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더 열정적일 수 있다
"A프로젝트는 차별점이 안 보이고 확신도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두통이 잦은 월요일이었다. 오후에 나와 함께 일 하는 후배 똘똘씨와 짬이 나서 커피 한 잔 마시던 차에 똘똘씨가 대뜸 물었다. 똘똘씨는 임원이 시킨 A프로젝트의 자료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나도 같은 임원이 시킨 A프로젝트의 다른 부분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다른 부서의 상급자에게 물어보아도 이 프로젝트는 차별점도 없고 시장규모도 작아서 치열한 파이 나눠 먹기 경쟁이 될 것 같다는 반응이었고 자기 생각도 마찬가지란다. 사실 그 일은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렇다. 난 왜 해야 할까? 왜 하고 있는 걸까?
똘똘씨에게 나의 입장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도 궁금했다. 왜? 그냥 월급을 주고 윗 사람이 시키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해치우고 있던 것일까? 아니다. 한 달 전 쯤, 그 프로젝트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임원과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A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고, 불확실성 속에서 나만의 의견만 맞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래서, 이왕지사 해야 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예전에는 아니다 싶은 일들은 대충해서 올리라고 후배들한테 피드백을 주곤 했다. 그랬던 후배들은 나보다 더 일찍 또는 매우 빨리 조직을 떠났다. 배울 게 없다거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풀죽은 인사를 들으며 많은 똘똘한 후배들을 떠나 보내고 뒤늦게 후회하고 깨달았다. 설령 거짓일지언정 비전을 줘야 한다는 것을. 그랬더라면 그 일이 실패하더라도 끝을 보고 싶어했겠고 과정 상 스스로 집중하며 배우는 것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일로 우리 회사가 잘 될지는 사실 잘 몰라. 하지만 A는 분야에 가장 핫한 솔루션이고 당분간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학습해 두면 앞으로 커리어 상 좋은 무기가 될 거라는 점은 확신해.
그런 약간의 뻥을 보탠 말마디를 하면서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생각했다. 결론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였다. 항상 좋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 함께 하는 선량한 사람들과 좀 더 오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일이나 내 커리어의 목표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거부감 보다도.
A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이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의 9할은 내가 진짜 치를 떨면서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가족과 가까운 지인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해왔던 일들도 정말 안 될 것 같았지만 회사가 원하는 것, 나보다 더 회사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사람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이뤄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사실 의외로 좋은 성과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견딜만하게 살아가고도 있다.
또,
회사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을 열심히 도와줘 보자구.
사람이 좋으면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멋지게 또 해 볼 기회가 생기지.
그렇지만, 안 될 거 같아서 대충하면 과정 상에도 배울 게 없고
실패한 뒤에 또 다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 할 기회가 사라져.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러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똘똘씨에게 했던 말은, 그 누구도 아닌 대충 시간을 떼워온 내 지나온 직장생활에 대한 후회와 반성들이다. 후배들의 따끔한 질문들은 자주 나의 지나온 시간을, 지나가는 시간을,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훑어 보게 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을 위한 하얀 거짓말은 아직 낯간지러워 못하지만, 앞으로도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사람을 위한 하얀 거짓말을 조금씩 배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