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열차를 탄 듯 폭주가 이어진 나날이었다. 월화수 사흘간 공적 사적, 혹은 복합적 술자리가 연일 있었으며. 그 전 2주 간 부암동 공간 ‘삼층서가’를 찾아주신 여러 분들과 적잖게 모임을 가진 관계로 몸이 둔해지고, 숙취도 켜켜이 피로로 쌓였다. 몸의 독소와 감정의 찌꺼기를 털고자, 마냥 걷고 싶었다. 목금토 연일 걸을 마음에, 놀러 오겠다는 두 분께 나답지 않게 거절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올레를 걸으려 제주행 티켓을 알아보다 ‘여기’ 남기로 한다. 별 것 아닌 소시민이지만, 토요일엔 꼭 여의도 언저리에 있고 싶으니.
목요일. 부암동에서 여의도까지, 종일 걸었다. 국회의사당을 목적지로 삼은 것도 아닌데 정확하게 국회의사당까지 걸었고, 집회 시간에 맞춰 걸은 것도 아닌데 사전 행사가 한참인 다섯 시 10분에 도착했다. 구국의 의지로 걸었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걷다보니 여기고 걷고 나니 얼추 그 시간이었을 뿐이다. 걸음으로써 독소를 좀 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부였을 뿐.
홍지문을 출발점 삼아 홍제천 따라 한강까지 걷는 게 처음의 목표였다. 가다가 발이 닿으면 여의도나 가볼까, 라는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다. 함바집에서 든든히 밥을 먹고 길을 시작했다. 해독의 길을 응원이라도 해주는 듯, 백반 차림에 북엇국을 내주셨다. 후루룩, 밥은 남기고 국은 더 청해 마셨다. 걷기도 전에 해독 시작.
11시 쯤 길을 시작했다. 잠깐씩 앉아 가는 거 외엔 한강까지 쉼 없이 가는 게 목표였으나, 6키로 쯤 걷고 한강이 2.5키로 남았을 무렵 골반에 통증이 느껴졌다. 마음의 의지보다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일 나이다. 즐겨 가던 카페에서 한 시간여 쉬었다 간다. 이후 쉽게 난지한강공원에 도착했고, 시작한 지 네 시간 반 쯤 됐을 무렵 망원한강공원에 도착했다. 국회의사당이 시야에 잡히니 욱! 뱃고래에 주먹이 쥐어진다. 양화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긴 처음이다. 국회의사당이 더욱 선명해지니, 그제야 ‘저기가 내 갈 곳이구나’,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는 작가님과 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도 했다. 다리 위 카페에서 쉬면서 노을이나 보려던 생각을 접고 걸음에 힘을 주고, 주먹도 꽉 쥐어본다.
다섯 시 10분 국회의사당역 도착. 정확한 시간 약속도 안했는데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커피에 베이글을 욱여넣고 시위대 사이에 앉았다. 집회에 초 집중했다. “체력이 허락될 때까지만 있다 갈게요.”‘라 동행에게 말했으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저절로 기운이 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분노에 집중했다고 해야 할까. 국힘당 당사까지 힘차게 걸었고 목청도 점점 커졌다.
여의도까지 26000보, 집에 돌아오니 3만보를 걸었다. 다섯 시간쯤 걸은 듯하고, 23.5㎞를 걸었으니 긴 올레 코스 하나 완주한 셈이다. 몸의 독소도, 감정의 찌꺼기도 제법 빠져 나갔다. 나를 다그치고, 나를 안아주려 한 달간 걸었던 제주의 나날을 떠올렸다. 목요일의 걸음은 그 한 달의 축소판이다. 시작할 때와 다르지도 않지만 똑같지도 않은 내가 되어 돌아왔다. 기진한 자리에 새 힘이 났다. 조금 맑아졌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며, 오늘은 좋은 꿈을 꾸거나 아예 꿈 없는 밤이겠구나, 생각했다. 독을 덜어내고 왔으니까.
금요일, 토요일도 똑같이 걸으려 했지만, 몸이 허락지 않는다. 다리 아픈 건 둘째고, 필요 이상 무겁게 싸들고 나간 탓에 어깨, 허리, 등뼈가 고루 아프다. 어제는 길로 해독했으니, 오늘은 글 해독이다. 오랜만에 노무현시민센터로 향했다. 연 초에 토지를 읽기 시작한 곳이다. 다른 책을 중간 중간 읽기도 했지만, 공부와 일, 술에 끌려 다니느라 너무 오래 끌었다. 목요일엔 종일 걸었고, 금요일엔 종일 읽었다. ‘종일’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은 다섯 시간 쯤 걸었고, 묘하게도 딱 다섯 시간을 읽어 마지막 편인 <토지 20>을 완독했다.
하필 이걸, 오늘 다 읽다니.
탄핵 전일의 술렁임을 잠시 잊고 있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뜨거워진다.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토지 20 / pg 416)
그렇게 지켜온 나라.
정치를 잘 모른다. 감성만 널뛰지 특별한 이념이나 의식도 없다. 특히나 윤가가 대통령이 된 후론 아예 눈과 귀를 막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기에 그저 그들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볼 뿐이다. '정알못'이지만 옳고 그름은 조금 분별한다. 양심의 소리엔 귀 기울인다. 촛불 때도, 지금도 그저 그에 따를 뿐. 다섯 시간을 걸으며 지켜본 서울은 고왔다. 서울이, 나라가, 일상이 망가질 뻔했다는(이미 제법 망가졌지만) 아찔함에 화가 났다. 그 덕에 국회의사당까지 걸을 수 있었다.
목요일 저녁, 딸아들에게 26000보 걸어 여의도에 왔다고 말하니, 아이들은 감기는 안 걸렸느냐, 왜 그리 무리하냐며 걱정 한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 지켜주러 왔다고 폼 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해독 트레킹이었을 뿐이니까. (그런 마음도 있지 왜 없겠어) 연단의 연사들 말에 대목대목 울컥할 때엔, 역시나 눈감고 귀 닫으면 안 되는 거였다는 반성도 했다.
걸으며, 읽으며 독소를 적당히 빼냈다. 덜어낸 숙취는 물론 저녁 나절, 하루는 맥주로 하루는 막걸리로 다시 채우기도 했지만. 길 하나와 글 하나를 완주했다는 뿌듯함에 토요일 오전 지금, 생각보다 맑다. 오늘도 목요일 같은 걸음은 욕심내지 않는다. 대신 벗들과 숙대입구역에서 만나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가볍게 걷기로 했다. 오늘도 또 하나의 해독과 또 하나의 완주가 있을 예정. 나라에 해로운 독을 빼내고, 탄핵을 완주한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겠지만, 민주주의 완주를 일굴 만한 작은 완주. 사흘간의 해독과 사흘간의 완주는 올 한 해 중 몇 번 없는 뿌듯함 중 하나가 아닐까. 또 뭐가 있더라. 딱히…….
저녁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세 번째 해독과 완주의 기쁨을 원껏 누려야지. 우리 모두 애썼다. 나도 애썼다. 다시금 비둔해지고 복잡해질 땐, 고민 없이 걷고 읽어야겠다. 길과 글은 해독의 묘약. 돈도 안 든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