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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존재 Nov 26. 2015

월급날

첫 월급은 1700만원에 17분할이었다

 

7년 전, 스물 다섯, 전공과 꿈과도 전혀 상관 없는 일을 시작했다. 먹고 살려고.

 

내 형편에 꿈은 무슨 꿈...


방송국 드라마 PD 최종까지 가서 자꾸만 떨어졌다. 집에 손 벌릴 처지도 아니라 많은 이들이 언론고시 스터디를 할때 논술알바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알바를 뛰었지만 서울에서 내 힘으로 나를 먹여살리기란 역부족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진로를 변경해 이력서를 넣고 합격한 곳이 생겼을 때, 내 수중에는 29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월세가 밀린지도 다섯 달을 넘기고 있었다.


한 달에 100만원을 받고 17분할을 해서 연봉 1,700만원. 회사에서 점심은 사줘서 고맙게도 한달을 잘 버텼다. 일 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부끄러운 모습으로 고향에 낙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한달을 잘 버텼다. 월급 전 날 퇴근 길, 함께 입사한 동기와 지하철까지 걸어가던 중 월급을 받으면 서로 뭘할 건지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동기가 자꾸만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내 전 재산은 700원 밖에 남지 않아 있을 때였다. 몇 번 저녁을 얻어 먹은 적이 있던 터라, 지나칠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에 가게로 먼저 들어갔다. 돈도 없으면서.


동기는 참치 김밥을 시켰다. 내가 안 먹으면 친구가 무안할까봐 나도 같은 걸로 시켰다. 동기의 김밥 수가 하나씩 줄어 들때마다 내 가슴은 미친듯이 뛰었다. 김밥을 2/3 쯤 먹었을 때인가... 갑자기 지갑이 없는 액션을 취해야 하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늘만 네가 내라고 밀어 붙일 것인가.... 갖은 고민에 뒤엉켜 있을 때,


분식점 문이 열렸다. 익숙한 중년 남성이 들어오셨다. 부장님! 회사 부장님께서 들어 오셨다. 딸에게 줄 라볶이를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보고 씩 웃으시더니 김밥 값을 함께 계산해 주셔서 뜻하지 않게 위기를 모면했다.


요즘도 25일이 가까워지면 그 때가 자주 생각난다. 내일은 25일, 서른 두 살의 나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25일 월급날을 기다린다.  능력도 없고 경험이나 배운 것도 없이, 막내라 일을 못해 혼 나고 선배가 기분이 나빠 갈궈도, 밀린 월세만 내고 그만 둔다, 학자금 대출 1학기만 갚고 이 일을 다시는 안 한다... 하다 하다 지금까지 왔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비슷한 일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고 동료나 후배들에게 때가 되면 맛있는 간식을 사줄 수 있는 여유 돈도 있다. 내일은 25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급여명세서가 미리 도착해 알린다. 서른 두 살의 나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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