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더 충만할 수 없는 술자리에서, 1차에서 접자고 말해보긴 처음이다. 재미나 죽겠는데도 이따금 마음 쓰이는 일이 있다. 물론 2차는 이어졌다. 웃겨 죽겠어서 한동안 까먹는다. 자리가 끝난 후, 긴 여행의 여독이 안 풀려 기력도 달리지만, 그보다 마음이 바빠 노래방 가자고도 안한다. 열 시도 안됐는데 쪼로록 달려가 택시를 잡는다. ‘저인간이 왜 3차 가잔 말을 안 할까’ 생각하고도 남을 몇몇 일행의 물음표가 뒤통수에 콕콕 꽂힌다. 만 이천 원이나 주고 택시 탈 이유가 없는 데도 귀가 시간 정해진 여대생처럼 걸음을 서둘고, 계단을 총총총 (아니, 쿵쿵쿵) 오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코맹맹이 소리를 한다.
“부기야, 잘이쪄쩌~!? 할미 와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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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무렵, 딸은 엄마 잃은 아기 냥이가 시름시름 앓는 것을 보곤 어쩌지 못해 집에 데려왔다. 냥이 집사가 되고픈 마음은 오래 되었으나, 경제력에 근거한 현실적인 판단으로 내내 미루고 있던 딸이었다. 형편이 여전한 줄은 알지만 반대하진 않았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거움이 딸의 어깨에 드리우는 것 같아 걱정스런 맘도 없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오래 살라고 딸은 ‘부기’라는 깜찍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손바닥만 하던 게 무럭무럭 자라 팔다리도 늘씬하고 지 몸을 휘감을 만큼 길쭉한 꼬리를 가진 늠름한 청년? 냥이가 되었다. 몸무게 3.3㎏.
딸은 그사이 엄마가 되었다. 예방접종을 하러 다니고, 밥을 가려 먹이고, 잔소리가 늘었고, 자기 물건보다 지새끼 장난감을 더 많이 산다. 아픈 기색이라도 있으면 전전긍긍, 마침 건물 일층에 동물병원이 있다는 사실에 (이 집의 입지 조건에 문제가 많음에도) 주거 환경 최고라며 좋아한다. 최근 들어 할미가 버릇 망쳐 놓을까봐 자주 주의를 준다. 간식을 들고 “앉어!” 하면 앉는다고 부기의 영재 적 모먼트를 자랑한다. 생전 뭐 부탁하는 일이 잘 없는데, 집을 비워야 하는 날엔 밤에 부기 화장실만 한 번 좀 비워줄 수 있냐고 청을 한다. 조금만 같이 놀아주면 고맙겠다고 덧붙인다. 뭐 선물이라도 사다 줄 일이 있어 물으면 딱히 필요한 게 없다며, 결국은 뭐가 됐든 부기 것을 사가게끔 만든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그사이 딸은 새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야근이 너무 잦은 회사. 부기 어미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다. 불 꺼진 방에서 자정이 넘도록 오매불망 엄마 오길 기다리는 자식을 생각하며 맘 아프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나는 또 그런 딸이 애달프다. 체력이 그리 좋지도 않은 애가(실은 어른이지만) 밤늦도록 일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텐데, 마음까지 쓰리니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도 고단할까. 부암동에서 술 한 잔 하며 이 일 저 일(잡일) 하다 잠드는 밤이 너무 좋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딸의 집에 딸보다 먼저 간다. “부기야아~” 부르며 문을 연다. 오자마자 부기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내면 야근 중인 딸은 글자로 운다.
