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91년 크리스마스 휴가를 왕족의 별장에서 전통적으로 보내는 3일간의 이야기다.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막 설명은 이 영화를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전기로 볼 것을 경계하는 메시지임을 곧 깨닫게 된다. 웃음기 없이 창백하고,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하고,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찔러 연신 구토를 해댈 수밖에 없는, 낭떠러지 끝에 선 한 사람의 초상을 정신없이 스케치해댄다.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앤 불린을 환영으로 만나게 하고, 진주 목걸이를 씹어 삼키게 하고, 몸에 생채기를 내게 하는 이미지는 실제 그런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불안과 절망에 빠진 비극적인 인물의 몸과 심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파블로 라라인의 선택인 것이다. <재키>에서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리의 이미지화가 경계 없이 생생하게 일어나는 결과물로 <스펜서>를 보게 된다.
길을 잃어 제시간에 별장에 도착하지 못한 다이애나가 자신의 고향집 앞 낯익은 허수아비에 입혀져 있던 아버지의 재킷을 벗겨내 품고 들어오는 오프닝 시퀀스는 스펜서라는 자신의 성을 다시 찾기로 한 여정의 시작이자 그 결단의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편안하게 보낸 척도로 체중 증가를 삼겠다며 연휴의 시작을 체중 측정으로 하는 낡은 전통처럼, 끼워 맞춰야만 하는 과거와 현재만 존재하는 곳에서 두 팔 들고 벗어나기로 선택한 다이애나 스펜서.
그러나 끝내 활짝 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실제 그녀 삶의 엔딩 때문인지 더 안타깝다. 파블로 라라인은 다이애나의 심리를 끝도 없이 쓸쓸하게 이미지화했고, 관객도 다이애나의 행복한 순간을 이미지화 하기가 불가능한 채로 스크린은 암전 된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쓸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