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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14. 2024

족자카르타에 온 지, 2주. 잘 지내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어 어학연수 중



자카르타를 거쳐 족자카르타에 온 지 어느새 2주를 넘겼다.

오자마자 학원과 숙소를 정하고, 수업이 시작됐다.

학원과 수업, 홈스테이에도 어느 정도 적응되었다.

족자카르타는 역사와 교육의 도시라 일컬어지는데 아직 마땅히 돌아본 곳은 없다.

두 달 이상 있게 될 거라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수업은 1시간 45분씩 두 세션을 받고 있다.

아침 8시에 시작해 중간에 30분 휴식 시간을 가진 후 12시 정각에 수업을 마친다. 

전통 자와(Jawa) 양식의 건물이 아름다워 학원에 갈 맛은 나지만

네 시간의 수업을 듣고 나면 진이 쏙 빠져 돌아오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오후에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수업 듣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피곤한 지, 오후가 되면 맥을 못 춘다.


교사와 일대일로 진행되는 수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딴짓이란 당연히 할래야 할 수 없고

말을 새로 배우는 것이다 보니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알아듣느라 촉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며

내 생각을 새 언어로 바꿔 알아듣게 하기 위해 쉼 없이 죽어라 용을 써야 한다.


그나마 교실에서는 의사소통이 되는데

나의 말을 기다려 주거나, 나를 위해 말하는 속도를 늦춰주지 않는 다른 세상에서는

그냥 바로 바보가 되고 만다.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 말을 배우는 게 다 그런 거지. 


배운 것을 애써 말로 전하려 할 때의 내 얼굴을 상상해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순진?해 보일 것이다. 아니면 바보처럼 보이거나. 

새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을 무구하게 만든다. (이 역시 바보 같다는 뜻일 수도ㅎ) 

간단한 것에 초집중하게 하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게 하며. 

뭐 작은 거라도 새로운 게 있나 주위를 살피게 하고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을 반가이 여기게 한다. 



말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워낙 다정한 도시라, 아늑한 기분 속에 살고 있다.

문제에 처한 듯한 표정을 기막히게 읽고는 필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주고

어설프게 먹고 있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살펴준다. 

족자카르타 전체가 나의 족자 살이를 챙겨주는 기분이랄까. 

그렇게나 순하고, 그렇게나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 


얼마 전 처음 타본 버스는 기막히게 시원하고, 기가 차게 저렴하더라.

그날도 역시나 버스정류장의 모든 인니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 속에 버스를 무사히 타고 내렸다.

돌아가면 제일 그리운 것은 사람이겠구나 싶어 

오늘도 버스 타고 유랑하고 사람을 만나며 

'당신은 사랑받고 싶어 족자에 온 사람'임을 실감하려고 길을 나섰다. 


자전거도 못 타는 내가, 이젠 그랩 바이크(택시 서비스 중 오토바이)를 씩씩하게 잘도 타고 다닌다. 

평생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장애물을 낯선 길에선 자못 쉽게 뛰어넘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용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구겨진 자아가 잠시 펴진다. 

속해 있던 일상에서는 바보가 되는 게 부끄럽지만 낯선 곳에서는 바보가 되어도 태평하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씩이라도, 안에서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

꼭 새 언어를 배워야만 하는 것도, 외국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 밖으로 한걸음만 나가보기. 

가능하면 혼자 나가보기. 

갑자기 용감해지거나 갑자기 바보가 되어도, 멋쩍거나 쑥스럽지 않게. 

.

.

설날에 딸아이가 차례상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내가 없는 만큼 아이들이 수고했을 것이다.

이상한 엄마라 미안하다고 딸 아들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상한 나라의 사이보그여도 엄마를 지지해 줄 아이들인 줄 잘 알기에.

보고 싶다는 말은 할 걸 그랬나 봐. 

서툴고 어색해 아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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