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동유럽에 있는 비운의 나라 폴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이동하는 동안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내렸는데,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하듯 그날 날씨마저 음산했고 공포와 두려움으로 건물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유대인들의 슈트 가방, 쌓인 머리카락, 그리고 이름표가 붙여진 사진들이 나를 붙잡고 또 붙잡았다. 건물 밖 검은 연기로 그을린 굴뚝 아래는 하얀 꽃 한 다발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독가스실 벽 여기저기에는 그들의 절규가 그어져 보는 나내 참담했다. 역사의 현장에 살아있는 내 자신이 무안했고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눈으로 본 제국주의 독일의 만행에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귀도는 어린 아들과 포로수용소로 잡혀가고 유대인이 아닌 아내도 자청하여 수용소에 머물게 된다. 이 장면부터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피하고 싶었지만 계속 귀도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귀도는 참 위트 있고 긍정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쉴 새 없이 모험과 게임 이야기를 만들어 포로수용소에 갇힌 조슈에를 안심시키고 지켜낸다.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귀도는 굴하지 않고 여자 수용소에 있는 아내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아들과 자신이 살아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귀도의 끝없고 헌신적인 사랑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려 더는 내몰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귀도처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눈가에 눈물이 고여왔다.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다시 배웠다. 차 한 잔 따뜻하게 나눠마시며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게 사랑이고,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 마주 보지 않는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우울한 전쟁 이야기이지만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 <인생은 아름다워>, 아들 조슈에와 아내를 태워 학교 앞에 내려주고 키스하는 저 장면, 귀도가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오늘과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