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뽑힌 닭

글쓰기를 거부하는 나에게

by 멜랑꼴리한 말미잘

나에게 ‘글쓰기’란 평생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와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대회 여러 번의 수상경력이 있고 심지어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연극 분야이긴 하지만 ‘작가’라고 불리며 돈을 받고 글을 쓴 기간도 수년이니 ‘글쓰기’란 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시나 소설, 수필 등 글로 다른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10대의 열정적인 문학소녀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글쓰기’를 어렵게 여기며 자체적으로 거부하고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딱히 잘하는 것 없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순차적으로 다니던 나에게 대학입시가 다가왔을 때, 스스로나 주변에서나 ‘국문과’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약 19년의 인생 동안 반항이라고는 해보지 않고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한 지독하게 내성적인 내가, ‘국문과’를 문득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시건방진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력고사 성적이 형편없게 나왔기 때문에 가고 싶었던 학교의 국문과를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갈 수 없어서 못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아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가당찮은 자기 합리화 과정에서 영향을 주었던 것은 당시 다니던 고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이자 문학반 지도교사였던 국어 선생님, K선생님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당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의 꿈은 90% 이상이 교사였으니 특별할 것도 없었고, 적성하고도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어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미래가 곧 K선생님처럼 된다고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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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여고생들의 아이돌은 단연코 학교 남자 선생님들이었고 젊거나 늙거나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간에 어떤 매력의 요소 하나라도 있다면 각각 좋아하는 선생님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K선생님은 전혀 인간사 희로애락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루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다른 별명도 있었을 것인데, 나와 친구들은 K선생님을 ‘털 뽑힌 닭’이라고 불렀다. 키가 작고 허여 멀 건한 얼굴에 목소리 또한 일정한 리듬과 고저가 없는 단 하나의 음색을 보유한 K선생님의 수업은 국어 수업이라면 웬만하면 좋아하였던 나에게 샤프심으로 허벅지를 찌르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허벅지를 찌르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고개는 앞으로 꺾어지고야 마는 대부분의 학생들 앞에서도 K선생님은 별다른 내색 없이 수업과 관계없는 말씀은 단 한마디도 섞지 않으시고,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과 같은 수업을 이어가셨다.

닭이라는 동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새빨갛고 선정적인 닭 볏을 흔들며 시끄럽게 떠드는 녀석들인데. 털이 뽑히고 깨끗하게 세척된 얌전한 닭들은 너무나 밋밋한, 무미의 극치로 느껴지지 않는가. 게다가 그 닭살들이라니... 그에게도 피 끓는 청춘이 있었을 터이지만 날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 태어났을 것처럼 느껴지는 ‘털 뽑힌 닭’ K선생님은 수업 시간에도 문학반에서도, 문학소녀인 나에게 한 마디도 개인적인 충고나 조언을 주신 적이 없었다.


그러했던 그분에게 남아있는 강렬한 추억이 두 개가 있다. 그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지에 실린 글의 제목을 지어주셨을 때였다. ‘수필 릴레이’라는 콘셉트에 ‘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이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집과 학교 사이의 길을 걸으며 느꼈던 일상에 대한 글을 써서, 글의 제목을 따로 달지 않고 제출했다. 나중에 교지를 받아보니 나의 글의 제목이 ‘나를 반겨줄 그 불빛을 향해’라고 달려있었고 당시 교지 지도교사였던 K선생님이 글을 조금 다듬고 제목을 달아준 것이라 하였다. 특별한 내용 없이 등굣길과 하굣길의 일상을 담은 그 글에 그런 제목이 달리니 뭔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K선생님은 그 글이나 제목을 달아주신 그 과정에 대해 나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신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평상시 수업 스타일과 성격을 생각하면 감상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선생님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일이었다.


K선생님과의 두 번째 기억은 대입 원서를 쓸 때였다. 문학소녀로 살아갈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재능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20대가 다가오며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허망함이라니...., 시 한 편을 써놓고 자살이라도 하여 요절 작가라도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요망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성적 때문에 국문과를 갈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꿈을 꾸어보고 싶었다. 신문기자가 되어 여기저기 취재를 나가거나, 방송국에 들어가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혹은 외교관이 되어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신문방송학과’나 ‘정치외교학과’는 왠지 나의 또 다른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현실적인 학과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당히 지원서를 써서 담임 선생님의 서명을 받으러 학교에 갔다.

아직도 그 실루엣이 기억난다. 춥고 건조한 어느 겨울날, 어두컴컴한 교무실 한 구석에 앉아계셨던 K선생님. 나의 원서를 보고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되셨다.

그리고 한마디. “어? 국문과 안 가고....?”

나에겐 아무 관심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지라 나도 약간은 당황했다. 그리고 뭔가 설명해야 했지만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네.” 그것이 끝이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도장을 찍어주셨다. 선생님의 그 말씀은 갑자기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아, 국문과를 썼어야 했구나...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원서 제출과 논술시험, 면접시험 등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합격자 발표 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맛본 쓰디쓴 경험이었다. 그리고 재수냐, 후기대학 지원이냐 라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공부를 1년 더 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 한 후기대학의 국문과를 지원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런데 나는 조금은, 아니 많이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국문과를 지원하지 않고 느꼈던 작은 서운함은 사실은 마음속에서 엄청난 크기로 자라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제 제대로 되었어.'

전기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후기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국문과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음운학이니 언어학이니 하는 ‘국어학’이라는 무시무시한 학문에 대한 공포와 ‘연극’과 ‘술’ 등 다양한 관심거리에 탐닉하면서 국문과에서의 나의 글쓰기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이 나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서 간혹 대본 쓰기에 참여하기는 하였으나 주로 기획서 쓰는 일에 재능을 쏟아부으며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인생은 꿈꾼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인생이 지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글이라는 것에 화풀이를 해대기도 했었다. 수십 년간 써왔던 일기를 모두 태워버리면서 이제부터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혼자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1. 천재적인 재능이 없으므로 허접한 글을 쓰느니 쓰지 않겠다. 2. 대부분의 작가들은 현실을 잘 모르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더라(성격이 별로라더라). 3. 글을 쓰는 행위는 너무 고독하고 외로운 일이다.’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물론 글을 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절필하는 행위는 신춘문예에 미리 당선사례를 써놓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평생 나의 짝사랑인가 보다. 아니 글쓰기가 나를 평생 짝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는 좀 받아줄 때가 된 것 아닐까? 원래 나를 좋아하는 사람 밀어내고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한테 들이대는 평생 청개구리 스타일이지만, 이젠 잘난 척 좀 그만하고 땅에 발을 좀 디뎌야 하지 않을까. 써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조금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이제는 좀 창피하니까 말이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K선생님을 떠올린 것은 나로서도 좀 뜻밖의 일이었다.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분도 아니고,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간 적도 없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때의 선생님보다도 많은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국어 선생님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때 지루하게 여겼던 선생님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허영심 가득했던, 노력도 하지 않는, 치기뿐인 어린 문학소녀가 선생님의 인생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는 선생님이 나의 글을 읽고 제목을 달아주시기 위해 고심하셨을 그 시간들을 상상하고, 그 시간이 고맙다. 나도 잘 몰랐던 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셔서 고맙다. ‘나를 반겨줄 그 불빛을 향해’ 가는 인생의 어느 하루, 선생님 이야기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다.

그리고 쌤! ‘털 뽑힌 닭’이라고 숭악한 별명 붙여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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