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요즘은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 심심치 않게 BX(Brand experience) 디자이너 공고를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주로 디자인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주를 맞기다 보면 각기 다른 디자인들이 탄생하기 마련이고 이는 결국 정체성이 없는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지속적인 관리감독을 통해 브랜드가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 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요새는 관리감독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디자인하는 BX디자이너라는 직무도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디자인이 중요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제품이 담고 있는 브랜드의 가치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브랜드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필자가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첫걸음을 떼게 되었던 회사는 아주 작은 회사였는데, 정부 사업 지원을 받아 한국의 무형문화재 공예장들에게 브랜딩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통공예는 낡고 지루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대부분의 무형문화재 분들도 전통 공예기술 계승 및 보존에 중점을 많이 두기 때문에 브랜딩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의 역할은 무형문화재 분들이 가진 장점과 특성을 살려 그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잡고, 이 BI를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을 (BX) 디자인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가볍게는 로고, 브랜드 컬러 폰트 같은 BI에서 BX인 전시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브로슈어, 웹사이트, 명함, 매장 동선 디자인 등 고객 여정에서 고객과 접점이 되는 모든 터치포인트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디자인하는 역할이 바로 내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순하게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개선점을 찾고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마케터, MD, 공예가들과의 소통이었다.
디자인의 기획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성을 실감했고, 마케팅 언어를 직접 배워보고 상품기획 과정을 배우면서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여러 연구논문과 보고서를 참고하며 주 사용자층의 니즈, 선호하는 디자인, 매대에서의 주목성 여부 등을 파악해 이를 토대로 디자인인 콘셉트를 정했고, 근거에 입각한 기획의도를 설명함으로써 내 디자인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마케터, MD, 백화점 유통관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무형문화재 장인분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할까?
사실 브랜드 디자이너는 많이 알수록 좋다고 말하고 싶다. 브랜드 디자인은 광고, 사진, 영상, 전시, 공간, 제품, 웹사이트, 앱, 매장 등등 회사가 담당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적용됨으로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각 분야별로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를 소비하는 고객들을 이해하고 시장 상황을 아는 것도 중요한데, 브랜드 파워의 원천은 해당 브랜드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물론 기획자들과 마케터들이 있기에 모든 것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디자이너도 마케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좀 더 타당성이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브랜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확립되어야 유관 디자인 부서들이 일관된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브랜드 디자인은 모든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디자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초가 단단하려면 그만큼 포괄해야 하는 내용도 많고, 제한하고 허용하는 범위에 대해서도 명확히 공지를 해야 디자이너들이 바뀌더라도 브랜드가 일관된 톤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브랜드 디자인 가이드라인 문서들은 기본적으로 100장을 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브랜드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약간씩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브랜드 디자이너가 브랜드의 일관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기본업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