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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람별빛 Feb 05. 2021

이민 정착을 위해 필요한 3요소

직접 현지에서 부딪히며 깨달은 이민 정착을 위한 세가지 필수요소

남편 지인들 중에 캐나다 이민생활이 힘들어 이혼하고 한국으로 떠난 상대 배우자들이 몇몇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이 나와 결혼하기 전에 가장 먼저 심사숙고했던 부분은 바로 나의 "캐나다 정착 가능성"이었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야기다 보니 남편도 이제 막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나와 결혼하는 것을 고심했고, 나 역시도 캐나다에서 앞으로 남은 삶을 지낼 확신이 서지 않아 서로 이 문제로 대화를 참 많이 했었다. 



안정감

여러 번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타지에서 정착하기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첫 번째는 "안정감"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잘리면 바로 캐나다를 떠나야 하는 닫힌 비자(Closed working permit) 소지자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했다. 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언제든지 내가 거주하는 곳을 떠날 수 있다는 불안함은 나의 삶에 있어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내가 느끼기에 부당하거나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 어느 정도는 상사와 원만한 협의를 통해 업무강도를 줄이거나 이직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회사에 사표를 쓰는 순간 캐나다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협의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시키는 일은 뭐든지 설령 그게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도 예스를 외치게 되었고,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전전긍긍하며 잘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었다. 이렇게 외노자로서 안정적인 기반 없이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은 많은 부분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편을 만나고 비자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다니는 회사 이외에 다른 대안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역기반이 아예 없는 외국인이다 보니 다른 비슷하거나 나은 직장으로 쉽게 이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캐나다에 계속 머무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잘릴까 봐 항상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었지만, 호기롭게 떠난 지 1년 만에 한국을 돌아가기엔 나 스스로가 끊기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또 내 결정을 응원해줬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던 점은 캐나다에서 일을 한 경력이 18개월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헤드헌터들로부터 면접 제안을 받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는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한 직장에 매여있던 시절을 벗어나 점차 새로운 대안들을 찾기 시작하며 사회적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커리어

또 캐나다 지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지사는 본사에서 만든 여러 요소들을 현지에 맞게 적용을 시키는 곳이지,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고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나의 역할이 한정된다는 것이었다. 보통 디자이너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그를 통해 성과를 낼 때 그 값이 매겨지기 마련인데, 이미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을 현지 상황에 맞게 간단한 수정을 반복하는 작업이 거의 대부분이다 보니 회사에 내가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자존감도 덩달아 내려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요소는 "커리어"였다. 회사에서 내가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새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회사를 들어가야 했고, 그런 회사들은 대부분 로컬 캐네디언 회사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직을 하려니 로컬 회사들이 보기에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름 모를 아시안 회사에 불과했기에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수였다. 남편도 내가 면접에 떨어질 때마다 우울해지는 게 보기 힘들었는지 그때마다 지금 직장도 나쁘지 않으니 그냥 쭉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커리어"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헤드헌터들이 좋은 포지션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보니 한국과 캐나다 간의 커리어적 괴리감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한국에서 가졌던 좋은 경력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그게 안된다면 한발 물러나서 지금의 정체된 상황과 타협하고 캐나다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 여부가 점차 나에게 가장 큰 질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약 1년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도 끝에 다행히 내가 원하는 포지션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다시 커리어를 잘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이직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도 정말 캐나다를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내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세 번째 요소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만나면서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생기긴 했지만, 가족 이외의 공간에서는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갓 캐나다 생활을 시작한 이민자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인 중의 대부분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또는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우정을 쌓아온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들의 태두리 밖에 나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민자였다 보니 한인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두 가지 정도밖에 없었는데, 매주 일요일 한인 교회의 청년부에 나가 사람들과 순모임을 하는 것과, 온라인 캐나다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한인 모임 글을 보고 모임 장소에 모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신앙심이 크지 않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난다는 이유 만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죄송스럽고 또 힘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나처럼 새로 오는 사람들도, 이민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보니 짧은 시간에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여럿 떠나면서 마음이 많이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더라도 연락을 지속하자고 했지만, 사실 장거리 연애도 헤어지는 커플이 훨씬 많은 것처럼 장거리 친구도 관계가 쉽게 서먹해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바랬던 친구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토요일 아침에 브런치를 함께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지, 시차를 고려하면서 1년 중 서너 번 정도 보이스톡을 할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나다 이민생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또는 이미 정착을 한 사람들이 아니면 마음을 잘 주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하던 중 지역 내 한인 디자이너 모임을 발견하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정모에 참여하게 되었다. 같은 디자이너다 보니 서로 공감대도 잘 형성되었고 각자의 직장에서 얻은 유익한 정보들에 대한 공유도 많이 오고 갔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구애의 정글로 변질되기 쉬운 반면, 같은 직업군으로 모인 모임은 대부분 서로 간에 이성적인 호감보다는 그냥 인간으로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지금도 이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며 서로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서로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민 5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이 3가지 요소들이 완전히 충족된 것은 아니다 보니, 나의 이민생활은 완성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요소는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것과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가까이서 마주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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