주셔서 축 늘어져 공중에 널려 있었는데 약간 중독성이 있는 감각이다. 유준에게도 비행기를 해줘야겠다. 꼬마의 척추가 쫙 펴지게.








2024. 02. 28. (수) 아쉬탕가


어제 뭘 했다고 왼쪽 어깨랑 겨드랑이 아래가 뭉쳤다. 수업 전 짧게라도 측면을 늘려내는 스트레칭을 조금 했다. 무릎 꿇고 앉아서 캣앤카우도 하면서 등을 깨웠다. 측면을 늘려내니 무척 시원했다.


오늘도 척추의 정렬과 몸의 쓰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요약하면 우리 몸의 한 부분이 틀어지면 국소적인 변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몸의 정렬에 점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압박의 개념에서 생각해 볼 때 그런 측면에서는 다운독을 포함하여 머리서기 등의 역자세들은 아래로 처치고 쏠린 장기들의 압박을 덜어주게 되므로 좋은 자세가 된다고 하셨다. 끄덕끄덕.


요가를 하면서 몸을 바라보고 바르게 쓰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몸이 알게 모르게 취약하거나 부담되었던 부분들을 과격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게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수련에 집중하고 반복하면서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쓰면서 살아간다면 충분히 돌보며 사는 것이 될 수 있다.


짝과 함께 바카아사나 연습도 하고 이어서 가열차게 프라이머리 시퀀스를 흘러갔다. 정류장처럼 거치는 핸즈온 구간들에서 자세를 바르게 해보고자 나름 애쓰면서. 내가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놓치거나 힘들어하는 구간에서는 선생님의 손을 거쳐 삐딱하게 틀어진 다운독을 바로 놓고 구부러진 등이 펴지고 비틀어진 시르사가 사로 서게 되었다.


파드마 짜고 요가무드라. 갑갑한 가운데 깊은 호흡을 쉬도록 노력하며 내 숨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계속 콧물 때문에 말썽이었는데 오늘은 훌쩍임 없이 머리가 쏠린 자세에서도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었다. 숨길을 들여다보았다. 편안한 숨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고 보면 감사할 일 투성인데 말이야.


3월이 온다.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준비.

꼭 봄에 한 번씩 몸살이 나던데 이번엔 부디 건강하게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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