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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둘엄마 Oct 14. 2020

#0. 큰 아이에 대해 쓴다

2010년생. 남자아이. 태어난 직후부터 유독 입이 짧아 나를 숱한 멘붕에 빠지게 한 녀석.


아빠를 닮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절대로 살이 찌지 않는 체질.

엄마를 닮아 고지식하고 예민하며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5개월 무렵, 허리에 힘이 제법 생겼는데도 혼자 앉혀 놓으면 무섭다고 울었다.

돌이 지나고, 내 보기엔 분명히 걸을 수 있었음에도 녀석은 쉽사리 걸으려 하지 않았다.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높은 곳에 함부로 올라가거나 하는 등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키우면서 점점 알게 됐다.


녀석은 본인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뭔가를 실행하기 전에 그걸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반복하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때만 행동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견딜 수 없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이루어 내기 위해 몇 번이고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한다는 것을.


어린이집에서 블록을 쌓아 놓았는데, 친구가 부주의로 그걸 무너뜨린다던지,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는데,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 계속 넘어진다던지,

받아쓰기 연습을 하느라 집에서 시험을 보는데, 답이 틀려 몇 번이고 연습을 해야만 한다던지,


짧은 인생의 고비마다, 녀석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양 분노하고 절망하며 절규했다.

그럴 때 마다 나와 남편도 덩달아 화를 냈다가, 타일렀다가,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다소간의 크고 작은 소동을 겪어가며 살아왔다.

녀석은 제법 친한 친구도 여럿 생기고, 공부보다 노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개구쟁이 초딩이 되었다.

그냥 좀 유별나고 까탈스러운, 그런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올 초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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