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지 않을래? 혼자 먹으면 좀 그렇더라고.’
우물쭈물하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애써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하던 동아리 선배. 그의 호감을 짐짓 모르는 척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2009년, 그건 분명히 썸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삼귀는(사귀기 전) 사이라고 해야 할까?
썸의 필요조건은 호감이다. 첫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동아리에서 종종 만났던 선배에게 어느 순간부터 눈길이 갔다. 저음의 목소리, 조금의 허세도 없는 말투, 낯을 가리면서도 다정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을 구성하는 면면이 모여 호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그 선배를 눈썹오빠라고 불렀다. 눈썹이 진해서였다.
호감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썸으로 이어졌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스무 살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여대생보다는 망아지 같았기에,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썹오빠는 같은 학과도 아니었는데 자꾸 마주쳤다. 가끔 같이 점심을 먹었고, 동아리 행사를 마치면 지하철까지 함께 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했다.
한번은 눈썹오빠에게 동아리 행사 물품을 사러 방산시장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는 길을 걷다가도 자연스레 자리를 바꾸어 길 바깥쪽으로 걸었다. 새로 산 운동화를 알아보고 예쁘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유독 크게 웃고 맞장구쳤다. 소소한 대화와 행동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서로를 향한 호감이 썸으로 발전한 날이 아마 방산시장에 같이 갔던 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눈썹오빠와 나는 크리스마스에 연인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지금 돌이켜 봐도 기적 같은 일이다. 처음에는 눈길이 가고, 그만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 점점 마음이 눈길을 따라간다. 서로를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하지만 그 시간이 설렘을 만들어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확인해가는 것이다.
애인을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가을바람에 외로워서라든가 연애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가 좋았고, 호감이 발전해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오랜 연애 끝에 지금은 눈썹오빠를 남편으로 부르고 있다. 결혼을 결심한 것도 남편이나 아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거나 화가 날 때면, 처음 마음을 떠올려 본다. 나의 남편으로 규정된 사람이 아닌 눈썹오빠로 존재하던 그 사람 자체를 생각한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충분했던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눈을 맞추고 마음을 확인한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이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다정한 입술과 따뜻하게 잡아오는 손, 웃을 때면 나타나는 보조개까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