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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May 29. 2024

#요가일기, 2024년 3월의 기록(vol.1)



언더독요가 2024년 3월 출석부







2024. 03. 04. (월) 아쉬탕가



유준과 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마음이 꽤 비장했고 머릿속은 분주하고 몸은 계속 허기졌다. 퇴근 후 부리나케 달려가 유준과 재회하여 서둘러 저녁을 차렸고 부지런히 정돈한 뒤 어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요가원으로 향했다. 어제와 오늘은 완전히 다른 날이었지만 요가원에 도착한 나는 어제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3층에 올라가니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H가 맞이한다. 여행의 여정을 더 듣고 싶었지만 수업 시간이 곧 다가왔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여러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난데없이 허리가 아팠다. 살면서 허리에 문제가 찾아온 적이 거의 없었는데 관절 어딘가가 어긋난 기분과 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때마침 오늘은 짝과 함께 척추를 늘려주는 움직임을 연습했고(나의 짝은 정겨운 J), 다운독에서는 척추를 늘어뜨리고 등뼈들이 자기 자리를 좀 찾아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호흡도 크게 들이마셨다.


아르다 웃타나에서 점프백으로 앞뒤를 강하게 수축하는 사이클을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는 허리 불편함이 꽤 수그러들었다. 이러면 나의 요가에 대한 치유적 관점이 종교적인 수준에 이르는 데에 다시 힘이 실어지는 게 아니냐며, 이젠 도저히 못 말리게 생긴 것 아니냐며 J와 이 부분을 가지고 깔깔거렸다.


차크라사나 하다가 오늘도 머리가 쥐어 뜯겼다. 손바닥 아래에 머리카락 일부가 늘 눌러져 머리카락이 뜯기거나 뜯기지 않으려고 손바닥을 엉성하게 누르면서 공간을 만들어 내면 차크라가 원활하지 않았다. 결국엔 머리를 잘라야 하나 하는 잡생각도 수련 중에 잠시 삽입되었다가 튀어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직도 시끌시끌한 단톡방들.

확인할 공지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답해야 할 안부 인사도 많고 귀찮은 질문도 많다. 수많은 글자들에게 글자들을 전달하면서 무척 공허하다는 기분이 든다. 글자들로 꽉 찬 작은 화면 속에는 수십 명의 얼굴이, 시간이,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좀 걷고 싶었지만 결국 자전거를 타고 슝- 집에 와있는 지금의 나와 같은 것이다. 그냥 좀 하루가 더 길었으면 한다.


글자 뒤에 가려진 이들아, 아무튼 오늘도 고마웠다.

오늘은 새 출발의 첫날이니까 조금 칭얼거려도 괜찮잖아.








2024. 03. 05. (화) 복원


오늘부터 화요일 3층 아쉬탕가 수업 자리에 '복원'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었다. 3층에 들어가니 스튜디오 안까지 환한 불빛이 밝혀진 체 맞이하는 것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수업에 참여한 회원들도 한 명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3층의 다른 빛깔 속으로 나도 스며들어 보았다.


복원이라는 이름의 수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떤 상상도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일부러 미션을 주었다. 아마도 순수한 흐름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다. 재미를 느끼거나 실망을 느끼거나 둘 중 어느 것도 원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안내를 따라가기. 내가 원하는 것은 그거였다.


손목에 떨어뜨려주신 아로마 오일로 나의 주변 공기를 새콤한 향으로 코팅 시켰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블렌딩된 에센셜 오일들의 자기표현 시간을 잠시 느껴보다가 한 호흡이 큼지막하게 들어오는 게 느껴져 무척 시원하고 홀가분했다. 하루 종일 움직인 거라곤 수직으로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 외에 다른 방향이 없었던 오늘의 하루. 수카아사나로 앉아 상체만 맷돌처럼 돌리는데도 이렇게 뻐근할 수가 없다.


