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행의 이유

가족여행 in Jeju


나는 여행 계획에 몹시 게으른 사람이며 비자발적 의존형이다.

어디 어디 가자고 제안은 잘하지만 실행은 주로 남편이 옮기는 편이다.

미리 예약하고 맛집 알아보고 출발부터 이동시간 그리고 비용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정리해서 가족 톡에 공유한다.


그런데 아직  둘만의 여행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어색하다. 아이들과 함께 해야 더욱 재미가 있고 하나로 뭉치는 기분이 든다.


영화와 음악 스포츠를 사랑하는 아들은 우리 집 디제이 진이다. 달리는 차 안

분위기에 맞게  음악 선곡을 아주 잘한다.

뜬금없이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와 이문세 <알 수 없는 인생>을 틀어 가사를 음미하자고 한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음악의 역사와 가수 이야기를 하고 영화나 드라마 주제가라면 가족 모두 대화에 푹 빠져든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순간이다.


고막이 뚫어져라 볼륨을 높여 온 가족 흥을 돋우거나 센치멘탈 로맨틱 음악도 빼놓지 않는다.  빠른 곡은 다 같이 몸을 흔들며 디스코장을 방불케 하고 목젖을 끌어올려 떼창을 하기도 한다. 볼륨을 높이면 차가 들썩들썩 도로를 점령해버릴 때가 많다.


이문세, 조용필, 자우림, 아이유, 잔나비, 십 센티, 검정치마, 그리고  비틀스에서 마룬파이브 팝송까지  세대를 초월해서 가사와 멜로디에 같은 감성으로 합창하는 우리는 진짜 친구이자 가족이구나 라고 느낀다.

언제 티격태격 화내고 싸웠던 적이 있나 싶다.


딸은 우리 집 카메라 현이다.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영상 촬영을 하고 구석구석 예쁜 풍경을 담으며 감성에 빠져든다. 오빠와 둘이 걸으며 다정히 얘기하고 아빠를 웃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진에 애착 많은 엄마의 주문을 다 들어 사진을 찍어준다. 나의 사진작가이자 감성 파트너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우리 집 엄마 공주다.

가족들은 나보고 잘 따라다니고 잘 먹으라고만 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에너지가 다른데 나는 에너지를 일찌감치 많이 써버려서 별로 없다고 한다. 아껴 쓰라고 한다.

부지런한 성격이어서 잘 되진 않는데 가족과의 여행에서는 가능한 그러려고 노력한다.


우리 집만의 풍경일까. 여행이 아니라면  한 지붕 네 가족이다. 눈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기보단  휴대폰 속 영화와 친구 그리고 책을 더 사랑한다. 때때로 대화가 피곤하고 귀찮기도 한지 모르겠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된다. 어쩌면 남에게 더 후한지도,,모른다.


그래서 가족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잊거나 알아주지 못한다.

그냥 그러려니 당연히 여긴다.

밥 먹고 잠자고 학교 가고 회사 가고 별 탈 없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며 여유를 가지니 아이들과 남편의 장점이 보인다. 후한 칭찬에 입이 달콤해진다.  눈을 맞추고 말을 들어주게 된다. 또  평소의 잔소리는 조언이 되고,,평가는  응원의 말이 된다. 

같은 말이라도 기분과  장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를 위한 노래를 선곡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과 볼거리를 찾아보는  동안은 오로지 서로만 바라볼 수 있다.  가족에게 감사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퇴근길에 여수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부전화해줘 고맙다. 너희 가족 안 아프면 나는 제일로 행복하구나.."

이 말씀만 연신 하셨다.


내가 바라는 가족의 행복 우선순위도  마찬가지다.  집이라는 작은 공간을 떠나 부모 자식 간의 고마움과 진심을 알아주면 그만이다. 여행이 아니라면 가족이라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항상 옆에 있으려니 한다.



나란히 걸으며 손잡고 팔짱도 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며 마음을 고백하는 시간,

하나의 프레임안에 가족을 찰칵 담아보는 시간,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정하고 이해하고 무한정 내편이라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우리 가족에게 일 년의 한 두 번쯤 여행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팬데믹은 나의 관점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