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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문답

안견과 안평대군을 만나며

#조선회화실록 1

#이종수 #그림문답

#안평대군 #무계정사

#안견 #몽유도원도


시월의 마지막 밤은 언제부턴가 외롭고 아쉽고 붙잡고 싶은 날들로 우리에게 떠올려진다. 화려했던 나뭇잎들의 온전한 환대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일까.  서둘러 낮은 짧아지고 깊은 밤으로 하루는 빠르게 저물어가기 때문일까.  


무언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대다가 그만 아쉽게 놓쳐버린 아쉬움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의 시월의 마지막은 평온하고 흥미진진했다.  


어떤 맛인지 궁금하지만 서툰 화인을 마시듯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한국사 시험지에서 답으로 암기했었던 그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문답>을 통해 몽유도원도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이용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천재화가 안견이 그려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만남이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꾸는 꿈은 모종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는데 안평대군의 꿈에서 말하는 무릉도원은 무엇이었을까.


세종 승하 후 단종 즉위와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안평의 무계정사(현 부암동 근처)가 역모의 근거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안평대군은 어린 조카와 형제를 단두한 수양의 칼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꿈을 즐기는 자, 꿈에서 벗어나려는 자.. 이 그림 한 폭으로 조선의 꿈, 이상향을 그리고 수양을 겨냥하여 정쟁이 없는 국태민안을 꿈꾸었던 것이었을까.


조선시대 세종대왕 32년간의 통치기간은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한 시대이다. 집현전 학자들과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장영실과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 등 과학발명의 업적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고려가 불교를 숭상하여 즐겨 그린 불화와 달리 건국의 이념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조선 초기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거기에 단연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시, 서, 화의 완벽함을 갖춘 시대의 문화현상이자 트렌드였다.  


“네 그림 속에서 나는 시를 읽곤 한다.” 안평대군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는 뮤즈가 아니었을까. 살아가면서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시간을 거슬러 가보고 싶어졌다.


안견은 사흘 동안 꼬박 몽유도원도를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분명 이야기 속에는 안평대군과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는데 그의 그림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옛 동진의 도연명이 전해준 도원이 내가 꿈속에 거닌 곳이라 하여 어찌 나만의 도원이겠느냐.” 안평대군


“무너져 내릴 물줄기 굽이쳐 구슬 같은 방울이 튀고, 구슬 같은 꽃술만이 피어있네.” 신숙주


위에 말을 빌어보면 누구든 그림 속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옳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한 것이었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글씨와 안견의 그림, 그리고 조선 최고의 문사 21명의 찬시가 어우러져 있다.


조선시대 건국 초기의 역사를 다루고 두 남자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다룬 이종수 저자의 회화사에 대한 안목이 부러워졌다.

안평대군이 비화당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남녀의 이별이 아니 것만 두 사람의 짧은 인연을 슬퍼한 내 맘을 안 것일까.

창밖에 때아닌 세찬 소나기가 창문을 흔들었다.


 #2021년_시월의마지막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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