자세에 머무는 동안에도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운 리스트가 섬망처럼 지나간다. 내가 앞으로 한 달 안에 작성해야 할 문서들의 목록이었다. 그 리스트를 생각하면 조바심이 먼저 찾아오고 빨리 해치울 생각만 앞서고 기지개 따위는 사치스러운 순간인 요즘. 문득 오늘의 수업 제목이 '복원'이라는 것을 상기하니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찾아낸 그림은 집을 짓는 모습이었다. 집을 지을 재료를 만들기 위해 몸을 늘려내고 깨운 뒤 힘을 모아내고 근육을 각성시켰다. 그 힘과 각성으로 아사나를 지어내고 다시 재료를 모으고 또 지어내고 수리했다. A4용지는 한쪽 벽면에 비켜서서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지금의 집을 짓고 고치는 활동 속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오늘 집을 잘 지어야 내일도 머물 수 있는 거란다.


수련 중간에 어디선가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큐잉을 전달할 때 속삭이면서 도움을 주시는 것 같았다. 특징이랄까 개성이랄까 어떤 이의 일부분이 수업에서 표현되는 장면이었다. 친절하고 세심한 그녀의 배려. 사람들은 이렇게 매트 위에 자신의 일부를 알게 모르게 유형의 형태로 끄집어내어 한순간을 기록한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학습된 것일 수도 있고 즉흥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마치고 선생님과 반가움을 주고받으며 스몰토크.  밝고 건강하고 정성스러운 에너지의 첫 수업. 일기를 쓰는 이 순간도 내일 출근할 생각을 떠올리니 문틈 사이로 연기가 새어 들어오듯 또 조바심이 공기를 장악한다. 그렇지만 감내해야 한다. 업무의 특성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


그저 바라는 것은 오늘 지은 내 집이 튼튼했으면 좋겠다.







2024. 03. 06. (수) 아쉬탕가


집에서 저녁의 루틴을 해결하고 우다다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요가원에 도착하니 수업 시작 2분 전이었다. 워밍업을 하는 줄 알고 수리야나마스카라 들어갈 준비를 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시작만트라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바로 프라이머리 시퀀스를 시작하는구나. 빈야사 중에 언제 셔츠를 벗는단 말인가. 수리야 AB와 스탠딩 초반까지 내내 흐름이 끊어지는 게 싫어서 그냥 웃옷을 벗지 않고 했더니 다운독 때 얼굴을 가리고 측각도 자세할 때도 펄럭거리고 너무 불편했다. 눈치게임 실패. 이제 셔츠랑 작별할 계절이 왔으니 이런 눈치게임도 필요 없게 될 테지.


요즘 자꾸 오른쪽 등이 결린다. 어딘가 찌르는 기분이 든다. 이런 똑같은 느낌을 가끔씩 느끼는데 그때마다 일 이 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병원을 가야지 결심할 때쯤이면 괜찮아진다. 혹시 후면 늑골에 금이 갔을까? 이번엔 정말로 병원을 가봐야겠다. 집중과 호흡을 모아 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뿌연 안개가 낀듯한 정신 상태가 시퀀스를 지나갈수록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몸과 정신이 묵직해지는 시기가 왔다. 물에 젖은 이불이 된 기분.


프라사리타 파도따나와 연결하여 살람바 시르사Ⅱ를 시도하던 중 어디선가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어느 회원님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어떤 장면이 펼쳐졌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갑자기 선생님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상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처음 듣는 선생님의 큰 웃음소리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웃음이 쉬이 가라앉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씩 소강되어가고 수련도 무사히 지나갔다.


사바아사나 시간, 내 옆자리의 회원님이 얕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종종 사바아사나 때 그런 소리가 들린다. 싱잉볼로 파장을 몇 차례 울려보지만 어떤 날은 쉬이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이 분뿐만 아니라 평소 사바아사나 때 그런 회원들을 보면 신기하고 어느 면에선 부럽기도 하다. 오죽 피곤하면 그럴까도 싶고,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게 복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이퍼 각성 상태의 인간은 그런 상태가 무척 궁금하다.







