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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나의 관점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ABOUT TIME

2020년 1월, 난데없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습격해 우리의 행복한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마스크는 사람들의 입을 가렸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가려버렸고 일상은 선로를 이탈한 기차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감염자가 100명 미만일 때쯤부터 나는 강남의 모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을 대면하는 날은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니 답답했다. 그러나 가르친다는 즐거움으로 견딜 수 있었다. 또 그렇지 못한 날은  ebs  온라인 클래스에 수업자료를 올리며 매일 달라지는 수업시간 변경에 정신을 곤두세워야 했다.

8개월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가고 있을 무렵, 질병관리본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2.5 단계로 격상시킨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수도권의 모든 시계는 졸지에 일시 멈춤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 오는 출근 여부 문자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오늘은 갈 수 있을까. 다음 주면 갈 수 있을까. 이어지는 문자 세례는 팬데믹을 실감하게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회오리바람이 고개를 넘어가듯 시간은 흘러가고 미래를 도난당한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하며 진화하기 마련인 것 같다. 나는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그 불안함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영어 글쓰기에 한참 열중하던 그때처럼 몰입했다. 책을 썼던 때보다 나의 글은 조금 더 유려해졌고 성숙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구속하는 감옥이 있어야 하듯  브런치는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불평이 늘어갔다. 그러나 난 오히려 팬데믹 덕분에 글을 쓰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 딸 역시 학교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답답해했다. 매일 밥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고  ebs  온라인 수업으로 출석 체크를 하는 로봇 같은 생활이 계속됐다. 교실도, 친구도 없는 딸을 보며 마음이 참 무거웠다.


그렇지만 나는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고맙기도 했다. 늘 늦은 나이 공부하고 일한다고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딸이었기에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가르쳐주고 맛있는 음식도 정성스럽게 해 먹였다. 책,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같이 보고 공감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예쁜 감성을 가진 딸은 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보통의 사춘기 소녀들 같지 않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사랑하고 그 시절의 노래와 가사가 좋아 엄마의 고교시절 응답하라 1988로 돌아 가보고 싶다는 감수성 가득한 딸이다.


“우와! 엄마 글 너무 좋다, 얼른 SNS에 올려봐. 사람들이 뭐라고 댓글 달지 궁금해.”

달달한 라떼 커피처럼 엄마의 글에 박수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잘못 쓰인 단어나 띄어쓰기, 오타, 어색한 문장 연결 등등을 찾아내서 자연스럽게 고쳐주었다. 딸의 예리하고 꼼꼼한 평가는 나를 더 집중하게 했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글들이 하나씩 불어나 사람들과 가까이 소통하며 딸과의 사랑도 더 키워갈 수 있었다.





코로나는 분명 우리 삶에 끼어든 훼방꾼이고 낯선 이방인이다. 부서졌다가도 다시 합쳐지는 찐득이 괴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생계를 걱정하게 만들었고 개미지옥에 우리를 가두어 버렸다. 직장을 빼앗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소통마저 가로막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우리가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Seize the day!

 멈춰버린 팬데믹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다시금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글을 썼다. 거기에 딸이 함께했다. 지금 난 딸과 함께한 잊지 못할  2020년의 추억을 이렇게 글로 기록하고 있다.

역풍이 거셀수록 연은 높이 난다고 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는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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