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눈 멍을 하고 있다
종일 내리면 종일도 바라볼 수 있겠다
좋은 걸 보면 왜 슬픈지 모르겠다
지나친 감수성을 염려하며 남편은 책을 그만 보라 했고
친구는 슬픈 음악을 듣지 말라 했다
꾸역꾸역 한해를 잘 살아냈다
잘한 일이 두어 개 있고
못한 일이 하나 있다
잘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에 솜 같은 예쁜 눈이 내리고
못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눈 녹은 진창 같다
속절없이 눈이 내린다고 그가 말했다
딱히 급히 할 일은 없지만
눈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저 눈만 보고 앉아있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나도 눈처럼 속절없이 앉아있다
눈이 다 그치면 집에 가서
슬픈 음악 들으며 책이나 읽어야겠다
슬픔과 조우하는 순간엔 마음이 맑아지는 것도 같다
슬픔은 연민과 닿아있다
연민할 때 나는, 내가 사람 같아서 좋다, 슬프고 좋다
내년에도 눈물의 온도만큼만 따숩게 살아야지
사랑이 많은 다정한 사람으로
오늘은 특별히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잖아
속절없이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