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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곤한물고기 Oct 20. 2020

시골마을 반년살이, 독일 교환학생 라이프

독일 남부 작은 도시, 튀빙겐에서 살았던 나의 기록

낭만과 현실 그 언저리, 교환학생

동아리, CC, 미팅 등 ‚대학생‘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수험생 시절 가장 꿈꾸고 그리던 대학생의 특권은 교환학생이었다. 외국에서 직접 살아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 유럽풍 캠퍼스를 내가 거닐 수 있다니. 당시에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교환학생을 지원을 결심하기에 충분했다. 

교환학생을 지원 시, 학점과 토플 ibt 점수를 함께 제출하는데 고고익선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1지망부터 최대 7지망까지 국가와 대학교를 적어 낼 수 있다. 나는 유럽을 가고 싶어서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다양하게 적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은 생필품 물가가 저렴하고, 유럽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여행하기 좋아 인기 국가 중 하나다. 나는 학점이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을 2지망에 찔러보듯 넣었는데 운이 좋게 붙었다. 사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꼭 독일을 가겠다! 이런 마음이 아닌 단순히 유럽에서 6개월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독일에 붙고 나서야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독일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이히리베디히(‚Ich liebe dich‘)‘가 독일어로 ‚I love you‘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여행을 하려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려고, 영어를 늘리려고. 교환학생을 가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독일 교환학생을 통해 두가지를 목표로 했다. 10년동안 지겹게 배워온 영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으로 자주 언급되는 독일이라는 국가는 과연 어떤 면에서 어떻게 다른 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독일어를 내 영어 수준만큼 끌어올리고 싶었다. 한 언어를 더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가능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는 과정에서 언어에 녹아들어간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범위만큼 내 세계도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일어의 경우에는 독일 외에도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사용하니 얼마나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인가? 또한, 여러 산업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수십개에 이르는 독일의 기업 문화, 전반적인 시민 의식, 교육 제도 등 여행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을 독일에 직접 살아 봄으로써 깊게 느끼고 관찰하고 싶었다. 


독일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난 막연히 한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 특히나 선진국인 독일이 마냥 완벽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독일에 대한 이런 로망은 독일에 도착한 지 일주일만에 처참히 깨졌다. 그 시작은 한국에서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공항에서부터였다. 시간이 늦어 하룻밤 묵기로 한 지인의 집으로 가야 하는데, 기차가 40분이나 지연됐다. (독일에서는 도시끼리 기차로 연결되어 있어 지하철만큼 기차를 많이 탄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이 10분만이라도 지연되어도 뉴스에 뜨고 난리가 날 텐데, 같이 기다리는 독일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 전혀 화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 죽겠고 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데 이렇게 기차가 늦다니, 나만 억울해서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후에 알았지만 시간 관리 철저하고, 정시성을 엄수할 줄 알았던 독일에서 열차 지연은 아주 다반사로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나 더, 독일은 노동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장된다. 평균 6개월인 'Probezeit(수습기간)'을 문제없이 패스하고 나면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관료주의가 굉장히 심하고 시간 압박에 크게 쫓기지 않기 때문에 행정 처리가 말 그대로 세월아 네월아다.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경우는 하루에 4시간만 여는 날이 잦고, 평일임에도 업무를 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럼 자연스레 행정처리가 느려 지는 결과가 초래되는데, 한국 은행에서 20분이면 끝날 계좌 개설, 카드 발급을 독일에서는 계좌 개설 약속을 따로 잡아야 하고 카드까지 수령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 빨리빨리 민족인 우리들에게는 차마 용납할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이다. 한국의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가 너무 그리운 순간이다. 마트 같은 경우도 오후 9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 가끔 깜박한 것이 있거나, 출출할 때마다 친구들과 종종 가던 24시간 편의점은 독일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맛없기로 유명한 독일 음식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와서 맛보니 더욱 놀라웠다. 독일에 도착한 후 둘째 날, 독일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메인 디쉬 2개와 맥주를 주문했다. 처음 현지에서 맛보는 독일 음식이라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함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처음 나온 음식을 맛보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주방에서 요리사가 실수로 소금통을 엎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짰다. 맥주로 입을 헹구고, 두번째 요리를 먹는데 이 음식은 밍숭맹숭하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었다. 이후에도 혹시나 이번엔 다를까 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독일 음식에 연거푸 실패를 하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아시안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식만 주구장창 해먹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면 자취학과를 자동 복수전공하게 된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었다. 웬만한 한식은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순댓국이나 감자탕같이 국물이 들어간 요리들은 쉽게 만들 수가 없어 항상 간절했다. 


