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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람별빛 Oct 15. 2020

패키지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패키지, 웹, 브랜드, VMD를 모두 경험한 디자이너의 직업 탐구 시리즈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패키지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생소한 분야였다. 나는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음 해도 불구하고 오프셋 인쇄와 디지털 인쇄의 차이점을 정확히 몰랐고( 어느 교수님도 이에 관해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 팬톤 컬러칩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패키지 디자인 수업은 대부분 내가 용기 모양에 맞게 이쁜 일러스트를 그리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일러스트 실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나는 재질의 이해와 현장(제조공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 디자인을 제작하려면 현실적인 타협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괴리감을 줄일 수 있도록 내가 경험했던 디자인 직무들에 대한 내용들을 차례대로 적어나가 보고자 한다.


기획

패키지 디자인이 시작되려면 먼저 제품에 대한 기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술이라면 어떤 술을 어떤 타깃 소비자들에게 어느 유통채널에 어느 가격으로 공급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만약 고가의 백화점 납품 제품이라면 제품 용기와 패키지에 비용을 많이 써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려줘야 타깃 소비자들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고, 저가의 마트용 제품이라면 패키지와 용기에 비용을 덜 쓰되 일러스트나 타이포그래피를 크게 사용해 진열대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통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연구원들과 기획팀이 주로 리딩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후기 기획단계에서 디자이너들이 함께 참여하여 함께 컨셉을 잡는 경우가 많다.


https://pixabay.com/photos/startup-meeting-brainstorming-594090/


용기 디자인

나도 실무를 시작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용기의 세계는 넓고 무궁무진하다. 금속, 유리, 플라스틱, 천, 종이 나무, 돌 등등 원재료 종류도 다양하고, 한 용기에 들어가는 부속 재료도 어마어마하며 (내부/외부 케이스, 속/외부 커버 등등), 도장 / 코팅 방식 또한 무궁무진하다. 보통 용기 디자인은 기획에서 컨셉이 어느 정도 잡힌 이후에 무드 보드를 이용해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성을 잡는다. 보통 무드 보드에서는 제품 모양 그 자체보다는 예를 들어 어두운 밤 속 노란 보름달의 곡선이라던가 아니면 자줏빛 석양에 비치는 부드럽고 하얀 린넨의 흩날림 같은 추상적인 사진으로 채워넣는 경우가 많다. 대략적인 느낌을 보여주기 위한 문서라고 보는 게 정확하고 이를 통해 기획팀과 디자인팀 간의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다.


무드 보드가 잡히고 나면 러프 스케치를 시작하기 시작하며 이때는 온전히 디자이너들의 고뇌의 싸움이다. 러프 스케치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버전의 용기들을 그려보고 그중에 가장 괜찮은 몇 가지 디자인들을 디벨롭해 시안으로 제작한다. 시안은 보통 기존에 있는 용기를 활용할 경우 해당 업체에, 새로운 디자인일 경우 3D 모델링 회사에 의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때 시안의 도면을 제작해보면서 컴퓨터 속 화면과 달리 실제로 각 부품들이 잘 조립되어 제품의 모형을 잘 갖출 수 있는지 에 대한 첫 확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3D 모델링 제품들은 색상이 없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인쇄 업체나 도장업체에 의뢰를 해서 디자이너가 원하는 색상을 도색해보고, 원하는 글자들을 인쇄할 수 있는 실크스크린 인쇄를 진행하게 된다.


https://pixabay.com/photos/silk-screen-silk-screening-art-1246169/


이렇게 해서 시안의 실제 모형을 제작해 회사 사람들에게 공유를 한 뒤, 선택된 시안을 바탕으로 용기 제작에 들어간다. 용기 제작을 진행하는 동안 보통 선대 업체나 패키지 업체에게 용기에 맞는 패키지와 선대를 의뢰하게 된다. 여기서 선대란 우리가 과자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스틱으로 된 과자 보호판과 같은 것이다. 이런 선대들은 보통 깨지기 쉬운 용기들이나 제품에 한해 패키지에 추가 부속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선대를 제작할 수도 있고, 고급스러운 벨벳, 나무 또는 스펀지같은 다양한 재료로 제작할 수 있다. 모든 제품 패키지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예시로 든 술의 경우, 고급 라인에 한해 선대가 들어갈 수도 있다.


