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기억하는 취향과 습관

김치를 먹는 법, 치약을 짜는 법

by 멜랑꼴리한 말미잘

빨갛게 잘 익은 김치는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김치가 곁들여져야 완성되는 한식의 미학이랄까... 라면에 신김치는 절대불변의 원칙이며, 소주나 막걸리, 심지어는 와인 안주로도 어울린다. 아... 김치 예찬론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김치와 관련된 아주 쓸데없는 기억들이 떠올랐고, 기억들이 줄을 이어나가 다 흩어져 버리기 전에 몇 자 적어놓고 싶었을 뿐이다.


김치의 가장 큰 재료는 뭐니뭐니해도 '배추'일게다. 그리고 '고춧가루',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재료는 바로 '무우'다. 왜 무우를 넣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장때가 되면 커다란 무우를 일정한 크기로 채써는 일이 꽤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양념에 버무린 무채를 절인 배추 사이사이 잘 넣어야 김치가 완성된다. 그런데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만 이 무채는 양념으로 생각되어 잘 먹지 않는다. 김치를 먹다보면 마지막에 김치국물과 무채가 남아서 아깝다고 생각되지만 잘 먹게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작은언니의 김치를 얻으려고 김장하는 날 갔다가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작은언니 아들래미가 무채를 좋아해서 김장할때 많이 넣는다는 것이다. 나는 안 좋아하니 아들 많이 주라고, 나는 무채 안 담아도 된다고 하면서 조카를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남자친구가 집에 놀러와 밥을 차려주었는데, 밥상에 놓인 김치 그릇의 무채를 집중적으로 집어먹는 것이 아닌가. 그걸 좋아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왜 좋아햐냐고 했더니 맛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조카가 아니었다면 남자친구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이다.


작년 막내동생이 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위독하다고 연락을 받고 뛰어간 병실에서 동생 짐을 정리하다 보니, 커다란 치약 한 통이 있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미혼의 막내 남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더랬다. 가끔 주말에 장을 봐다 주곤 했는데, 그때 사다준 치약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치약 필요하다고 해서 그런 생필품도 안 사다놓았냐며 잔소리하고 사다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래 쓰라고 가성비 좋은 것을 골라서 샀던 기억이 난다. 칫솔과 치약, 양말과 속옷을 낡고 더러운 커다란 가방에 싸가지고 혼자 입원한 동생은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몇 주를 못 버티고 가족들 곁을 떠났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칫솔질도 거의 못했고, 그 치약은 거의 그대로 남았다. 이후 칫솔은 버리고 왔지만 치약은 버리지 못하고 집에 가져왔는데 차마 쓰지 못하고 들여다보기만 했다. 치약 몸통에 꾸욱 눌러진 자국이 동생의 손자국 같아 차마 써버릴 수가 없었다. 휴대용 치약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이렇게 큰 치약을 통째로 들고왔을까. 치약을 보면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막내는 김치를 좋아했는데, 양념이 많이 묻은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꼭 김치그릇에 담겨있는 김치를 위에서부터 얌전하게 먹지 않고 파헤쳐 속의 것을 먹었다. 그것도 양념이 묻어있으면 털거나 다른 김치에 비벼 양념을 털어냈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는 잔소리를 해댔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먹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냐며.... (근데 사실 나도 그렇게 먹는다)


남자친구가 옥수수 좋아하는 나 먹으라고 초당 옥수수를 사왔다. 근데 옥수수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시던 음식이었다. 어느해 강원도에 일이 있어 갔다가 사가지고 온 옥수수를 할머니는 맛나다 맛나다 하시며 잘 드셨다. 마트에서 산 크게 맛없는 옥수수를 삶아드려도 맛있다고 드시던 아버지 모습도 떠오른다. 꼭 옥수수를 통째로 드시지 않고 반으로 뚝 잘라서 드셔야 해서, 뜨거운 옥수수를 잘라드리느라 고생했었다.


얼마전 아버지 제사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이나, 제사.... 그럴땐 그냥 덤덤해진다.

그런데 치약을 보면, 잘 익은 김치를 보면, 노점의 옥수수에서 김이 펄펄 나는 걸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물이 난다.


쓸데없이 기억하는 누구의 취향, 누구의 습관.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 되는 것은 인간들만이 갖고 있는 쓸데없는 감성일까. 어느 순간 나의 어떤 취향이나 습관이 누군가에게만 기억되는 날들이 또 오겠지. 이런 것들을 안고 또 그렇게 살아가다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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