2024. 03. 07. (목) 아쉬탕가


블럭을 이용하여 시르사아사나Ⅱ를 연습했다. 나는 블럭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어서 다리와 엉덩이에 힘을 기르는 움직임도 연습했다. 오늘도 물에 젖은 이불이 되어 묵직하고 늘어진 몸을 간신히 이끌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하는데도 좌우로 몹시 흔들리고 기우뚱하여 넘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위기를 간신히 지나갔다. 스탠딩에서도 계속 흔들리고 휘청이면서 오늘의 빈야사를 통과했다. 발바닥 그라운딩 어디 갔니.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르사 후 선생님이 발목 잡고 올려주셔서 머리 띄우고 팔꿈치를 밀어냈다. 무 뽑기. 버겁지 않게 지나가서 내심 신기하고 뿌듯했다. 요즘엔 시르사아사나 할 때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상태를 느끼게 되어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진다. 팔과 어깨에 힘이 는 걸까.


우트플루티히까지 있는 힘껏 에너지를 채워내고 사바아사나. 선생님이 사람들의 어깨를 눌러주고 아로마 오일도 발라주었다. 어깨를 누를 때 너무 시원해서 집에 가서 유준에게 발로 좀 누르라고 시켜야겠다는 잡생각 잠시.


그리고 긴 대화. 많은 주제들이 한 줄로 연결되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급하게 마무리.







2024. 03. 08. (금) 하타



호흡명상을 10분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호흡하고 의식을 모아내고 머무르는 동안 부동의 자세에서 더 있고 싶었는데 빠져나와야 할 타이밍이 왔다.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떠 보니 어두운 조도 속에서도 눈이 부셨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던 것 같다.


테이블탑에서 소고양이 자세로 몸을 깨웠다. 고양이 자세에서 등이 무척 시원했다. 누워서 다리 후면도 늘리고 해피베이비도 취하며 골반이 시원한 순간들을 지나왔다. 엉덩이 정렬을 삐죽빼죽 맞춰서 앞뒤로 죽 뻗은 하누만도 하고 뒤로 앞으로 밀고 당기는 부장가도 하고 쭉쭉 밀어내며 라자카포타도 시도했다.


오늘도 다리 접다가 오른쪽 다리 후면에 쥐가 났다. 다리에 쥐나는 날은 괜히 버럭 화나는 마음이 찾아온다. 앞에서 열심히 몸을 풀고 늘려낸 게 다 엉터리로 한 거였나 하는 생각. 이때까지 내가 잘못하고 있었던 건가. 이런저런 화살이 내게 찾아오는 이유는 요가를 한 세월이 짧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나에게만 엄격하고 호된 나의 마음. 아무튼 급한 불은 꺼야 하니까 폈다 접었다를 두 차례 정도 하면서 다리를 진정시켰다.


수업 초반 호흡명상에서 집중력을 잘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동자세에서 모든 집중이 와장창 무너지면서 온갖 잡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 잡생각의 99%는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해야 될 일, 챙겨야 할 얼굴, 확인해 봐야 할 문제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수련 중에 무지 끼어들었다. 요즘 나의 일상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간. 직업을 요가 매트까지 데려온 오늘.


누워서 비틀기를 하는데 척추에서 두두둑 소리가 났다. 몸통이 많이 뻑뻑하다. 이 시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2024. 03. 10. (일) 빈야사



오랜만에 참여한 일요일 아침 수업. 어김없이 바글바글한 교실. 아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매트를 펼쳤다. 인사를 나눌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뵙네요라는 말로 서로 반가움을 전했다.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


빈야사를 시작하며 우르드바하스타를 하는데 기분이 무척 좋다.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었을 때 다가오는 묘한 해방감, 복부와 갈비뼈 사이가 넓어지며 늘어나는 감각이 유쾌하다. 플랭크 자세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손과 발을 하나씩 떼고 허공의 손으로 디딘 발목을 잡으면서 힘을 써야 하는 움직임도 연결해 보았는데 무척 어려웠다. 내게는 상당한 집중력과 근력이 요구되었다. 앞뒤 방향뿐만이 아니라 대각선 방향으로도 힘을 잘 써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끄덕끄덕.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서로 도와주면서 카포타아사나C를 시도하는 연습을 했다. 비라아사나로 누워 머리 방향 쪽에 선 한 사람이 발목을 잡을 수 있게 도구 역할을 해주고 다른 한 명은 수련자의 다리를 접어 발을 머리에 댈 수 있게 들어주었다. 짝들의 도움으로 후굴각을 높이고 뻗어내는 힘도 탈탈 털어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사나를 혼자 하면 난이도가 높은데 파트너들이 도구로서 역할을 해주며 도와주니 도전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어서 고통은 뒷전이고 재미가 찾아왔다. 함께 수련하는 이들의 소중함. 몸은 각자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건 아마도 같았을 것이다. 동기화.


