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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엔 ‘맞’불안이지

by 김보리

<어린왕자>를 거푸 다시 읽고 있다. 삼층서가 책모임에서 처음 시도한 게 짧은 책을 함께 모여 읽는 모임. 미리 책을 읽어 와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 좋고, 책 읽을 시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두 시간 오롯이 책에 몰입할 수 있어 좋으며,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완독하고 간다는 후련함도 있어 나름 인기몰이(?) 하는 중이다.

처음 읽어도, 다시 읽어도 좋을 책, 어른이 읽어도 어르신이 읽어도 좋을 책 <어린왕자>로 스타트를 끊어 벌써 3회 차를 기록했다. ‘(타락한, 혹은 타락할) 영혼의 정화가 필요하신 분 오시라’는 간사한 말로 꼬드기고 있는데,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린 언제나 타락 대기조, 그래서 우리에겐 책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그림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과 클레어 키건의 명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함께 모여 읽기 좋고, 독후에 나눌 이야기 거리가 많아 좋다. 세 책 모두 인생과 관계, 사랑, 그리고 나 자신을 성찰하기 좋은, 짧지만 진한 책들이다.





<어린왕자>를 네 번쯤 읽고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안 궁금하던 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저씨도 알겠지만, 내 별은 너무 멀어. 그래서 이 몸을 갖고 갈 수가 없어. 너무 무겁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버려진 껍질 같을 거야. 버려진 껍질은 그렇게 슬프지 않잖아.”

책 말미의 구절이다. 왕자는 이별을 고하고 있다. 이별을 ‘죽음’으로 대치해본다. 이보다 아름답게, 혹은 평온하게 죽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죽음을 앞에 두고 스스로 죽음을 인지하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같은 표현을 건네고 싶다. 다른 별로 건너가기 위해 너무 무거운 몸은 두고 가겠다고. 두고 가는 몸은 버려진 껍질일 뿐이니 너무 슬퍼 말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함께 읽은 분들도 끄덕끄덕, 공감해 주셨다.

일 년간 내 별(터전)을 떠난다면 어디가 좋겠냐고 묻기도 했다. 어린왕자가 꽃을 오해했듯, 오해로 인해 상실한 대상이 있는지 여쭙고,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 혹은 대상 하나를 꼽는다면 (가족 외에) 또 누가, 무엇이 있는지도 여쭈었다. 나에겐 이 공간, ‘삼층서가’라고 명쾌하게 답을 건넸다. 더불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너무 늦게 손을 쓰면 별 전체를 뒤덮고 뿌리를 내려 소혹성 B612호를 구멍내버릴 바오밥나무. 점점 크게 자라나 내 삶을 갉아 먹거나 집어 삼킬 바오밥나무 같은 것은 없는지 질문을 던졌다. 게으름이라고도 하고, 약점에 너무 집착하는 성향을 꼽기도 하셨으며 주저 없이 ‘옷!’이라고 답한 분도 계셨다. 켜켜이 쌓인 옷이 별을 삼키다 못해 질식시켜 버리는 그림을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나의 바오밥나무는, 주절주절 떠들다 보니 한 단어로 귀결된다.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 결정에 대한 불안, 소소한 일정에 대한 불안, 별 거 아닌 과업에 대한 불안,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 안 생길까봐 불안. 생겼는데 눈치 못 챌까봐 불안. 내 모든 나쁜 꿈의 근원이요, 일을 앞두었을 때의 신경이 끊어질 듯 지나친 텐션의 원인인 불안. 나의 바오밥나무는 점점 자라나 자신감이라는 꽃에 그늘을 드리우거나, 지반을 뚫고 나온 큰 뿌리로 새로 시작하는 첫 걸음에 짓궂게 발을 걸곤 한다.





너무 커지기 전에 알아채 다행이다. 불안에 잡아먹히기 전에 은행나무 앞 창가 자리가 생겨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 공간을 꾸리고 공간에 적응하며 걱정이 준 덕이다. 고민할 시간이 주니, 불안이 부피를 늘릴 틈도 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반복하며 만남과 모임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의 강도도 약해졌다.

‘아무도 안 오면 창피해서 어쩌나’, ‘기획과 달리 분위기가 썰렁하면 어쩌나’, ‘시간보다 빨리 끝나면 어쩌나, 너무 늦게 끝나면 어쩌나’, ‘준비한 다과가 지불된 입장료보다 더하면 어쩌나, 덜하면 어쩌나’.....

그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확실히 씩씩해졌다. ‘아님 말고!!!’ 단계까지 가지는 못했으나 ‘아니어도 할 수 없지, 잘 될 때도 있겠지’ 생각하며 애써 기를 살리고 있다.

불을 잡으려 맞불을 놓듯, 불안을 잡기 위해 ‘맞’불안할 일들을 자꾸 만드는 게 답인 걸까? ‘적당히를 좀 알라’는 딸의 충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4월 12일 여행작가협회 강의를 준비하며 바오밥나무 기세에 눌려 ‘강의와 헤어질 결심’ 했던 것도 취소다. 쓰나미 급의 스트레스를 근근이 넘어서며 불안이 품을 줄였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선 우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제 일의 방책이요, ‘적당히’를 알아야 한다는 게 두 번째이며 우황청심원의 효과를 전적으로 믿는 게 세 번째 묘책이다. 약사님이 ‘얼마짜리 드릴까요’ 물으시면 제일 비싼 걸로 청해야 한다. 제일 비싼 걸로 먹겠다는 호기로운 선언에는 잘 해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불안 따위 꺼지라는 파이팅이 숨어 있으니, 돈은 다른 데서 아끼자.





족자카르타와 발리를 오가는 족⋅발 투어가 며칠 남지 않았다. 먼저 가 있을 예정이라, 낼 모레면 비행기를 탄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 먼저 간다. 모집이 예상만큼 안 된 건 불운하지만, 정원을 꽉 채운 8월 팀(2팀은 모집 중)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불운은 대표님의 몫(못됐다.....). 비행기를 타며 유언 따윈 남기지 않겠다. (어디 구석에 적어두고 갈까. 음.... 무슨 일이 생기면 얘들아, 엄마 몸이 무거워서... 껍데기만 두고... 어쩌고 저쩌고)


잘 되고, 잘 되고, 잘 될 것이다. 먼저 가서 준비하는 게 우황청심원이다. 오시는 분에 대한 다정한 마음, 먼저 가서 기다리는 마음이 에어백이다. 근데 지금, 이렇게 줄줄이 써놓곤, 비행기 사고라도 나면 이 글이 어떻게 읽힐까를 궁금해 하는 중. 퇴근길에 청심원 한 병 사먹어야겠다. 조금 싼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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