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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금명이와 은명이가 있어서

by 김보리

“차라리 안 사랑하는 게 낫지, 덜 사랑하는 건 진짜 치사해.”

[폭싹 속았수다] 은명이의 대사에, 괜스레 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애잔하다. 우리 집에도 금명이와 은명이가 있어서, 드라마에서처럼 은명이가 뒤로 밀려나던 순간들이 잦았다. 메달로 치자면 금메달을 따오는 아이는 둘째인데, 맨 위 자리에는 늘 큰애를 세웠다. 딸과 아들은 21개월 차 연년생인지라, 미술, 성악, 피아노, 영어 등 대부분의 수업을 함께 들었다. 영특하고 야무진 쪽은 언제나 아들이었다. 늘 누나를 앞섰고, 클래스에서도 제일 빛났다. 그 빛이 큰 애를 기죽게 할까 봐 작은 애의 성과를 대개는 깎아서 칭찬했다.

누나는 시험을 잘 보는 법이 없고, 아들은 시험을 못 보는 법이 없었다. 누나가 80점도 못 받았는데 아들이 100점을 받아온 날엔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입을 막아버렸다. 야구부 활동을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던 1년간에도 아들은 반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아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하고도 성적이 안 나오는 딸이 짠해서, 잘만 북돋아 주었으면 훨훨 날았을 아들 날개를 꺾었던 것은 아닐까. 심성 고운 딸은 ‘우리 집은 너무 내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동생의 마음을 살폈고, 마음 여린 아들은 ‘누나에겐 늘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며 누나를 부러워했다. 은명이의 대사만큼 후벼 파진 않지만, 어린 아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애틋하고 죄스럽다.


누구도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준엄하게 되돌아본다면 그 역시 차별이었다. 매사에 성실한데 결과가 안 좋은 딸과 딱 그 반대의 아들. ‘결과보다는 과정을 존중하는 지혜로운 엄마’라는 자평도 이제는 부끄럽다. 맏이 프리미엄에서 기인한 차별적 사랑이었음이 분명하다. 큰애가 잘했고, 둘째가 못했다면 양육 방식은 달랐을 것이다. 우리 금명이 잘했다고 어화둥둥 목말을 태웠겠지. 둘째 기죽을까 봐 큰애의 운신의 폭을 좁히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고 보니 나도 참, 고루한 어미 노릇을 했구나. 맏이가 맏이라서 이유 없이 떠받드는, 공정하지 못한 모성애였다.

아들은 서서히, 빛나는 영재에서 평범보다는 조금 잘하는 수준의 학습자가 되었고, 꾸준히 성실했던 딸은 스무 살부터 피어났다. 두해 간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기간이 아이의 그릇을 키웠다. 다른 집이었다면 잘 나가는 둘째로 인해 열등감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딸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엄마인 게 맞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만약 내가 일반적이고 계산 빠른 학부모였다면 아들은 어떤 이십 대가 되었을까, 이따금 생각한다. 열네 살, 야구선수의 꿈을 접을 때 엄마에 대한 마음 한 구석도 같이 접어버렸던 아들. 그 마음은 얼마지 않아 펴지긴 했지만, 누나의 빛이 오히려 아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울까 싶어 자주 조바심 내기도 했다.


행여 나의 잘못 저울질한 응원 탓에 마음 다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아들은 적당히 유해졌고, 적당히 밝아졌으며 기대 이상 다정해졌다. 마음을 데우는 말은 딸보다 아들에게서 올 때가 더 많다. 영화와 노래, 책 등 함께 나누는 것도 많다. 유학 역시 누나에게만 주는 특혜로 느껴졌을까 싶어 이따금 아들의 마음을 살폈다. 잠깐이라도 해외에서 경험을 쌓고 오면 어떻겠느냐 물어도 시큰둥하던 아들이 최근에 기분 좋은 결정을 했다. 졸업 전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공부하고 올 예정이란다. 아들은 은명이처럼 엄마의 차별을 딱히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괜히 나는 조금 더 공정해진 것 같아 어깨가 펴진다. 올 겨울엔 아들 덕에 삿포로에 가게 생겼다. 과도한 돈질로 넘치는 사랑을 증명하고 와야 하려나.

아이들은 늘 나보다 낫다. 근근이 엄마 노릇하며 키운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내가 기대 살 듯하다. 애들 아빠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누가 봐도 뻔히 알 만한 차별적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이들을 위해 폭삭 속았던 적도 없는 나로서는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두 아이 모두 이만하면 적당한 금메달. 그렇다면 나도, 그리 나쁜 엄마는 아니었던 셈인가. 동메달쯤 되는 엄마 하느라 그래도 애썼다고 토닥인다.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날이 쭈욱 동메달만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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