내가 사랑하는 튀빙겐(Tübingen)

헤르만 헤세가 일했던 서점, 괴테가 토했다는 간판이 붙어있는 집을 찾을 수 있는 곳, 독일의 튀빙겐(Tübingen). 독일 남서부 Baden-Württemberg 주에 속해 있는 튀빙겐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6개월 살게 되었다. 튀빙겐은 메르세데스 벤츠, 보쉬 같은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대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버스로 한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처음 도착해서 본 튀빙겐은 정말 동화같이 아름다웠고,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항상 작은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서점과 개인 카페로 가득 찬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튀빙겐은 대학 도시라고 불리는데, 도시 전체에 대학교 건물이 곳곳이 세워져 있고 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역 주민이거나 학생이다. 특히 독일에서도 국제 도시 중 하나라,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다. 아시아인도 상당히 많아, 독일 사람들도 그러한 환경에 익숙해져 길거리를 지나가도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신기하게 바라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튀빙겐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튀빙겐 대학교에는 한국학과가 있어 한국에 관심있는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고 서로 언어를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할로윈, 설날 행사 등 여러가지 이벤트가 한국학과에 주최되지만 그 중에서도 탄뎀(Tandem)과 AG 프로그램이 있다. 탄뎀은 언어 교환 파트너인데 한국학과 3학기인 독일 친구에게 나는 한국어를 알려 주고, 그 친구는 나에게 독일어를 알려주는 식이다. 튀빙겐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4학기부터 한국으로 1년간 필수 교환학생을 가야하기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가게 될 대학교에서 온 한국 학생을 파트너로 매칭시켜준다. 단순한 언어 교환을 넘어, 한국에 가서도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AG는 갓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구들의 과제나 학습을 도와주는 튜터 역할이다. 나는 두 명의 친구를 맡아, 2시간씩 일주일에 한번 꾸준히 만났는데 한국어 이외에도 한국의 수능, 교육제도, 독특한 미신, 최근 사회 현상, 페미니스트 이슈 등을 다양하게 소개해주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튀빙겐 이외에도 베를린, 드레스덴 유명한 대도시 역시 많이 여행했지만, 며칠 지나면 이 심심하고 작은 도시가 금방 그리워졌다. 제 2의 고향 같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풍경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넥카강 다리, 자주 가던 베이커리, 카페, 어제도 마주쳤던 사람들 모두 튀빙겐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독일에서의 삶이 마냥 맑았던 것은 아니다. 외로움이 문득문득 찾아올 때도 있었고, 아시아 문화에 무지에서 비롯되는 몇몇 독일 사람들의 무례한 언행들에 화난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본 독일은 장점이 많은 나라였다.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하늘, 어릴 적 시골에서만 볼 수 있던 밤하늘을 가득 덮은 별, 처음엔 다가가기 힘들지만 친해지면 깊게 마음을 터놓는 독일 친구들, 외국인까지 누릴 수 있는 학비 무료 혜택, 사람이 우선시되는 직장 문화, 저렴한 생필품 물가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한 학기 더 하고 독일에 6개월 더 살아 보기로 결정했다. 독일어도 더 배우고, 기회가 된다면 이 나라에서 인턴으로 일해보고 싶다. 영어와 비교했을 때 독일어는 확실히 외우기 까다롭지만, 같은 게르만족 언어 뿌리라 배울수록 어휘가 상당히 비슷하다. 처음엔 딱딱하다고 생각했지만, 배울수록 부드럽고 시적인 표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challenging해서 더 정복하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언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좁은 한국에만 있기에 내가 가고 싶은 세계는 넓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상하관계, 은근한 야근 장려 문화, 직장 상사와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회식 등 한국의 직장 문화에 회의를 느꼈고 이를 알면서도 그 속으로 차마 발을 내딛고 싶지 않았다. 대신, 팀원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 정해진 근무시간에 최대한 몰입하여 일을 끝내고 야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여성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존중받고 보호되는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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