선대와 패키지를 의뢰하는 동안 용기는 실제 생산을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용기 자체에 대한 샘플은 공장에서 다양한 색상 오차 별로 약 3가지에서 10가지 사이로 전달 주면 디자이너가 각 샘플들 중 가장 근접한 색상의 샘플을 골라 색상을 맞추는 작업이 가장 처음 이루어진다. 그다음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용기에 추가로 들어갈 색상이나 코팅 및 글자 인쇄인데,  보통 공장에 가서 직접 가생산을 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내가 만든 샘플을 주더라도 실제 생산시에는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색상 오차를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여 최대한 내가 만든 샘플과 동일하게 생산품을 만들고 오는 것이 디자이너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이다.


이렇게 최종 샘플이 만들어지고 나면 회사에 다시 한번 공유를 한 뒤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실제로 용기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패키지 디자인

용기 디자인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기 시작하면 포장재에 대한 디자인도 시작하게 되는데 보통 포장재 디자인은 종이나 천 같은 인쇄가 쉬운 소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인쇄업체에 샘플 인쇄를 많이 해보는 편이다. 아무래도 컴퓨터 화면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인쇄했을 때 느껴지는 색상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때 소재와 실제 인쇄했을 때 색상에 대한 감을 많이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흰 종이도 청백색, 황백색, 아이보리색 등등 백색 종이도 색상 차이가 꽤 많이 나며, 무광이냐 유광이냐에 따라 색상 느낌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유로 인해 패키지 디자인을 하는 회사들은 컬러감이 예민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좌측 오프셋 인쇄기, 우측 디지털 인쇄기


또한 오프셋 인쇄를 하는지 디지털 인쇄를 하지에 따라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 범위도 많이 바뀌고 전달해야 하는 디자인 파일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보통 디지털 인쇄는 따로 색상별로 벡터 값을 따줄 필요가 없지만 오프셋 인쇄의 경우 각 색상 도수별로 벡터 값을 꼭 따줘야 인쇄를 진행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보통 인쇄는 CMYK로 이루어져 있는데 디지털 인쇄의 경우 망점 방식으로 프린터기가 한 번에 CMYK값을 인쇄하지만, 오프셋 인쇄의 경우 C에 해당하는 실크스크린에 C컬러를 넣고 C색상을 인쇄한 뒤 MY과 K도 각각 동일한 방법으로 위에 겹쳐서 인쇄를 해주면 완성된 인쇄물이 나오는 방식이다.


오프셋의 장점은 꼭 CMYK로 진행할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색들로 인쇄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때 팬톤 컬러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팬톤 컬러뿐만 아니라 특수한 색상인 금색이나 은색, 펄 엠보싱 등 다양한 인쇄도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디지털로 인쇄하는 패키지들은 대부분 금박과 같은 특수 인쇄가 없고 수량이 많지 않을 때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오프셋으로 인쇄하는 패키지들은 특수인쇄가 있거나 특수인쇄가 없더라도 수량이 많은 경우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오프셋 인쇄는 초기 세팅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초도량이 일정 이상 나와줘야 단가가 적정 수준으로 떨어지기 대문이다.


종이 패키지의 경우 위의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그 외의 특수 패키지의 경우 대부분 수작업을 요하기 때문에 단가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또한 종이 패키지를 진행하더라도 패키지 접이 방식이 복잡해 기계가 진행할 수 없는 경우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언제나 현장과의 협의를 통해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무드 보드 - 러프 스케치 - 시안 제작 - 생산전 공장 가제품 제작  - 생산

크게 패키지 디자인을 요약해 보자면 위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한국이나 외국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패키지 디자인 프로세스가 진행되며 용어만 바뀔 뿐 생산 방식도 아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본원리만 익혀둔다면 패키지 디자인은 어느 업계, 어느 나라에서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생각보다 학교에서 이 내용을 생략한 체 디자인 자체에만 몰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필자도 디자인 작업만 무수히 진행했을 뿐 실제 프로세스를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이 글이 패키지 디자인 직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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