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전. 2020년 10월 20일 오전 5시경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쉽게 잠이 깨는 편이라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동생이 입원해있는 병원 간병인의 전화였다. "숨을 쉬지 않는다... 빨리 와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미혼이었던 동생에게는 보호자가 우리 형제들뿐. 5남매중 첫째 큰언니와 넷째 장남이 보호자로 되어있었는데 마침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나에게 전화가 왔고, 내가 다른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전날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두고 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었다. 그래도 바로 이렇게 소식이 올 줄이야....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동생은 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뒤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지... 한 마디라도 해주고 가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말을 듣고 입원과 호스피스로 옮기는 과정이 채 한달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막내동생은 기운을 차려 몇 주간 우리 형제들과 추억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간성혼수로 쓰러져 자기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동생이 어느 순간 단어를 제대로 말하고, 자기 손으로 밥도 먹는 걸 보니 오래걸리더라도 병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어린 아이처럼 아이스크림 사달라, 과일 사달라 하는 말들이 어찌나 기쁘던지. 먹을 수만 있다면 마트의 식료품 코너를 통째로 사오는 한이 있어도 다 먹여주고 싶었다. (큰언니는 맥주도 한 잔 주자고 했는데 차마 줄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후회가 되었지만...)
그러나 두어주가 지나자 동생의 상태는 다시 악화되어 먹을 수 있는것이 점점 줄어들었고,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진통제의 양을 늘려야만 했다.
72년생이니 살아있으면 올해로 만 50이 되었을 것이다. 50년간의 삶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다 기억속으로 묻히고, 떠나기전 몇 주간의 기억들이 남은 형제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항상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부도 못하고 말도 어눌하여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동생에게 부모님과 주변의 걱정, 잔소리도 많았다. 다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동생은 왼손잡이로 살아가기가 많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가끔은 이 세상 살아가기가 벅찬데, 조금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았던 동생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벅차서 술 한잔 먹고 잠드는게 그만의 평화를 찾는 방식이 아니었던지...
오늘 딱 1년이다.
1년전 그날처럼 참 하늘이 맑네.
동생이 그립다.
못 해주었던 거 속상하게 했던 거 이런거 다 잊을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때만 기억할께.
이 세상의 수많은 인연 중에 누나와 동생으로 만나 50년 가까이 살아오며
인생의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겨준 동생아.
편히 쉬렴.
오늘은 만사 잊고 동생이 좋아했던 황포돛배 떠있는 임진강에 가서 소주나 한잔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