H는 첫 번째 시도에서는 버거워하다가 두 번째 시도에서는 감을 잡은 것 같아 나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더니 처음 시도 때보다 훨씬 개선된 움직임을 보였다.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해서 꺅꺅 큰 목소리가 나와 호들갑을 떨었더니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고 구경을 다 오셨다. 나의 도전도 두 번째가 더 개선된 느낌이었다. 발바닥에 머리카락이 닿는 간지러운 감각, 기분이 좋았다.


마치고 Y와 반갑게 인사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근황을 나누었다. 갈등과 인내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그녀의 근황에 나의 보잘것없는 토닥임을 넌지시 전달했다. 3층에서 선생님과도 스몰토크. 못 본 사이에 핼쑥해진 선생님의 모습에 어디 아프냐며 걱정을 쏟아부었다. 알고 보니 빠진 게 아니라 특별한 상황이라 열심히 빼신 거였는데 나는 눈치도 없지.


눈치가 있든지 말든지 나는 그냥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야기했지만 선생님께 가닿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진심으로 그랬다. 그녀가 아름다운 건 특별히 두드러지는 생기 있고 인형 같은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세심하고 야무지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면 때문이라고 느낀다. 일요일 아침 빈야사 수업에 사람들이 가득 차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2교시 하타도 듣고 싶었지만 가사가 밀려있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현실 세계로 툴툴. 아쉬웠다.








2024. 03. 11. (월) 아쉬탕가



바로 프라이머리 시퀀스로 들어갔다. 웃타나사나 할 때 또 누군가 옆에서 밀기라도 한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그라운딩의 허술함. 요즘엔 눈도 잘 안 보인다. 언제부턴가 희미한 불빛 아래에선 눈앞이 잘 안 보였다. 현기증 같은 양상이 아니라 그림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느낌이랄까, 불빛이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조명이 불안정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벼운 야맹증 같기도 하다. 비타민A라도 좀 챙겨 먹어야 할 것 같다. 평생 비타민 챙겨 먹는 행위와는 인연이 없던 내가 과연 이번엔 먹기 시작할 것인가.


어제 망원유수지 운동모임을 다녀온 후 우측 허벅지 내측이 뭉쳤다. 파트너와 함께 축구공 패스를 주고받는 연습도 하고 골대를 향해 힘껏 공을 차면서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움직임을 했던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까치발을 딛다가 갑자기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서 운동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었다. 종주 때가 아니고선 다리에 쥐 나는 일이 없었는데 축구로 알게 모르게 다리가 피로했나 보다. 오랜만이다. 어릴 땐 쉬지 않고 몸을 써대니 밤마다 종아리에 쥐가 났었는데. 추억을 소환하는 감각. 쥐가 난 내 종아리가 귀엽다.


다섯 번의 나바아사나 때 오늘은 롤라아사나가 모두 바닥에서 떴다. 나바를 힘들게 하는 건 전부 롤라가 범인이다. 롤라아사나를 시도한 후 다시 대각선으로 다리를 들 땐 몇 배로 무겁게 느껴진다. 몸을 드는 건 종이 한 장 정도의 높이겠지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토닥토닥. 선생님이 카운트를 빨리 세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시르사를 하는 동안 한 점을 응시하던 중 아주 잠깐이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으로 주변이 희미해지면서 응시한 그 점과 나만 이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의 순간. 평온했다. 석양이 지는 해변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맨발로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편안했다.


마치고 선생님과 스몰토크. 멍멍이 이야기. 무뚝뚝한 생물체, 정말 귀엽다.








2024. 03. 12. (화) 복원



아슬아슬 도착하여 들어가니 매트 펼칠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매트 옆에 놓인 준비물을 커닝하니 볼스터와 블럭 두 개가 필요했지만 볼스터 보관 바구니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수량이 부족한 것 같아 담요를 얼른 도톰하게 접었다.