“귀여워어~ ㅠㅠㅠㅠㅠ~”
지난 수요일엔 딸의 야근이 미리 예정돼 있었지만, 나 역시 (너무 재미있을게 뻔하다는 이유로) 중요한 술자리가 약속돼 있었다. 2차나 3차에 노래방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에(술 마시면 끝을 보는 양아치 엄마ㅠ) 엄마 많이 늦을 거라 부암동에서 잔다고 선포도 했다. 술 마시다 딸에게 톡을 하니 12시는 넘어야 집에 갈 것 같단다. 아이고, 우리 부기. 아고고, 우리 딸. 짠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열시 겨우 넘은 이른(?) 시간에 택시를 타고 조기(?) 귀가를 하게 되었다는 말씀. 딸은 12시에서 2시, 4시 그러다 결국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핼미 아니었으면 부기도 딸냄도 속이 새카매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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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자식이 사랑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법은 조금 아는 것도 같다. 자식 사랑도 남만큼 후하지 않은 것 같아 자주 뜨끔 한다. 자식처럼 고양이를 사랑하는 내 자식의 갸륵한 마음만큼은 넉넉하게 사랑해 주고 싶다. 냥이로 인해 주머니가 더 가벼워지고, 냥이 때문에 여행도 맘껏 못 다니는 딸이 자못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미 한 생명을 마주했으니, 그리고 선택했으니 이제는 무한 책임일 밖에. 생명을 보듬는 일은 무겁지만, 여린 것이 단단해지는 일을 지켜보는 과정은 무게 못지않은 환희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나도 두 번쯤 해봐서 알고는 있다. 그러니 그저, 응원할 밖에.
오늘 딸은 얼마 다니지 않은 회사를 퇴사했다. 부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합리하기 이를 데 없고, 하루 저녁도 자기 마음대로 약속을 잡을 수 없는 회사, 야근 수당도 당연히 없는 회사(작은 디자인 회사들이 대개 이렇다고 한다). 왜 이리 조급히 결정하냐고 닦달하지 않았다. 잘 했다고 했다. 앞으로는 어쩔 거냐고 채근하지도 않았다. 뭘 해도 잘 할 거라고 했다. 현실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의 미래에 야무지게 대비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이러니 딱, ‘삼촌 같은 엄마 소리’를 듣는 거지. 잘 했어, 잘 했어, 술이나 먹자.
그럼에도 나는 한파에 얼어붙은 세탁기를 다섯 시간 끌어안고 녹여 낸 딸의 끈기와 투지를 믿는다. 공간 하나를 밑그림부터 마무리까지 오롯이 제 힘으로 만들어 내는 감각과 능력, 일머리를 존중한다. 그러니 그저, 삼촌처럼 온전히 믿어만 줘도 되지 않을까.
잘 시간이라며 부기를 데리고 들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살핀다. 철없는 엄마 탓에(혹은 덕에)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던 아이. 심리적으로는 이미 독립한 지 오래라 기대는 법이 없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하고 싶은 열망이 오죽 할까. 프리랜서로 일하다 정직원으로 채용되며 적잖이 기뻤을 것이다. 오늘, 너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기를. 부기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생명이 발산하는 온기가 함께 할 테니.
돌이켜 보면, 마땅한 벌이도 없이 고양이를 키우겠다 할 때에도, 무슨 돈으로 키울 셈이냐 따지지 않았다. 어쩜 이리 작고 예쁘냐고 같이 꽁냥거렸지. 그러니 부탁하지도 않은 고양이를 부탁받은 듯, 밤길을 달려 돌아올 밖에. 이제 어미가 퇴사를 했으니 핼미는 3차까지 놀아도 되고, 부암동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뻗어도 되겠군. 그치만, 딸. 이제 엄마도 자식이 사랑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자식을 더 넉넉히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무 때고 내게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 (엄마도 가끔 맥주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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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한 건 딸이랑 같이 있을 때는 부기에게 나를 ‘할머니’라 칭하는데, 딸이 없을 땐 나도 모르게 나를 ‘언니’ 혹은 ‘이모’라 바꿔 부른다.
- 부기야, 언니가 해 줄게! / 이모 거 만지지 마! / 언니한테 혼날래!?!
촌수까지 교란시켜 가면서 이러는 걸 보니, 할머니 되기도 싫고 늙기도 싫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