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까불어 보겠습니다 (by 김종현)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수가 많은 것도, 딱히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하다. 종현이 형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고 지낸지 꽤 됐고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편한 관계지만 (책바 문학상 심사는 언제나 카톡으로 부탁한다) 막상 얼굴 못 본지는 일 년도 넘었다. 어쨌든 최근에 책 한 권을 냈다는 소식을 들어 궁금했는데, 마침 경쾌한 필체가 담긴 한 권이 날아왔다.
투박하지만 자기 표현으로 똘똘 뭉친 글이다. 특히 제목이 마음에 든다. 보통의 에세이들은 제목과 내용이 괴리된 경우가 많은데, 내용을 온전히 담아낸 제목이다. 더불어 내가 차마 내지 못한 목소리가 담겼고 나와 다른 생각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다 읽은 타이밍을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술 한 잔 할 시간을 잡았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돈을 버는 사람인가로만 한정해왔다. 어떻게 돈을 버는가, 얼마나 버는가가 곧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나라는 존재의 가장 앞단에서 나를 수식한다. 어디를 가도 그 존재가 아닌, 직업으로 불리는 사회. 나는 이를 ‘먹고사니즘’이 잠식한 사회라고 부른다.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방식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음악가도, 시인도 별로 없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먹고사니즘 때문에.
얼마 전 본 영화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버스 운전사다. 먹고살기 위해 매일같이 버스를 운전하니까. 그러나 그는 언제나 시를 쓰고 시는 그의 일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출간한 시집도, 등단한 경력도 없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다. (p.158)
흔히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벽돌 쌓기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란 그저 흐르는 강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강물 어느 한 지점에 나는 막대기를 꽂은 채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스쳐보낼 뿐이다. 그것이 시간이고, 나는 나를 스쳐가는 물살, 즉 현재만을 느낀다. 붙잡을 수도, 묶어둘 수도 없다. 지나간 과거는 벽돌처럼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간 강물처럼 스쳐지나간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음미할 수 있는 현재가 짧을 뿐이다.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다시 올 수 없는 '현재'들을 흘려보내며 나는 이 책을 썼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었고, 그 과정에 나의 흘러간 '현재'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