척추와 측면을 테마로 볼스터에 기대고 지지하며 옆면을 늘려내는 움직임을 천천히 이어갔다. 옆면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아주 시원한데 뉴트럴 포즈로 돌아올 때 앞으로 숙여 등의 곡선을 이용하여 후면을 더 늘려냈다. 언제나 피곤한 나의 등, 셀프 마사지 같은 순간. 승모근부터 이어지는 부분들이 쭉 당겨지며 늘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다리를 교차하여 조이고 서서 상체를 웃타나사나로 숙이면서 다리의 측면도 늘려냈다. 햄스트링 부분이 아니라 측면의 질긴 부분이 당겨지는 친숙하지 않은 감각이지만 필요한 움직임이었다. 평소에 잘 살피지 않는 다리 측면을 차분히 늘려내고 균형을 잡느라 근육도 수축하니 에너지를 꽤 필요로 했다. 비라바드라 시리즈를 엮어 험블 워리어도 하고 결박도 하고 극락조 자세까지 연결하여 다리의 힘을 열심히 동원하는 시퀀스를 지나갔다.


몸을 요모조모 쓰면서 익숙해지고 그 힘으로 조금씩 한 발을 내딛는다. 복원, 내가 만든 별명은 집 짓기. 나의 집이 견고해져 있기를. 사바아사나 하는데 바닥이 무척 따뜻했다.








2024. 03. 13. (수) 아쉬탕가



블럭 두 개를 손바닥 아래에 대고 살람바 시르사Ⅱ를 연습했다. 이어서 짝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 한쪽 다리씩 하늘로 들어 올려 스플릿으로 전굴을 하고, 이후엔 에카파다 바카아사나도 짝의 도움을 얻어 연습했다. 들어 올린 발등으로 짝의 손바닥을 누르는 힘을 이용해 몸을 들어 올리는 데에 도움을 얻고 고개를 들어 등의 힘도 동원했다. 몸을 들 때 앞면의 코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했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전신의 힘을 다 끌어와야 했다. 바들바들 떨었다.


빈야사 연결 중에 전환 자세로 시도할 땐 들고자 하는 다리를 질질 끌고 와 천천히 들어 올리니 조금이라도 띄워서 혼자 해볼 수 있었는데 짝과 함께 높이 올려보니 너무 어려웠다. 왼쪽과 오른쪽의 힘에 차이도 있고 익숙함의 차이도 있었다. 왼 다리 들 때가 익숙해서 그런지 오른쪽 다리 들 땐 꿈쩍도 않는 기분이다. 연습을 마무리하며 다리와 엉덩이의 힘을 기르고 균형을 잡는 연습도 하고 아쉬탕가 시퀀스로 들어갔다.


스탠딩을 끝내고 싯팅에서는 단다아사나 후 전굴 시리즈를 대부분 생략하고 마리치아사나CD,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를 하고 누운 자세로 들어갔다. 마리치CD는 비틀기가 몹시 힘들었다. 결박을 완성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안될 것 같았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허리를 펴내는 데에 좀 더 호흡을 집중시켰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완성에 집착하려는 마음을 자꾸 경계해야 한다. 몸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 누운 자세에서도 늘 마찬가지였다. 우바야 파당구쉬타사나도 그렇지만 특히 숩타 파당구쉬타사나는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누웠다는 착각에 당한다. 기울거나 비틀어지지 않게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들어 올린 다리가 아니가 땅에 닿은 면에 신경을 더 집중해야만 했다. 힘이 많이 쓰인다.


마치고 그랭블레 앞에서 J와 스몰토크 중이었는데 N이 집으로 향하던 길이라 마주쳐 토크에 합류했다. 우연히 마주친 것치고는 대화의 흐름이 너무 잘 연결되어 10분 정도를 더 이야기한 것 같다. 서로를 토닥였다. 요가는 우리 삶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 자체가 능력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꾸준함을 이어가기로. 각자에게 다 사정이 있겠지만 꾸준하고 싶은 사람이 꾸준함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특한 능력이라는 것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충분히 기특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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