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성 Jan 11. 2019

어렸을 적의 미식 경험이 현재를 만들다

세팅 더 테이블 (by 대니 마이어)


#1

<세팅 더 테이블>은 F&B 분야에서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읽었을 만한 유명한 책이다. 저자 대니 마이어는 USHG(유니언 스퀘어 호스피탈리티 그룹)의 대표로, 그가 운영하는 공간 브랜드 중에는 (강남역에서 여전히 줄 서서 먹는) 쉐이크쉑도 있다. 책에는 그의 철학뿐 아니라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고 키워왔는지 세세하게 담겼다.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재밌었다.   


실제로 레스토랑 사업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온갖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고용, 훈련, 동기부여, 구매, 예산, 디자인, 제조, 요리, 시식, 가격, 판매, 서비스, 마케팅, 접대에서 하나같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중략) 또한 다른 제조업들과는 달리, 레스토랑 사업은 상품이 소비되고 경험이 되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고객의 반응을 측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p.8)


Shake Shack @강남역 (출처: eater.com)


#2

그가 레스토랑 오너가 된 연유에는 어렸을 적의 미식 경험 그리고 사업에 친숙한 가정환경(+ 금수저)이 큰 영향을 끼쳤다.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화랑을 운영하고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어렸을 때 접했던 각양각색의 먹거리들을 회상하는 서문 부분은 자못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이걸 다 기억한단 말이야?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오감을 동원해서 음식을 먹었다고 기억한다. 네 살 때 이미 마이애미 해변의 라군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톤크랩의 맛에 홀딱 빠진 적이 있었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스톤크랩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그 후에는 키웨스트에서 키라임파이, 산타바바라 교외 어느 언덕의 노점에서 처음 먹어본 치즈버거, 샌프란시스코 피셔맨즈워프의 던지니스크랩과 전복, 메인 주 오건퀴트에서 랍스터롤을 먹은 기억이 있다. 일곱 살때는 부모님을 따라 프랑스 낭시에 갔을 때 커스터드 퀴시 로레인을 처음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버렸다. 탈르와르 마을에서는 생전 처음 생수(에비앙과 비텔)를 맛보았는데 앙시 호수에서 수영을 하면서 마셨던 물맛과 똑같았다. (서문 중 p.13)


Union Square Cafe @NYC (출처: eater.com)

#3

엄청난 추진력으로 첫 레스토랑인 유니언 스퀘어 카페를 27살에 오픈했다. 이름 값 하듯이 뉴욕 유니언 스퀘어 공원 근처에 열었고, 5천 평방피트의 임대료와 디자인 그리고 건축비 등을 포함해 약 70만달러의 오픈 비용이 들었다. 절반은 자신이 모았던 돈으로, 절반은 가족에게 융통을 했다. 처음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다. 소위 난 놈이다.



Shake Shack @Union Square Park (출처: eater.com)


#4

그가 사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stakeholder는 종업원 - 손님 - 지역사회 - 납품업자 - 투자자 순인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지역사회였다. 당시 우범지대였던 유니언 스퀘어 공원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해 USPCC(유니언 스퀘어 파크 커뮤니티 연합)의 브런치 행사를 주최하고, 뉴욕시와 협의하여 쉐이크섹을 공원에 오픈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Harvest in the Square(하베스트 인 더 스퀘어)에 참가함으로써 유니언 스퀘어 지역사회를 지원했다.    


지역 사회에 투자하라. 지역사회를 위해 부를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사업은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더 많은 부를 창조하게 된다. 앞마당에 정원을 가꿀 때 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 정원을 가꾸면 이웃들이 따라서 하게 된다. (p.133)


나 역시 책바를 운영하면서 좁게는 연희동, 더 나아가서는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매년 진행하는 <연희극장>과 어반플레이에서 주최하는 <연희, 걷다>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수익적으로 메리트가 크지는 않지만 동네를 위해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더불어 재작년부터는 매출의 일부를 환원하는 방향을 알아보는 중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는 아니고.. ㅜㅜ 그저 책바와 나 역시 지역사회 거주민들에게 사랑과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보다 어려운 분들을 미약하게나마 돕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마땅한 기부처를 발견하지 못해 지금까지 이르렀다. (혹시 괜찮은 곳 있으면 알려주세요!)



The Modern @MoMA (출처: eater.com)


#5

가장 부러웠던 점은 MoMA 내의 레스토랑과 카페인 The Modern, Terrace 5, Cafe 2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공간에서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반 고흐와 피카소 그리고 앙리 루소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니, 끝내주게 멋지지 아니한가. MoMA 디자인 컬렉션 가구와 달력과 함께 자라온 그로서는 그저 꿈의 실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 나도 미술관 근처에서 운영하고 싶다... ㅜㅜ 정확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일상의 낭만과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6

새해 첫 독서로 동기 부여를 하기에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의 방향과 선택에 어떤 보이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 기대가 크다. 언젠가 내가 개인 플레이가 아닌 팀 스포츠를 하게 된다면, 그 때 다시 읽고 싶다. 더 재밌을 것 같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우선 나는 사업을 하면서 종업원들, 손님들, 지역사회, 납품업자들, 투자자들 -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대로 열거하면 - 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나는 ‘합리적 배려(Enlightened Hospitality)’라고 부른다. (p.7)


-


나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야말로 우리 레스토랑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들의 방문에는 사업, 로맨스, 사교 등의 다른 의도가 없다. 단지 자신에게 뭔가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p.77)


-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손님의 편에 있다고 느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또한 직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 말을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우리 식당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있다. 어떤 웨이터가 손님에게,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그것은 공허한 대답을 듣게 되는 공허한 질문이다. (p.81)


-


무엇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은 열정과 기회(때로는 우연)가 만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가치와 적절한 아이디어가 어우러진 적절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위한 시장분석에는 의존하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 나 자신이 실험 대상일 뿐이다. 나는 분석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직관적이다. 만일 열정적으로 관심이 가는 뭔가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감지하면 그 일에 전력투구를 한다. (p.117)
   

-


나는 서비스라는 팀 스포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진 직원들을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낙천적이고 온화한 성격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 배려심, 잔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2. 지성 (지적 능력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알고자 하는 호기심)

3. 노동 윤리 (뭔가를 최대한 열심히 하는 의지)

4. 감정이입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고 관심을 갖고 연결하는 능력)

5. 자각과 성실성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 알고 정직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옳은 일을 하는 성품)  

(중략)

나는 직장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채용하고 싶어 한다. (p.166)


-


부족하고 불안한 시기일수록 어떤 부분에서도 탁월성의 수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직원들과 손님들에게 사업이 점점 더 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p.241)


-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매니저들에게 어떤 직원이 뭔가를 일관되게 또는 뛰어나게 잘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 먼저 알려 달라고 한다. 나는 그 직원과 만나서 그의 상사로부터 구체적으로 그가 어떻게 일을 잘하고 있는지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직원은 자신의 상사와 나에게서 모두 인정을 받은 기분을 느낀다. 상사의 상사에게서 칭찬을 들으면 더욱 기분이 좋고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p.246)  


-


나는 어릴 때부터 MoMA에 매료되었다. 부모님의 양가 친척들은 현대미술 수집가들이었고, 어머니는 화랑을 운영했으며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의 이사를 지냈다. 우리 집 주방에는 항상 MoMA의 달력이 걸려 있었고 가구는 온통 MoMA 디자인 컬렉션이었다. 사실 부모님의 결혼 생활 25년 동안 그들을 묶어 놓았던 것은 아이들 외에 현대미술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p.331)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시간이란 그저 흐르는 강물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